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정자인가, 후보자인가? 요즘처럼 호칭이 헷갈리는 때가 없다. 누구는 내정자라고 하고 누구는 후보자라고 한다.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 측이 지명한 청와대 비서진과 각 부 장관 후보자들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장관 후보자들과 청와대 비서진에 모두 ‘내정자’라는 호칭을 붙여 보도한다. 또 일부 언론은 장관 후보자들에게는 ‘후보자’라는 호칭을, 청와대 비서진에는 ‘내정자’라는 호칭을 붙여 보도한다. 또 어떤 언론은 기자에 따라 제각각이다.

이에 대해 한국일보는 기사를 통해 명확한 기준을 밝힌 바 있다. 한국일보는 ‘총리와 장관의 경우 인사청문회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후보자라는 꼬리표가 붙지만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등은 새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므로 내정자 신분이 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대통령 당선인이 지명한 국무총리와 장관에 대해서는 ‘후보자’라고 하고, 내정한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에 대해서는 ‘내정자’라는 호칭을 쓴다는 것이다.

▲ 언론마다 제각각인 호칭 문제를 정리하려고 노력한 한국일보의 20일자 보도.

이쯤에서 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인사청문회의 대상이 되는 자부터 찾아보자. 인사청문회법과 국회법을 검토하면 인사청문회의 대상자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국무위원,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국가정보원장,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금융위원회 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합동참모의장, 한국은행 총재의 후보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핵심은 ‘대통령이 임명하는’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통령이 아니므로 위의 공직후보자의 청문을 요청할 수 없다. 다만, 국회법 65조 2항과 대통령직인수에 관한 법률 5조 1항, 인사청문회법 2조에 따라 대통령 당선인은 국무총리 후보자와 국무위원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인사청문회법 11조 2항은 이와 관련하여 행한 대통령 당선인의 행위는 대통령 임기가 시작된 후 대통령의 행위로 소급해서 본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박근혜 당선인이 현재 국회에 인사청문을 요청할 수 있는 자는 ‘국무총리 후보자’와 ‘국무위원’ 뿐이다. 정부조직법 22조에 의해 각 부 장관을 국무위원으로 보하게 되어 있으므로 결국 실질적으로 인사청문은 국무위원 후보자를 장관 후보자로 간주하고 진행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실제로 늘 그렇게 진행된다. 이렇게 보면 한국일보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정부조직법개정안이 아직 국회에서 의결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국방부, 법무부, 기획재정부와 같이 이미 존재하며 정부조직법개정안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는 그냥 ‘후보자’로 표기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미래창조과학부와 같은 경우는 적어도 현재로서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부처인데 김종훈 후보자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서 인사청문을 받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가 불분명해진다. 앞서 살펴본 법령에 따르면 김종훈 후보자의 경우 ‘국무위원 후보’로 인사청문 요청이 된 것은 옳으나 그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될 수 있는지 여부는 정부조직법개정안이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논란이 없는 방식으로 표기하려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내정된 김종훈 국무위원 후보자’로 하는 것이 맞다. 한 번 읽어보시라. 혀가 꼬일 지경이다.

▲ '내정자'와 '후보자'는 확실히 어감이 다르다. 사진은 허태열 대통령실장 내정자와 김종훈 국무위원 후보자이자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의 경우는 어떨까? 경제부총리의 직제는 정부조직법을 근거로 한다. 현행 법령에 부총리는 존재하지 않으니 새누리당이 제출한 정부조직법개정안을 살펴보자. 새누리당이 제출한 정부조직법개정안의 19조에 보면 ‘국무총리가 특별히 위임하는 사무를 수행하게 하기 위하여 부총리 1명을 둔다’고 되어 있으며 ‘부총리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겸임’한다고 명시돼있다. 물론 이것 역시 정부조직법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 되어야 효력을 가진다. 즉,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를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부를 수는 있지만 ‘경제부총리 후보자’로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정확한 표현은 ‘이른 바(법령에는 경제부총리라는 표현은 없으므로)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정부조직법개정안이 의결되지 않은 상황인데, 장관 임명 제청권을 행사했느냐?’라는 물음에 ‘장관 임명 제청권을 행사했다’고 답변해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인사청문회법 10조 3항과 국회법 46조의3 1항에 의해 대통령당선인이 인사청문을 요청한 국무총리후보자의 경우 이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는 국무총리임명동의안의 심사 경과보고서로 간주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채택되기 전의 국무총리후보자는 국무총리로서의 권한을 갖는지 여부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른 바 ‘총리 서리’에 대한 논란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다.

언론의 사명은 사실을 올바로 전달하는 것이다. 사실을 올바로 전달하기 위해 이런 명칭 하나하나에까지 신경을 써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지, 이런 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아까운 지면을 낭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대충, 퉁쳐서 ‘내정자’라는 호칭을 붙이는 게 편리한 방법일 수 있다. 굳이 정확하게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려는 기자들의 양심에는 한 가닥 죄책감이 남게 되는 바, 이러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국회와 인수위, 박근혜 당선인이 잘 협의해 빠른 시일 안에 정부조직법개정안을 의결해 주시기를 바란다. 마지막 쟁점으로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권한 범위에 대한 것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새누리당과 박근혜 당선인이 묘수를 짜내 어쨌든 빨리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것을 참 간곡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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