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활동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경향신문은 지난 주 보도를 통해 ‘민주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지 일주일이 넘도록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놓았다. SNS 등에서 관측되는 시민들의 여론 또한 민주당에 결코 우호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대위의 소위 ‘회초리 투어’와 이것에 대한 당 내의 비판, 대선 결과 재검표 요구에 대한 시비까지 뒤섞여서 민주당 내외는 그야말로 ‘지리멸렬’의 상황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의 무기력증을 질타한 경향신문의 보도.

지리멸렬의 원인

이러한 상황의 원인을 ‘계파갈등’ 때문으로 보는 여론이 다수인 것 같다. 친노와 비노로 불리는 민주당 내부의 양대 계파는 이명박 정부 내내 지리한 싸움을 이어왔다. 특히 2012년 총선과 대선의 패배에 관하여 친노 세력의 책임이 크다는 평가가 불거져 나오자 이는 통제불가능한 갈등 상황으로 치닫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계파 갈등은 민주당 지도부가 분명한 노선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과감하게 결단하는데 계속해서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평가이다.

회초리 투어를 통해 시민들과의 만남을 진행한 문희상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실제 현장에서 계파 좀 없애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며 ‘나는 다음 대표, 원내대표 나갈 사람도 아니고 다음 국회의원 나갈 사람도 아니다’라고 말해 20대 총선 불출마를 시사하며 계파의 종식을 촉구하기도 했다. 비대위원장의 자리에서 볼 때도 계파 간 갈등의 문제가 그만큼 심각했다는 얘기다.

이러한 기류에 화답하듯 민주당 의원 중 일부는 ‘탈계파 의원모임’을 결성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내일신문은 18일 기사를 통해 민주당 계파 간의 중립지대에서 탈계파 의원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각기 대선 평가와 새로운 정치에 대해 토론하는 분위기가 만들어 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 민주통합당 대선평가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 한상진 명예교수 ⓒ교수1
21일 가동이 시작된 대선평가위와 정치쇄신위원회의 활동에도 이런 고려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대선평가위원장 한상진 명예교수와 정치쇄신위원장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21일 4차 비대위 회의에 참석해 각각 위원회의 독립적 위상과 당 조직으로부터 분리된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친노세력의 실질적 후퇴?

이 모든 과정이 ‘탈계파’를 향한 어떤 ‘충정’에서만 비롯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경험했듯 정치에서는 테이블 위의 명분을 다루고 테이블 아래서는 치열한 수싸움이 펼쳐지곤 한다. 때문에 정치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분도 섬세하게 판단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대선평가위원회 위원장인 한상진 명예교수가 안철수 후보 캠프의 국정자문단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대선평가가 친노 세력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선평가가 중요한 이유는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한상진 교수를 대선평가위원장으로 선임한 것은 향후 안철수 전 후보가 귀국하게 될 때 함께할 수 있을만한 근거를 만들 수 있는 사전작업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전대준비위원장에 김성곤 의원을 임명한 것도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김성곤 의원은 지난 해 이해찬 의원이 당대표로 당선된 전당대회에서도 전대준비위원장을 맡아 주류에 가까운 인사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김성곤 의원 측은 ‘당시 전대준비위는 당시 모바일 투표를 안 하거나 최소화하는 것으로 결정했는데 최고위원회가 이를 뒤집은 것’이라는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당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기도 해 민주당 지도부 선거에서 모바일투표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축소되거나 폐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상황은 소위 친노세력에게 유리하지 않은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비록 정치쇄신위원장을 맡게 된 정해구 교수가 문재인 캠프에서 새정치위원회 간사를 맡아 ‘계파별 안배’가 이뤄진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정치쇄신위가 담당하게 될 중앙당 개혁이나 당원구조 재설계 등의 문제는 ‘민주당이 문제였다’는 식의 주장에는 힘을 실어줄 가능성도 있지만, 향후 예상될 야권 내부 권력의 역학 관계에서 당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예상도 쉽게 해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향후 전망

결국 ‘탈계파’라는 명분하에서 여전히 각 계파가 자기 이득을 위해 얼마나 각개약진 할 것인가가 향후 민주당의 노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진다는 결론을 내려도 좋을 것 같다.

먼저 대선평가와 관련해서는 민주당 자체의 문제였는지, 특정 계파의 문제였는지 중 어디에 핵심을 두느냐에 따라 각 계파의 희비가 엇갈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충분히 중도적이지 못했다는 등 민주당 자체의 문제라는 주장이 강화될 경우 상대적으로 ‘친노책임론’은 중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친노 패권주의’가 문제였다는 것이 핵심이 될 경우 ‘친노’의 이름표를 달고 있는 인사는 차기 전대에 출마도 하지 못하는 지경이 될 수 있다.

▲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대선평가위원장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정치쇄신위원장인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와 인사 나누고 있다. ⓒ뉴스1

당 내 소위 486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공동책임론’ 등이 부각될 수도 있으나 선거 패배의 충격이 워낙 큰 상황이어서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탈계파’라는 것은 계파 간의 감정 대립이 너무 큰 상황에서 한쪽으로 쏠리면 당이 깨지고 그냥 ‘계파안배’에서 멈추면 대응이 안일해지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2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향우는 안 된다’며 ‘진보를 기반으로 중도를 포괄하는 노선이 옳다’는 소위 ‘선명야당론’을 피력했다. ‘중도로 가야한다’고 주장한 인사들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그는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 중 의견이 같은 것은 적극 협력 하겠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선명한 주장을 내세우면서도 동시에 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보를 취한 것이다. 아마 이러한 기조의 행보는 1월 임시국회에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문제나 쌍용자동차 국정조사 문제 등에서 취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당 내의 문제를 처리할 때에도 이런 식의 균형잡기를 선호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행보에는 일장일단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제1야당인 민주당이 올바른 모습으로 거듭나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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