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충격이다. 사상 최초로 정부의 초대 총리 후보 지명자가 사퇴한 것이다. 지명이 될 때도 충격이었는데, 사퇴할 때에도 충격이다. 총리 후보 지명이 발표될 때에도 총리직을 수행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김용준 지명자는 사퇴할 때에도 미련 한 조각 없이 그렇게 떠나버리고 말았다.

▲ 28일 새누리당-대통령직인수위 연석회의에서 넥타이를 고쳐매는 김용준 지명자. 어딘가 곤란하고 고독해보인다. ⓒ뉴스1

사퇴의 이유를 추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애초에 무난한 인사라는 평을 들었던 김용준 지명자였지만 검증 국면이 시작되면서 여러 의혹이 하나씩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해명 과정을 감당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특히 아들들의 병역비리 문제는 치명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본인의 명예에 국한된 문제라면 어떻게든 감당하면 되는 것이지만 가족이 연루되는 문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본인의 총리 후보 지명과 관련하여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김용준 지명자 스스로 부당하다는 마음을 갖고 있던 것 같다. 이는 김용준 지명자가 남긴 국무총리 후보자 사퇴 발표문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참고. 김용준 지명자의 국무총리 후보 사퇴 발표문

저의 부덕의 소치로 국민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쳐드려 국무총리 후보자를 사퇴하기로 결심했다.

이 기회에 언론 기관에 한 가지 부탁드린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보도라도 상대방의 인격을 최소한이라도 존중하면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로 비판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인사청문회가 원래의 입법 취지대로 운영되기를 소망한다.

마지막 문단에서 우리는 어떤 ‘억울함’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김용준 지명자가 했을 법한 생각을 재구성해보자면 이런 서사가 가능하다. 김용준 지명자 본인은 스스로 딱히 사악한 마음을 가져본 일도 없고 법조인으로서의 도에 어긋나는 삶을 살아오지도 않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부동산이야 어떤 곳은 74년에 구입한 토지가 2004년에 이르기까지 가격이 100배로 뛸 줄은 몰랐던 것이고, 또 어떤 곳은 친구가 땅을 사는 게 좋겠다고 하여 대충 일을 거들어 준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할지 모르겠다. 물론 세금 납부 등의 관계는 복잡해서 잘 모르나 세금을 내라고 하여 낸 것뿐이라는 이야기도 할 수도 있다.

아들들의 군 면제는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있으면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누가 제안하는 바대로 알아서 하라고 말한 죄밖에 없었을 수도 있고 이 모든 것을 자신이 모르게 배우자가 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건 이래서 있을 수 있는 일이었을 수 있고, 저건 저래서 있을 수 있는 일이었을 수 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한 죄밖에는 없지 않느냐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까지 나열한 이야기들은 김용준 지명자 본인이 해명한 내용이 아니다. 본인이 해명을 당장은 포기하였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런 의혹들에 대해 김용준 후보자가 무슨 생각을 가졌었는지를 알 수 없다. 다만 사퇴의 변을 통해 미루어볼 때 무언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겠다는 추측을 하며 여기에 들어맞는 이야기를 한 번 구성해본 것뿐이다.

하지만 그로 미루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김용준 지명자의 흠결은 기본적으로 ‘기득권에 안주한 죄’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돈 없는 서민들은 이런 수많은 혜택(?)들을 볼래야 볼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본인에게 적극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가정을 하더라도 김용준 지명자가 취할 수 있었던 이런 저런 이득에는 본인이 사회지도층의 일원이라는 점이 작용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정이 완전히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김용준 지명자에게는 지금까지 누구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굉장한 사정이 있어서 이런 의혹을 받는 처지가 됐을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수치로 표현하면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정도로 미미할 것이다.

▲ 생각에 잠긴 박근혜 당선인. 앞으로 어려운 국면을 헤쳐나가야 하는 신세가 됐다. ⓒ뉴스1

이제 박근혜 당선인은 어려운 국면에 빠지게 됐다. 내각 구성 일정도 불가피하게 뒤로 미뤄야 할 판이다. 총리 후보자 없이 내각을 구성할 수도 없고 총리직 공석으로 임기를 시작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새로운 총리 지명자를 데려와서 ‘지난번 그 분은 문제가 많았지만 이 분은 거의 완벽하십니다’라며 다시 소개를 하는 것도 민망스럽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어정쩡한 거취와 이명박 대통령의 ‘안 들려 특사’(대통령은 특사에 관한 온갖 비판에 그냥 귀를 막고 있는 것 같았다)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여론이 좋지 않은데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것이다.

물론 박근혜 당선인은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 위기관리능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따라서 당선인은 이번에도 이 위기를 어떻게든 현명한 수를 내서 돌파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감히 새삼스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당선인’과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은 훨씬 더 엄격한 잣대를 당선인과 새 정부에 들이 밀려고 할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과 새 정부의 구성에 따라 자신들의 삶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이 문제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 전 국정운영 동력을 어떻게 확보하고 유지할 것인지의 문제라는 얘기도 된다. 따라서, 충분히 숙고해서 제대로 검증된 인사를 다시 지명해주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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