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의 표시는 충분히 했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서 “정부를 지켜보자”고 한다.

‘제2의 6월항쟁’이라 불리고 있는 6·10 촛불대행진을 지켜본 조선일보의 주문이다. 그런데 ‘지켜보자’는 이유가 좀 웃긴다. △국무총리와 장관 모두가 쇠고기사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대통령실장과 청와대 수석들도 일괄 사표를 냈다 △미국과 쇠고기문제를 다시 협의하러 실무팀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대통령의 발언에 얼마나 진실함과 절박함이 담겨 있느냐는 조만간 있을 인적 쇄신 내용을 보면 확인될 것이다, 뭐 이 정도.

그러니까 정부가 ‘이 정도’ 했으니 ‘너네 시위대’도 이제 이쯤에서 촛불 들지 말고 집에 가란 소리다.

▲ 조선일보 6월11일자 사설.
2MB과 조중동의 닮은 점 … 재협상의 ‘재’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도 요즘 시민들 눈치를 이러저리 보면서 ‘마음’을 좀 읽는다 싶었는데 역시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시민들이 거리로 계속 쏟아져 나오는 이유가 뭘까. 조선일보를 비롯한 ‘비상식신문’(중앙 동아)은 현 정부 인사문제에 그 원인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중앙과 동아일보도 조선과 비슷한 주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신문사 논설위원들이 지금의 수세적 국면전환을 위해 저녁이라도 같이 드셨나?) 다음과 같다.

“쇠고기 사태 40일 만에 내각이 총사퇴했다. 대통령은 내각·청와대 개편을 포함한 국정 쇄신책을 준비하고 있다. 대통령은 먼저 이번 사태에 진솔하게 사과하고 빨리 국민 마음을 풀어주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두가 제 위치로 가야 한다.” (중앙일보 11일자 사설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자> 가운데 일부)

▲ 중앙일보 6월11일자 사설.
“이 대통령은 인적 쇄신, 국정 쇄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인사 실패’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능력과 도덕성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인물 대신 진짜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최대한 찾아내야 한다. 더는 실패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귀를 열어야 한다.” (동아일보 같은 날짜 사설 <대통령은 쇄신하고 여야는 정치 복원하라> 중 일부)

▲ 동아일보 6월11일자 사설.
“닥치고 재협상하라”는 게 100만 시민의 요구다

여기서 잠깐 퀴즈. 조중동과 시민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아는 사람? 그렇다! 세계사적인 퍼포먼스로 각광 받았던 ‘명박산성’이 가로질러 있다. 지금까지 시민들이 촛불 들고 줄기차게 요구했던 게 있는데 조중동은 그걸 모른다. 아니 알고서도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일단 시위대를 막고 해산할 궁리만 한다. 오늘자(11일) 지면 곳곳을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중앙일보의 경우 시민들에 대해 한껏 긍정적 평가를 해놓았지만 결국 속내는 사설에 담겨 있다. 결론은 이거다. “이제, 고마해라.” 조중동 그들은 여전히 시민들을 향해 마음의 명박산성을 쌓고 있다.

어청수-조중동-2MB은 그래서 닮은꼴이다. 그래서 2MB이 헤매는 것이고. 요구사항이 뭔지 들으려고 하질 않고, 시위대 규모에 놀라 지레 막을 궁리만 한다. 그러니 세계사적인 퍼포먼스가 나오는 것이다. (어청수 청장에게 수상의 영광을!)

‘고소영’ ‘강부자’로 상징되는 2MB 정부의 인사문제는 지금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2MB이든 조중동 간부든, 좀 현장에 나와라. 나오면 안다. 100만 시민들의 요구가 뭔지. “그냥 닥치고 재협상하라”는 거다. 사실 그런 점에서 2MB, 좀 딱한 측면이 있다. 어청수 경찰청장처럼 ‘명박산성’ 쌓을 궁리만 하는 ‘참모’들과, 조중동처럼 ‘헛소리’만 해대는 ‘우군’들이 주변에 가득하니 제대로 된 여론을 들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 청와대에서 재협상 불가론이 나오는 거고 결국 대규모 시위로 이어지는 것이다.

87년 6월과 2008년 6월. 많은 면에서 다르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되는 건, 이것이다. 전자가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였다면 후자는 구체적인 정부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수정요구라는 점. 사실 정당정치가 발전한 사회라면 이미 나름의 대안과 해법을 제도적 틀내에서 모색했을 수도 있다.

▲ 10일 광화문 네거리 컨테이너 차단벽 앞에서 '조중동은 쓰레기'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는 '희망산책' 회원들 ⓒ서정은
무기력한 제도권을 놔두고 무작정 돌아가라?

하지만 2008년 6월 한국의 ‘정당정치’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수용하고 대안을 모색하기에는 너무 ‘보수적’이고 ‘반동적’이다.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통합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대안을 내놓지 못한 채 시민들만 ‘졸졸’ 따라다닌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현실적인 힘이 없다. 그래서 시민들이 거리에 나오는 것이고, 정부를 상대로 직접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선 87년이나 2008년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는 셈이다. (물론 이런 제도적 틀을 만들어 준 건 시민들이다. 시민들 역시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 참에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한번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어청수 경찰청장은 ‘명박산성’을 쌓고,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사탄 발언’을 한다. 보수집회에 참가한 ‘어른들’은 “빨갱이 좌파 김정일 추종세력”이라는 어른답지 못한 발언을 시민들에게 해대고, 조중동은 시위대를 향해 ‘이쯤 했으면 됐다. 이제 고마해라’고 한다.

정말 딱하고 한심하다. 한심한 건 어청수 경찰청장과 조중동이고, 딱한(?) 건 이명박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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