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지명자의 사퇴로 인해 조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용준 지명자가 갑작스럽게 사퇴하는 바람에 애초에 계획했던 절차를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얘기다. 박근혜 당선인 측은 이번 주말을 경유해 총리 후보 지명자에게 국무위원을 추천받아 검토한 후 발표하는 과정을 거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김용준 지명자가 사퇴 의사를 밝힌 다음날인 30일 자택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순연될 수밖에 없는 조각 일정

박근혜 당선인은 선거 기간의 공약과 당선 이후의 언급을 통해 ‘책임총리제’를 구현하겠다는 발언을 해왔다. 책임총리제란 총리에게 상당한 정도의 권한을 배분해 국무위원 제청권 등을 확대하여 보장하겠다는 것이 취지다.

물론 총리인선 논의 과정에서 책임총리제보다는 장관에게 실질적 권한을 주는 책임장관제가 정부 조직의 기본 골격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으나, 그런 체계라 할지라도 총리가 해야 하는 역할은 막중하다.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구상이 아닌 이상 내각의 책임이 강화되면 당연히 총리의 책임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굳이 책임총리제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현행 헌법 87조는 국무위원을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조항을 위반하지 않는 한 국무총리 없이 조각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김용준 지명자의 후임 인선이 완료될 때까지 국무위원 인선 작업은 사실상 중단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물론 국무위원을 내정한 상태에서 후임 지명자가 형식적인 제청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총리 지명자가 무색무취한 인물이며 박근혜 당선인의 뜻을 전적으로 존중해줄 수 있는 인사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국회에서 총리 및 내각에 대한 인사청문회 기간이 20일로 보장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 정부가 임기를 시작하는 2월 25일 전까지 조각이 완료되려면 2월 4일까지는 내각의 인선이 마무리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상황들을 고려하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할 수 있다.

▲ 국무회의는 의결기관인 각의와 자문기관인 장관회의를 절충한 것으로 대통령 및 국무총리와 30명 이하의 국무위원으로 구성되며 대통령이 의장, 국무총리가 부의장을 맡지만 관례상 국무총리가 회의를 주재한다. 사진은 22일에 열린 국무회의의 전경. ⓒ뉴스1

첫째는 조각이 완료되지 않은 채로 새 정부의 임기가 시작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전임 정부의 국무위원들이 국무회의에 참여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경우 조직개편안을 놓고 여야가 대립해 조각이 늦어져 참여정부의 한덕수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이미 청문회 등을 통과해본 인사로 총리 후보를 지명한 후 논란이 없는 상황에서 빠르게 일정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앞서 언급했듯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고 당선인의 의사에 동조할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한 상황이 된다. 소위 ‘관리형 총리’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김황식 총리를 유임시키는 방식을 취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있다. 다만,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의 이전 정권 총리 연임은 전례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야당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 그러나….

문제는 어떤 시나리오든 새 정부가 첫 번째 단추를 잘 꿰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2월 국회에서 총리 및 내각에 대한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과 정부조직개편안 등이 전부 무리 없이 통과되어야 2월 25일에 임기를 매끄럽게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로 인수위와 새누리당 간의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고 둘째로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간의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게 된다. 원내에서의 정치라는 것은 실리를 주고받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주통합당 측은 자신들의 입장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민주통합당 일각에서는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통합당 우상호 의원의 경우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를 통해 ‘외교통상부에서 통상을 잘라내 지경부를 주겠다는 발상은 미래창조과학부에 일부 권한을 빼앗긴 지경부를 달래는 차원’이라면서 ‘98년에 나쁜 선례를 극복하기 위해 통상교섭기능을 외교부로 통합시켰던 것이다. 별다른 문제점이 드러난 것도 아닌데 이러한 개편을 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인수위가 민주통합당의 이러한 입장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도 어렵다. 정부조직개편안은 각 부처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 도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직 개편이 공직사회를 한 번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는지에 대한 관심 때문에 정부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지경에 이르는 일이 허다하다.

▲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열린 주춧돌 월례 세미나 '한국 정치의 나아갈길'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주춧돌'은 민주통합당 의원들의 탈계파 정치모임으로 지난 27일 발족해 이날 첫 정례회의를 열고 지난 대선과정에서 표출된 정치쇄신과 정당혁신에 대해 논의했다. ⓒ뉴스1

민주통합당 내부의 상충하는 기류도 문제다. 민주통합당은 대선 패배 등을 둘러싸고 평가를 진행하는 과정인데 한 쪽에서는 선명한 대여전선을 강조하는 반면 또 한 쪽에서는 합리적이고 온건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흐름이 어떻게 지금 상황과 조응하느냐에 따라 여·야 합의가 어느 수준에서 이루어질 것인지가 결정된다. 이후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선명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측의 목소리가 커지면 2월 국회에서 진통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정부조직개편안이 2월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인수위의 입장에서는 국무위원 인선이 빠르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신설되는 부처의 장관의 경우 ‘각 부의 장관’이 아닌 ‘국무위원’으로 발표하는 편법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즉, 공이 야당으로 넘어가버린 상황에서 이것이 어떻게 처리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정국이 안갯속과 같은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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