21일 발표된 박근혜 정부의 ‘5대 국정목표’에 경제민주화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5대 국정목표가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맞춤형 고용·복지,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 안전과 통합의 사회,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구축으로 정해지면서 애초에 강조됐던 경제민주화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다.

▲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공동기자회견장에서 새정부 국정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국정 비전으로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맞춤형 고용복지,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 안전과 통합의 사회,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구축 등을 5대 국정 목표로 삼았다. ⓒ뉴스1

인수위 측은 ‘용어가 사라졌다고 해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약해진 것이 아니다’라며 ‘세부 과제 등에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들이 전부 들어가 있다’는 점을 들며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한 경제민주화 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갈 것이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렇다고 해도 5대 국정목표에서 굳이 경제민주화를 제외한 것은 여전히 의문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과정에서 많은 논란을 감수하고 정치적 성향이 다른 김종인 전 경제수석을 영입하면서까지 국민들에게 ‘경제민주화’라는 다섯 글자를 각인시키려고 했던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경제민주화를 커튼 뒤로 숨기려고 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오석-조원동 인선부터 예견됐던 일

이러한 상황은 현오석 KDI원장과 조원동 조세연구원장이 각각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에 내정됐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현오석 내정자와 조원동 내정자의 경우 경제기획원과 재정경제부를 거친 정통 경제관료들로 시장주의 원칙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현오석 내정자의 경우 그간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경제민주화란 시장경제 원칙을 통해 공정한 경쟁원리를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조원동 내정자 역시 이와 다름없는 입장을 과거 수차례 내비쳤다. 즉, 이들의 발언들은 경제민주화의 구체적인 정책들이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작동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한 것이다.

▲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내정자. ⓒ뉴스1

현오석 내정자와 조원동 내정자의 거시경제정책에 대한 발언들을 보면 이러한 사실이 더욱 잘 드러난다. 현오석 내정자는 KDI원장 시절에도 수차례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금리를 인하하면 통화량이 증가하고 인플레이션이 유도되며 이를 통해 경기가 부양된다는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다. 조원동 내정자 역시 ‘재정의 사용이 중요’하다며 사실상의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써야 하는 상황임을 강조한 바 있다.

경제관료들의 눈으로 보면 유로존 재정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일본의 아베 내각이 엔저정책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돈을 풀어 경기부양을 유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론일 수 있다. 하지만 수차례 지적됐듯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적절히 나타내지 못하면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유도되어 서민들의 생활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부작용이 있다. 게다가 재정확대가 경기부양을 유도하는 데 소모되기 때문에 사회안전망 확충이나 복지정책 확대와 같은 조치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재정정책이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재정건전성 확충이라는 요구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 본인도 경제민주화와 멀어져

선거 기간 내내 경제민주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박근혜 당선인 본인의 입장이 후퇴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20일 한국무역협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발전의 패러다임이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발언을 통해 적극적인 성장정책에 무게를 둘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 환율 안정이 중요하다는 박근혜 당선인의 발언을 보도한 21일 매일경제 기사.

한국무역협회를 방문한 박근혜 당선인은 ‘환율 안정이 굉장히 중요한 상황임을 알고 있다’면서 ‘우리 기업이 손해 보지 않도록 선제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 역시 고환율 정책 등으로 경기부양을 유도했던 2008년 이명박 정부의 강만수 경제팀 등을 연상케 하는 것이어서 사실상 성장기조로 경제정책이 전환될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경총을 방문한 박근혜 당선인은 ‘고용경직성이 강하다’,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노사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고도 발언해 사실상 경제민주화 정책의 부재로 인해 생긴 노사문제들에 대해 큰 고민이 없다는 생각 역시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경총, 한국노총과 파트너십을 유지해 함께 논의하겠다’는 입장도 밝혀 상대적으로 강경한 투쟁노선을 갖고 다수의 투쟁사업장들을 지원하고 있는 민주노총에 대한 고려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도 해 향후의 논란을 예고하기도 했다.

▲ 당선인이 강압적인 노동정책을 시행하게 될 것이라는 보도를 한 21일 경향신문 기사.

일말의 성과 있을 수 있으나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대흥동 경총회관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단과의 티타임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물론 이번에 발표된 국정목표 등에는 인수위가 주장한 것과 같이 재벌에 대한 규제책이 들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 금지에 기존 순환출자 강화를 위한 추가 출자도 신규출자로 간주해 금지하기로 하고 금산분리를 강화하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를 금지하는 등의 공약은 대부분 세부적인 정책과제로 반영됐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경제민주화 자체를 하나의 커다란 국정목표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은 현재 한국사회의 위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여전히 시장주의적인 것에 머물러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단지 재벌 및 대기업집단에 대한 일부 규제로만 시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강조됐던 경제민주화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드는 것이며 중소기업을 힘있게 육성하고 내수시장을 활성화 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그간 알려져 왔다. 이는 몇몇의 정책이 아니라 국가적인 수준에서 경제 구조의 체질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인데, 21일 인수위의 발표는 경제구조의 체질은 가만히 두고 대증요법만을 강화한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임을 공표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평가가 가능한 것이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과제로 제시한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들이 정확히 관철될 수 있다면 그 정도라도 성과로 평가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하는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21일의 발표는 이러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는 점을 박근혜 당선인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중요한 지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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