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의 전사야말로 애국보수다" "정봉주 전 의원이 전향을 했다"

MBC가 보도한 '알통보수'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이다. 영화 <300>의 전사들과 정봉주 전 의원의 우람한 근육이 그들을 보수 인사로 결정짓는다는 농담이다. 근력에 따라 정치적 이념이 결정된다는 MBC의 황당한 보도가 누리꾼들의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

▲ 정봉주 전 의원의 근육을 놓고 누리꾼들은 "새누리당으로 전향"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하고 있다. - 트위터 화면 캡처

이날 보도에서 MBC는 "신념은 어느 정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며 또 육체적인 힘이 영향을 미친다는 흥미 있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며 진화심리학 논문을 보도했고(<알통 굵기 정치 신념 좌우>), 이어지는 리포트 <정치 성향도 유전자 따라>에서는 "아예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가 있다"며 '생물학적 결정론'을 소개했다.

이와 관련해 <미디어스>는 19일자 보도 <'알통보수' MBC 뉴스데스크, 논문 왜곡 해석>에서 MBC의 자의적 논문 해석을 지적한 바 있다.

뉴스플러스를 보도한 권순표 MBC 기자는 19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기사 자체에는 어떤 오해의 여지도 없다"며 "(기사가 틀렸다는 지적을) 1㎜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우파와 좌파를 떠나서 무조건 감정적으로 남을 비난할 게 아니라 자기가 판단하는 게 정말 이성적인 것인지 따져보자는 게 기사의 취지"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권 기자의 말처럼 기사 리포트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그는 <해외 유력지인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소개했을 뿐이고, 그 취지 역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판단하는 게 정말 이성적인 것인지 따져보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MBC 기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알통 보수'에 대한 언론과 누리꾼들의 과잉비판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기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 "취지"이다.

1. 사회적 갈등을 '진화심리학'으로 풀어보려는 경박성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진 한국정치 지형의 반목과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대선 이후 52대 48로 나뉘어진 갈등은 쉽게 풀릴 수 없는 실타래에 가깝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짧은 시일 내에 확실한 해법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고, 확산되고 있는 배타적 분위기는 대선 이후 세대 갈등으로 불거지고 있다.

MBC가 가졌던 문제의식 역시 반으로 갈라진 치열한 '대립과 갈등'에서 출발했다. 5분이 넘는 리포트에서 <뉴스데스크> 권재홍 앵커는 "지난해 대선을 치르면서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또 세대와 세대간 갈등이 극심하게 노출됐다"며 "갈등의 근원에는 자신이 지지하는 쪽은 옳고 반대하는 쪽은 그르다는 신념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권순표 기자 역시 마지막 멘트에서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증오를 품을 것이 아니라 관용을 가지고 상대방이 옳은 부분은 무엇인지 고민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밝혔다.

MBC의 문제 의식을 정리하면,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진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 만이 옳다는 주장이 아니라 관용이라는 것이다. MBC가 보도한 진화심리학의 연구 결과는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책이나 이념을 지지할 수도 있지만 그냥 끌리기 때문에 옳다고 믿을 수도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사례이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을 진화심리학 소개 수준에서 풀어보려는 노력이 경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념논쟁은 유전자에 기인한 것이니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라는 '훈계'인가? 아니면 정치적 논쟁에서 탈주해 '탈정치성'을 고수하자는 말인가?

언론의 역할이 사회적 이념 또는 현안에 대한 갈등을 보도를 통해 고민하는 것에 있다면, MBC의 이러한 보도는 언론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내부에서도 부끄러운 수준이라는 평이 제기되고 있다.

<뉴스데스크> 앵커인 권재홍 MBC 보도본부장은 새해 MBC특보를 통해 "생활 밀착형 뉴스"를 천명한 바 있다. 보도본부장이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 이상 MBC에 치열한 보도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 돼 버렸다. 그러나 '관용'을 이야기하기 위해 전제돼야 할 것은 '논문 소개'가 아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와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이는 변할 수 없는 언론의 사명이기 때문에.

