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선인의 기초연금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의 의원들이 차례로 나와 언론에 당선인의 공약을 이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박근혜 당선인이 탄생한 직후부터 보수언론이 일제히 ‘포퓰리즘적 공약’을 물러야(?)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론을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받아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기초연금의 즉각적 시행은 불가능?

먼저 총대를 맨 것은 심재철 의원이다. 그는 14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무조건 공약대로 하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현실적으로 실현이 쉽지 않은 공약들에 대해서는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뉴스1
나성린 의원도 이러한 목소리에 힘이 실리도록 하는 것을 거들었다. 14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나성린 의원은 ‘참여정부 때 논의된 연금개혁이 제대로 시행이 안 돼 일단 출범한 것이 공적부조인 기초노령연금’이라면서 ‘우리 공약은 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과 통합해 기초연금을 만드는 것인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적립한 만큼 돌려받는 국민연금과 공공부조의 성격을 갖는 기초노령연금을 통합하는 것은 현행 연금체계를 뜯어 고쳐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기초노령연금은 만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의 노인들에게 소득에 따라 최대 9만4천6백원을 지급하는 체계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은 이를 국민연금과 통합해 기초연금으로 만들고 모든 노인들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나성린 의원의 주장은 소득 상위 30%의 노인들은 어차피 국민연금이나 직역연금 등 다양한 연금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 재원을 사용할 수 있지만 소득 하위 70% 대상자의 경우 국민연금에 기여를 하지 않으니 국민연금을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렵고 그러자면 세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출구조조정만으로 재원마련은 역부족

▲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 ⓒ뉴스1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는 심재철 의원이 다시 출연해 공약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했다. 그는 ‘돈 잘 버는 상위 30%의 노인들에게 노령연금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며 ‘여든 야든 선거 때는 표를 얻기 위해서 이거 저거 다 해준다고 말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면서 재원과 관련하여는 ‘인수위가 증세나 재정적자는 안 하겠다고 했으므로 남은 것은 세출구조조정인데 각 부처에서 조 단위의 예산을 끄집어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기초연금 등의 공약이 원칙에도 맞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어렵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성린 의원과 심재철 의원은 과거 ‘친이계’로 분류된 전력이 있기 때문에 복지정책을 둘러싼 새누리당의 계파 간 갈등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표현하는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16일 아침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친박계로 구분되는 김재원 의원이 출연해 비슷한 주장을 반복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박근혜 당선인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됐다.

▲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 ⓒ뉴스1
김재원 의원은 인터뷰를 통해 ‘아무리 복지공약이 훌륭해도 국가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노력도 하지 않고 공약 시행을 포기하자고 하는 것도 문제지만 증세논의 없이 모든 공약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는 현재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가 세출구조조정 등의 노력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기 힘든 상황임을 직접적으로 고백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기초연금 뿐만이 아니라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한 4대중증질환 진료비 국고지원 등의 복지 관련 공약이 재원 문제 때문에 난관에 부딪칠 것이라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박근헤 당선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다음의 세 가지 정도일 것 같다.

박근혜 당선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

첫째는 보수언론과 새누리당 일각의 목소리대로 공약을 사실상 폐기하는 것이다. 자신의 공약(公約)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공약(空約)이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새누리당 내부와 이념적으로 보수적 시각을 갖고 있는 지지층에게 안도감을 줄 수는 있겠지만 야당과의 관계는 정권 시작부터 파탄지경에 이르고 정국주도권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점이 리스크다.

정국주도권이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이것을 되찾기 위해 무리수를 두게 되고 이 무리수가 다시 리스크로 작용하게 되는 악순환은 우리가 MB정부를 통해 충분히 목도한 바 있다. 따라서 이 길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다.

둘째는 현재 세출구조에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증세 논의를 당장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적 합의를 위한 사업을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일종의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프로세스가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과정을 잘 진행할 수 있다면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걸림돌은 부유층과 기업의 반발이다. 증세논의가 진행되면 어느 부분에서 얼마를 더 걷어야 할지를 정해야 할 것인데 직접세를 올리는 방식은 부유층에 부담이 되고 간접세를 올리는 방식은 전국민에게 다 부담이 된다. 하지만 정부는 보통 국민의 부담은 신경을 잘 쓰지 않으므로 간접세를 실제 납부해야 하는 기업의 경우 문제가 된다. 더군다나 간접세 인상은 물가상승의 요인으로도 작용해 소비를 위축시킬 것인데 물가인상이 기업의 입장에서 이득의 증대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부담은 더욱 가중된다.

셋째는 그냥 뭉개면서 이대로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 같다. 박근혜 당선인의 의지로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했는데, 과학기술을 토대로 한 일자리 창출과 경제 부흥이라는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서비스업보다는 제조업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전체적인 정부개편안을 ‘큰 정부’로의 변화로 해석하고 있는 다양한 언론들의 보도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 한다.

▲ 박근혜 당선인의 경제 정책 수립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강석훈 의원과 안종범 의원 ⓒ뉴스1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 주변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며 시장에 개입하는 것에 부정적 견해를 가진 참모들이 득시글하다. 안종범 의원은 과거 ‘줄·푸·세’를 입안했으며 강석훈 의원은 전형적인 시장지상주의자다. 경제기획원, 한국개발연구원 출신 참모들도 비슷한 성향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정하는 큰 방향에서는 최대한 맞춰가려고 노력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시장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에는 이들이 본능적으로 반대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약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안 지키는 것도 아닌 묘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며 박근혜 정부 3년차 정도에 가서야 공약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이 세 가지 길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계속 지켜봐야 한다. 현재로서는 최선의 선택인 공약 이행을 위한 증세를 선택하더라도 어떠한 증세인가의 문제는 또 남는다. 그러므로 지리하게 이어질 장기전을 위해 야권의 체력 증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결론으로 남겨야 할 것 같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