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달 31일 국정원 직원의 ID를 자체 입수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해당 ID로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서 무엇을 했는지 검색을 해봤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 김모씨는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서 대선 후보들의 행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에 대해 찬반을 표시하거나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글들을 연속해서 게재하는 등의 행위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국정원 직원 김모씨 측은 한겨레 기자와 경찰 관계자, 사이트 관리자 등을 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라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민주통합당은 1일 ‘국정원 불법선거운동 진상조사위원회’ 명의의 기자회견문을 통해 이 사건을 ‘국정원의 야당 후보에 대한 조직적인 불법선거운동’으로 규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통합진보당도 4일 논평을 내고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정치공작 전반에 대한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했다.

▲ 국정원 직원의 ID를 제3의 인물이 사용했다는 한겨레의 2월 4일자 1면 보도.

한편,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밝혀진 아이디의 일부를 각기 다른 장소의 다른 인물들도 사용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해 사건은 점점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정원 직원의 행위, 무엇이 문제인가?

▲ 25일 오후 불법선거운동 혐의를 받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29)가 3차조사를 마친 후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스1
물론 한편으로 국정원 직원이 개인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밝힌 것은 문제가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국정원 직원이라는 점에서 업무 등의 진행에 있어 정치적 공정성을 고수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개인적 차원에서 정치적 의사를 표시한 것에 대해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게 이러한 주장들의 요지다. 게시판에 도배를 했든, 다른 게시판에 글을 옮겼든, ID 100개를 갖고 돌아가면서 썼든 개인적 차원에서 한 것이면 법률을 위반한 것이 아닌 이상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얘기다.

실제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개념은 공무원의 참정권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공무원이 정치나 정책으로부터 격리되는 것도 아니라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다만, 공무원은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하든 신분에 변동 없이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핵심이며 이를 통해 행정의 안전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현행 법률에는 공무원의 참정권이 일부 제한돼 정당의 가입, 정치단체 결성 등이 금지돼있으나 공무원노조 등의 단체에 의하면 이러한 제한은 과도한 것으로서 좀 더 적극적으로 공무원들이 정견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주장에도 반론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국정원 요원이라는 직책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요원의 경우 사적 활동과 공적 활동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직책의 특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러한 주장의 요지다. 때문에 국정원 요원들은 자신의 신분을 합법적으로 속일 수 있고 공적 활동을 사적 활동으로 위장하는 등의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역으로 적용하면 국정원 요원에게는 더 많은 기계적 중립성이 요구돼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관 차원의 지시인지 명백히 밝혀져야

종합하면 국정원 직원의 처신에 대한 것은 ‘윤리적 차원’에서 다뤄질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국정원 직원이 사적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어떤 행위를 할 때에 그것이 공적인 업무와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가지는 지가 일상적으로 해명되고 이것이 침해되지 않는 조직 내부의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형성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행위의 제한과 관련해서는 공적인 논의를 통해 윤리적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다.

▲ 문병호 비대위원과 국정원 불법선거운동 진상조사위원회 민주당 의원들이 1일 충남 보령시 한화리조트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워크숍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의 불법선거운동을 국정조사 해야된다고 밝히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이 사건이 국정원이라는 기관 차원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시작됐다면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이 된다. 일부에서 떠도는 소문 등이 보도된 바를 보면 이 사건은 국정원 3차장 산하 심리전단이 연관되어 있다는 식의 보도가 반복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ID 중 일부가 다른 사람에 의해서도 사용됐다는 보도들은 이러한 의혹을 더욱 커지게 한다. 만약 기관 차원의 지시에 의해 국정원 직원 김모씨가 위와 같은 행위를 한 것이라면 그러한 지시를 내린 공무원은 부당하게 정파적 특수이익과 결합해 공평성을 상실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그렇다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반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핵심은 국정원 기관 차원의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를 해명하는 것이 되는데, 이러한 작업은 결코 만만찮은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사건이 일어난 지 상당 시간이 흘렀고 국정원은 그 기관의 특성 상 자신들의 지휘체계 등을 은폐할 수 있는 여러 수단을 갖추고 있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는 것은 이를 둘러싼 지리한 정쟁 뿐일 것이라는 점을 조심스럽게 예측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러한 사례를 통해 책임 소재가 명확히 가려지지는 않더라도 국정원 등 권력기관이 자신의 권력을 사유화 하고 남용하는 데에 명백한 경고가 되는 정도의 효과는 기대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리라는 점은 두 번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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