2. 이 논문이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진화심리학은 아직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학문이다. 20여 년에 불과한 역사를 가진 학문인데다, 진화론에 기반한 이론이기 때문에 우생학과 골상학과 같은 '우익 이데올로기', '생물학적 결정론'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또, 실험의 나열일 뿐이라는 비판과 명확한 인과성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진화심리학의 반대 진영에서 나오는 논리이다.(관련 사이트 링크)

▲ MBC <뉴스데스크> 18일자 보도 <보수·진보 체질 따로 있나> - 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정치적 성향이 유전자로 결정된다는 논리가 가진 위험성 때문에 언론은 보다 면밀히 '진화심리학'류의 논문을 검토해야 한다. 히틀러와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정권이 벌인 학살도 '유전자 결정론'에 기인한 측면이 많다는 경험적 사실은 언론에 '가십' 보다 '분석'을 요구한다. MBC에 이런 고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MBC가 인용한 <The ancestral logic of politics(정치의 계통적 논리)> 역시 진화심리학의 거두 존 투비(John Tooby)와 레다 코즈미다스(Leda cosmides)가 수정하고 있는(working papers/최종 수정 2012년 10월 15일) 논문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논문을 이코노미스트가 소개했다는 이유로 메인 뉴스에 보도한 MBC의 모습도 우습지만, 한국식 보수·진보 프레임에 끼워 맞춘 상상력도 눈에 띈다.

MBC 기자 역시 보도의 과장과 포장을 지적했다. A씨는 "증명도 되지 않는 실험 결과가 보도 대상인지 솔직히 모르겠다"며 "뉴스플러스라는 형식으로 5분 가까이 보도된 건 민망하다"고 밝혔다. 이어, "재밌는 논문 결과이니 토픽으로 묶어 메인뉴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 짧게 소개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렇게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라며 "뿐만 아니라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포장과 형식을 과하게 한 것이 화근"이라고 말했다. 이번 보도는 고민의 결여가 빚어낸 촌극이다.

3.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뉴스데스크는 반성이 필요하다.

뉴스를 낼 때마다 화제가 되고 있는 MBC 내부는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다고 한다. A씨는 "솔직히 쪽 팔린다. 자괴감이 크다"며 "출입처에 나가는 게 부끄러울 정도다. 취재원들에게 불쌍한 대우를 받는 것도 지겹다"고 말했다. 그는 "진중권 교수가 'MBC 뉴스 약 빨면서 만드냐'고 말하지 않았냐"며 "위상 추락을 넘어 장안의 웃음거리가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일선의 기자들이 전혀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에 있다. MBC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때마다 한직으로 쫓겨나는 상황에서 MBC 기자들이 겪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언론이 가진 힘은 '구성원'들로부터 나온다. 발로 뛰는 당찬 기자들과 외압에 눈치 보지 않는 PD들이 있어야만 공영방송은 살아날 것일진대, 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린 김재철 사장과 그를 추종하는 MBC 경영진들이 있는 한 정상화의 길은 요원할 뿐이다.

따라서 누리꾼들의 '과잉 비판'에 억울해 할 것이 아니라, '가십·생활 뉴스'를 탈피하는 게 우선이다. 뉴스플러스와 같은 정치 관련 기획마저도 탈정치성 조장에만 그친다면 MBC의 '엄동설한'은 계속될 것이다. 작금의 보도 프레임을 지양하고 MBC가 공영 방송 본연의 모습을 찾는다면, 시청자들이 비판할 이유가 어딨겠나. 앵똘레랑스(불관용)가 만연한 시대에 똘레랑스(관용)을 위해 앵똘레랑스로 대응해야 하는 책무는 시대가 변해도 공영방송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MBC는 여러모로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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