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상황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대선 패배에 대한 각종 평가와 반성이 쏟아지고 있지만 내용은 전부 제각각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와 새누리당, 이명박 대통령은 여전히 이슈 생산의 중심이 되고 있지만 민주통합당 소식에 관심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각 언론에서 의무방어처럼 기획한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인터뷰에서만 당 내 분위기를 전해들을 수 있는 정도다.

▲ 민주통합당이 스스로를 반성하고 평가하는 온갖 토론회를 연일 열고 있다.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진보의 혁신과 한국사회의 미래' 토론회에 참석한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뉴스1

선거 패배 후 40일 정도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해 명쾌한 정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쟁점이 형성되는 주제는 모바일 투표와 지도체제 개편, 당권과 관련이 있는 부분뿐이다. 나머지 주제에 대해서는 상대 계파를 흠집 내기 위한 발언과 정치적 당위 만이 간헐적으로 제출되고 있을 뿐이다. 결국 명분을 당 혁신으로 당권이라는 실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당권 경쟁으로 귀결되는 혁신 논의

‘친노책임론’의 대두에서부터 ‘안철수 보고서’가 논란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짚어보면 이러한 상황이 더욱 명확해진다. 친노책임론은 애초에 그간 정치적 과정에서 소외됐던 비주류 측을 중심으로 제기된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진 이유는 친노세력의 전횡과 정책적 실패로 인해 리더십이 훼손됐기 때문이라는 게 주요 요지다. 그러나 이 주장의 실리적인 측면을 다시 해석해보면 ‘다음 당권 선거에 주류는 나오지 말라’는 것으로 풀이 할 수 있다.

물론 당 주류의 입장은 좀 다르다. 선거에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반발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자기들 나름대로의 반박을 내놓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손을 놓고 있었던 비주류에게도 책임이 있다’, ‘안철수 후보도 책임의 당사자다’라는 식의 언론플레이가 그것이다. 최근에는 민주정책연구원 측에서 작성된 소위 ‘안철수 보고서’가 자극적인 방식으로 가공돼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정치적 아웃사이더가 선거 패배 뒤 정치권의 주역이 된 경우는 없다’는 평가를 했다는 내용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선거 패배가 꼭 우리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대위원장을 인터뷰한 한국일보의 기사

당 내의 이 두 가지 기류는 필연적으로 이 사이에서 중심을 잡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인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28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안철수 후보도 책임이 있다는 ‘공동책임론’을 제기하면서도 ‘친노 그룹이 차기 당권에 도전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모바일 투표에 대해서도 ‘모바일 투표 자체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투표 대상을 당원으로 한정하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는 안철수 전 후보를 중심으로 추후 당 주류에 대한 전선을 구성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는 비주류 측의 구상과 안철수 전 후보가 중심이 되는 정계개편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친노 그룹의 입장을 동시에 고려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당권을 둘러싼 계파적 손익계산만으로 당 혁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적 냉소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안철수 현상'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일반에 대해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냉소주의의 강렬한 표현이었다는 게 많은 평론가들의 지적이었다. ⓒ뉴스1
‘안철수 현상’은 정치권에 대한 일반적 냉소주의가 ‘안철수’라는 아이콘을 통해 전면적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현상 그 자체가 정치권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의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힘겨루기는 이러한 경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대통령 선거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표 차로 패배한 정당이 취해야 할 태도치고는 지나치게 안이한 것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한 입장 차이만 봐도 그렇다. 안철수가 민주당에 입당해야 한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던 세력을 끌어 들어야 한다, 이런 식의 평가만 난무할 따름이지 정작 안철수를 통해 표현됐던 정치적 냉소주의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민주통합당의 조직적 기반이 되어 주었던 호남향우회의 정치적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고 2010년 이후 벌어진 선거에서 계속 신통치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음에도 이러한 안이함은 반복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려는 시도를 하는 시늉을 한 역사는 있다. 2010년 지방선거 전후로 이해찬 전 대표 등이 시도했던 시민운동 스타일의 민주당 외곽조직 건설 움직임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당시에도 당 내의 권력투쟁과 맞물려 결국 기성 정치권의 고공정치에 흡수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러한 흐름은 2012년 총선에서 시민운동 출신들이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되는 현상의 일익을 담당하기는 하였으나 현재 민주통합당의 튼튼한 조직적 뿌리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는 부분이다.

모바일 투표와 같은 제도적 장치도 마찬가지의 운명을 겪었다. 애초에 모바일 투표 제도는 당의 리더십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자는, 정치적 냉소주의에 대한 극복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주류 및 친노그룹의 당 외의 자기 세력 동원을 위한 시스템인 것처럼 비쳐지고 친노그룹이 주류세력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바람에 이제는 혁신의 대상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노선과 이에 따른 전술을 새롭게 해야

이러한 사례들은 혁신의 논의와 이에 따른 결론이 다시 기성 정치로 내화됐을 때 어떤 결말로 이어지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민주통합당 혁신 논의에서 필요한 것은 어떤 비전을 세울 것인지, 그리고 이 비전에 대한 당 내의 합의 과정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다.

▲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열린 주춧돌 월례 세미나 '한국 정치의 나아갈길'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윤 전 장관은 지난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 측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을 지냈다. '주춧돌'은 민주통합당 의원들의 탈계파 정치모임으로 지난 27일 발족해 이날 첫 정례회의를 열고 지난 대선과정에서 표출된 정치쇄신과 정당혁신에 대해 논의했다. ⓒ뉴스1
그런 의미에서 29일 소위 ‘주춧돌 모임’이 주최한 강연에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내놓은 고언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윤여준 전 장관은 ‘친노와 비노의 대선 평가를 보면 선거 공학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고 말하며 ‘당의 정체성 확립과 시대적 과제 설정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에 어디까지 협력할 것인지, 또 어디까지 비판할 것인지 범위를 설정해야한다’면서 ‘국가주의적인 박근혜 정부에 맞서서 국회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의 이념적 노선을 중도자유주의로 설정하고 원내 활동에 치중해서 국민들에게 ‘정치적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미국식 민주당’으로 자리매김 해서 중도부터 진보까지 폭넓게 포괄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문희상 비대위원장도 이런 모델을 말한 바 있다. 있을 수 있는 주장이라고 본다.

다만 어떤 노선을 선택하든 그 노선에 맞는 전술이 수미일관하게 따라와야 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중도자유주의 노선에 집중하려면 진보정당들과는 사안별로 연대하되 진보적 유권자 층은 그들의 기본적인 정치적 토양으로 보장해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반대로 미국 민주당 모델을 상정한다면 진보적 유권자층까지 포용할 수 있는 당의 풀뿌리 조직을 만들고 진보정당들과의 통합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즉, 민주통합당의 혁신 논쟁은 노선 대 노선의 과정으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당 혁신과 노선정립의 과정을 투명하게 대중 앞에 보여주고 새로운 시대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지혜를 서로 구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국민들의 정치적 갈증을 풀어주는 것이 정치적 냉소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세력이 될 수 있는 길이라는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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