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나갈 땐 운전기사 딸린 중형차를 타면 됐다. 그러다 보면 또 월급날 됐다. 그러나, 생각대로는 안 됐다. 방송사에 사표를 던졌다, 대책없이.

시간이 남아돌아 거리로 나섰다. 풍경이 낯설었다. 한손에 노트북 받쳐 들고, 다른 한손엔 캠코더를 움켜쥔 이들이 종횡무진, 신출귀몰하고 있었다. (양초 값을 누가 대는지 모르듯) 그들 월급을 누가 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은 ‘생각대로 하면 되는’ 듯 보였다. 세상 사람들은 다 아는 그걸, 청와대와 나만 모르고 있었다. 기자랍시고, 오히려 청맹과니였다. 늦게라도 눈을 떴으니, 사표 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미디어다.”

안녕하십니까? 편집장의 강권으로 자기 소개서를 쓰고 있는 저는 <미디어스> 새내기 기자 안영춘입니다. 새내기는 새내기인데, 빅뱅보다는 현철, ‘파릇파릇’보다는 ‘시들시들’, 잘 쳐줘야 ‘푸르죽죽’에 가깝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미디어스>에 이미 고정필자로 몇 차례 잡문을 써서 올린 적이 있는 ‘중고 신인’입니다. 더구나 이곳이 첫 일터도 아닙니다. 언론사로만 벌써 세 번째. 매체 종류로는, 신문·시사 주간지·인터넷·지상파 방송, 무려 네 가지를 거쳤습니다. 좋게 말하면 ‘노마드’, 액면가대로는 ‘역마살’이겠죠.

제가 몸담은 첫 언론사는 <한겨레>였습니다. 촛불시위가 한창인 요즘도 종이신문으로는 드물게 ‘뜨고’ 있지만, 20대 후반 입사할 당시 한겨레는 엄혹한 한국사회에서 신문과 방송을 통틀어 대중의 신뢰를 받는 유일한 매체나 다름없었습니다. 울고 웃으며, 십수년 젊은 날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기자로서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미디어 환경은 빠르게 변해갔고, 어느덧 한겨레가 더는 유일한 대안 매체가 아닌 시대가 왔습니다.

신문이 정규군·보디빌더라면, 인터넷은 게릴라처럼 순발력 있고 요가 선수처럼 유연해 보였습니다. 두렵고, 시새웠습니다. 신문 일을 접고, <인터넷 한겨레>로 자리를 옮겨 일했습니다. ‘탈주’가 아닌 ‘ 모색’이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신문의 미래를 전망하고, 신문과 인터넷의 관계를 정립해보고자 했던 겁니다. 하지만 답을 미처 찾지 못한 채 한겨레를 떠났습니다. 한겨레! 제가 그때 못 찾은 답을 이제 함께 찾읍시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파이팅!!!

두 번째로 둥지를 튼 곳은 경인지역 민영방송 <오비에스>였습니다. 옛 <아이티브이>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노동자들이 사주의 전횡에 맞서다 방송위로부터 사상 초유의 정파(停波) 조처를 당했던 ‘비운’의 방송사 말입니다. 사주가 직장을 폐쇄하자, 아이티브이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서 3년을 눈물겹게 싸웠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방송허가를 다시 얻었습니다. 그 기적 같은 싸움의 성과로 개국한 방송사가 바로 오비에스입니다.

사주와 맞설 때도, 방송 재허가 투쟁을 벌일 때도, 아이티브이 노동자들이 표방한 방송철학은 ‘공익적 민영방송’이었습니다. 사적 자본의 토대 위에서 공적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발상이 과연 얼마나 과학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상파·케이블 할 것 없이 사적 이윤을 노린 핑크빛 전파만 하늘 가득, 땅속 가득 난사하고 있는 이때, 공영방송도 아닌 공익적 민영방송을 하겠다는 그 꿈은 얼마나 다부지고 아름답습니까. 그래서 저도 맛있게 끓기 시작하는 찌개 냄비 위에 염치없이 숟가락 하나를 슬쩍 올려놓았더랬습니다.

신생 방송사를 공익적 민영방송으로 키워가려는 그들의 꿈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나 국민주권의 대리인이라는 자가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천연스레 외치며 공영방송마저 사영화하려는 지금, 그 꿈은 안팎 모두에서 여러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비록 받쳐주지 않는 용모를 극복하지 못해 제풀에 떠났으나, 오비에스 노동자들이 그 소중한 꿈을 이뤄나갈지 끝까지 지켜보며, 밖에서라도 한 숟가락 보태렵니다. 누가 뭐래도, 오비에스의 주인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제가 새 일터에 거는 기대는 ‘크지’ 않습니다. 미디어스는 ‘작은’ 매체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러나 ‘강한’ 매체는 될 수 있습니다. ‘모두’(어스)의 매체보다 강한 ‘매체’(미디어)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미디어스는 ‘큰’ 매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규모의 가치에 집착할 때, 힘에 대한 독점과 배제의 의지가 작동하는 탓입니다. 기성 언론과 거리의 매체 사이에서 연대-경쟁-대립-확장-수렴하는, 강한 미디어스를 기대합니다. 여러 매체 종류를 역마살로 두루 훑은 저의 얕은 경험을 여기에도 한 숟가락 보태겠습니다.

우리가 미디어고, 미디어가 곧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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