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사에 권력과 자본 비판을 기대하는 일은 '사치'에 가까운 일이 돼 버린 걸까.

지상파 방송사들은 사안에 대한 가치 판단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으며, 단순 공방 처리식 보도를 하거나 보여주기식의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14일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과 관련한 보도에서도 이러한 지상파 방송사들의 기만적 행태를 확인할 수 있다.

<미디어스>는 14일에 보도된 지상파 방송 3사와 종편채널의 메인뉴스에서 어떻게 '노회찬 의원직 상실'을 바라보고 있는지 분석해 봤다. 삼성과 중앙일보, 정치 검찰이 지저분하게 얽혀 있는 이 사건을 과연 어떻게 보도했을까?

1. 석연치 않은 대법원의 판결, 지적한 방송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 여론은 거세다. 대법원은 14일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재함으로써 통신비밀을 공개한 행위는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지만, 공익적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노회찬 전 의원을 기소했던 황교안 검사가 현재 법무부 장관 후보에 올랐다는 점에서 언론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방송 3사 중에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곳은 없었다.

SBS <8시 뉴스>는 5번째 꼭지(<'X파일 공개'노회찬 의원직 상실>)로 다뤘지만, 사실 관계를 나열하는데 그쳤다. 판결에 대한 비판 여론을 소개하거나 전문가의 의견을 담지 못한 채 노회찬 전 의원의 발언만 전달했다.

▲ KBS <뉴스9> 17번째 꼭지 <노회찬 의원직 상실> - KBS 화면 캡처

KBS <뉴스9>은 이 보도를 17번째 꼭지(<노회찬 의원직 상실>)로 소개했다. KBS는 "보도자료 배포는 의정활동이기 때문에 면책특권이 적용되지만, 인터넷 게재는 면책특권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낭독하는 것에 그쳤다.

KBS는 다른 지상파 방송사보다 '재보궐 선거'에 비중을 뒀다. KBS는 "(노회찬 의원의 의원직 상실을 비롯해) 최대 17명의 의원들이 추가로 물러날 수 있다" "오는 4월과 10월에 치러질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재판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며 판결의 내용보다 재보궐 선거 소개에 보도의 무게를 뒀다.

MBC <뉴스데스크>도 11번째 꼭지 <의원직 상실 재선거>에서 이 문제를 다뤘지만 대법원 판결과 노회찬 대표의 기자회견을 나열하는데 그쳤다. 결국 방송 3사 중 대법원 판결에 문제를 제기한 방송사는 없다.

2. 사실 관계는 제대로 잘 전달했는가?

노회찬 대표가 폭로한 '떡값 검사 7명'은 1997년 '안기부 X파일 사건'을 살펴 봐야 설명이 된다. 안기부는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밀담을 도청했고, 이 과정에서 검찰에 떡값을 돌린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2005년 노회찬 전 의원은 떡값 검사 7명을 보도자료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방송 3사 중에서 그나마 제대로 전달한 곳은 SBS였다.

SBS는 "당시 안기부는 검찰 간부들에게 떡값을 돌린다는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대화를 도청했다"며 "노회찬 의원은 8년 후인 2005년, 거론된 검사 7명의 실명을 보도자료와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했다"고 말했다. '안기부 X파일'을 설명하며, 카르텔의 주체인 '삼성의 이학수'와 '중앙일보의 홍석현'을 거론한 것이다.

KBS는 "지난 2005년 안기부 도청 문건에서 삼성그룹의 금품을 받았다고 거론된 이른바 떡값 검사들은 모두 7명, 노회찬 의원은 이들의 이름을 공개한 혐의로 지난 2007년 기소됐다"는 게 전부였다. MBC는 "지난 2005년 당시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른바 '안기부 X파일'에 등장하는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이들 전 현직 검사들이 삼성으로부터 떡값 명목으로 금품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고 보도해 KBS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3. 삼성 없이는 못 사는 종편…메인뉴스 보도는 TV조선 뿐

삼성가(家)와 혈연으로 맺어진 중앙일보·동아일보의 종편채널들은 '노회찬 의원직 상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삼성과 긴밀하게 유착돼 있는 '안기부 X파일'을 스스로 거론하기에는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 TV조선 첫 번째 꼭지 <의원직 상실…4월 '미니 총선'> - TV조선 화면 캡처

반면, TV조선은 첫 번째 꼭지 <의원직 상실…4월 '미니 총선'>에서 "부산 영도가 지역구인 새누리당 이재균 의원과 서울 노원 병이 지역구인 진보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며 "4월 재보선 지역 두 곳이 확정된 것이다. 그런데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은 의원이 3명이나 더 있기 때문에, 재보선 지역은 최대 5곳으로 늘어날 전망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TV조선은 노회찬 전 의원이 "삼성 떡값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해 유죄를 받게 됐다고만 밝혔다. 대법원 판결보다 재보궐 선거에 집중하는 보도 프레임은 KBS와 TV조선이 닮아 있다.

정리하면, 지상파 3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보도로 일관했다. 이는 노회찬 전 의원에 유죄를 판결한 대법원에 대해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을 주시하지 못한 것이고, 법조인들 마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내부적 분위기를 주목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용준 총리 후보 낙마' 국면에서 활약하며 존재감을 과시한 종편 채널들이 '태생'적으로 주춤할 수밖에 없는 사안에서 지상파 3사는 또다시 스스로 '권력에 대한 침묵'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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