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거취가 아직도 미궁 속이다. 22일 인사청문회 이후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되자 이동흡 후보자가 자진사퇴를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이동흡 후보자가 사실상 ‘잠수’를 타면서 거취가 불투명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르면 31일 자진사퇴를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으나 아직까지도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는 상태다.

애초에 새누리당 측은 ‘긍정적 의견과 부정적 의견 양쪽을 포함한 보고서를 채택하자’는 입장이었으나 민주통합당 측은 ‘부정적 의견의 보고서를 채택해야 한다’며 이견을 보였다. 청문회보고서 채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동흡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려면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통해 안건을 상정하고 새누리당이 사실상의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수밖에 없는데 워낙 여론이 좋지 않아 국회의장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다해 현재 공백상태이므로 이동흡 후보자가 스스로 사퇴를 하는 결단을 내려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동흡 후보자의 사퇴와 관련하여서도 정치권에서는 일종의 ‘폭탄돌리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주통합당 박용진 대변인은 ‘이동흡 후보자가 이번 주 초 사퇴의사를 밝혀 청와대가 이를 인수위에 전달했지만 인수위가 발표를 늦춰달라고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김용준 후보자 문제, 특별사면 문제 등 악재가 속출하자 몰매를 피하려는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닌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 졸지에 '폭탄'이 되어버린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뉴스1

진보정의당도 이러한 상황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진보정의당 이지안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청와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데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치졸하다’라며 ‘서로 책임떠넘기기를 하지 말고 이동흡 후보자 사퇴 문제를 깔끔하게 매듭지어 헌법재판소장 공백 장기화를 막기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 청와대와 인수위의 이동흡 후보자에 대한 의견은 서로 엇갈려왔다. 청와대 측은 수차례에 걸쳐 ‘이동흡 후보자는 박근혜 당선인과 충분히 상의한 인선’이라면서 ‘인수위와 새누리당이 결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인수위 측은 ‘이동흡 후보자의 임명권자는 현직 대통령’이라며 ‘임명권자와 국회에서 동의권을 가진 새누리당이 처리할 일’이라는 입장을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밝힌 바 있다.

국회에서의 상황도 마찬가지 양상이다. 새누리당은 ‘인사청문경과보고서에 청문위원 각각의 개별입장을 적도록 하는 선까지 양보했으나 민주통합당이 받아들이지 않아 보고서 채택에 대한 표결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나 민주통합당은 ‘인수위와 청와대가 서로 나몰라라 할 것이 아니다’라며 ‘후보자 본인이 자진사퇴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어떡하나, 폭탄 돌릴 수밖에….

청와대의 입장에서는 특별사면, 4대강 감사 등의 이슈에 이동흡 후보자 문제까지 겹쳐있는 상황이 곤혹스러울 것이다. 따라서 혼자만 독박을 쓰는 상황은 면하고 임기 마지막 날 까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모두 행사하기 위해서라도 박근혜 당선인 측과의 공동책임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 입장에서는 인수위 초기부터 인사문제를 둘러싼 논란에 시달려온 데다 최근 김용준 총리 후보 지명자의 자진사퇴라는 대형 악재에까지 부딪치게 되어 더 이상의 인사 논란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입장일 수 있다. 따라서 최대한 이동흡 후보자 인사 문제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미 말했지만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조속히 사퇴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새누리당으로서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청와대와 인수위 측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만 이것을 모른 체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2월 임시국회 일정 합의서에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보고서에 ‘적격’, ‘부적격’을 명시해 본회의에서 표결할 것을 요구했으나 민주통합당이 이를 거부해 무산된 상황이다.

민주통합당으로서도 국회에서 이동흡 후보자에 대한 보고서를 처리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대선 패배 이후 활로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는 민주통합당’이라는 흑색선전이 다시 가동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선명한 야당보다는 합리적이고 온건한 야당으로 비춰지는 게 더 긍정적이지 않겠느냐는 내부의 기류가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정치적 부담을 쉽게 감내할 수 없다.

정리하자면, 사퇴할 수도 없고, 사퇴를 안 할 수도 없는 이동흡 후보자의 처지와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그리고 애초에 이런 문제를 함께 만들어 낸 청와대와 인수위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묘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며 이동흡 폭탄의 심지는 계속 타들어가고 있다. 째깍째깍, 이제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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