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선인이 내건 공약인 ‘지하경제 양성화’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국세청이 12일 이뤄진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골자로 한 ‘세수확충 방안’을 집중 보고했기 때문이다.

▲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원회에서 국세청 업무보고가 열리고 있다. ⓒ뉴스1

국세청은 300~40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지하경제 자금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과세하겠다며 이에 대한 대책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자리에서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거래정보 접근권 확대’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바로 이 지점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뜨거운 감자가 된 'FIU법'이란?

금융정보분석원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세탁 관련 혐의거래 보고 등 금융정보를 수집, 분석하며 이를 경찰 등 법 집행기관에 제공한다. 수사권은 없지만 외환거래에 대한 계좌추적권을 가진다. 각 금융기관은 ‘혐의거래보고제도’에 의해 불법 자금 등이 계좌를 통해 유통됐다는 의심이 들 때에는 이를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한다. 증거인멸 등의 사태를 막기 위해 고객에게 이러한 보고 사실을 알려주어서는 안 되며 자금세탁 혐의가 있는 2천만 원 이상 또는 미화 1만 달러 이상의 외환거래를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 의하면 ‘혐의’를 금융기관이 주관적으로 판단하게 되어 있어 이러한 미비점을 보완코자 각 금융기관에서는 2천만 원 이상의 모든 거래 내역을 자동으로 금융분석원에 보고하고 있다. 이를 ‘고액현금거래자료(CTR)’이라 한다.

국세청은 이 CTR 자료를 금융정보분석원으로부터 넘겨받을 수 있다면 연간 4조5천억 원에서 6조 원 등의 추가 세수가 발생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당선인은 자신의 공약으로 세수확보를 위한 국세청의 권한 강화를 주장한 바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에 따라 이미 ‘FIU법’으로 불리는, 국세청의 정보청구권을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지난해 국회에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이 제도에 대해서는 소위 진보언론에서도 긍정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한겨레는 14일 사설을 통해 ‘금융정보분석원의 금융정보를 국세청이 공유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는 인수위의 방침은 옳은 방침이다’라며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 지하경제 양성화 대책 관련 국세청의 '금융실명제 강화'와 '금융정보분석원 정보접근권 확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한겨레 사설

FIU법의 위험성

물론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수확보는 절실한 문제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푸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뤄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국세청의 방식이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FIU법의 위험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되는 CTR은 불법적인 자금세탁이나 테러와 관련하여 정보가 제공되는 것인데 이러한 범위를 벗어나 세수확보 등을 위해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과연 이용자와 동의가 된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정보분석원 측도 이러한 ‘개인정보 논란’을 신경쓰는 분위기다. 여러 보도에 의하면 금융정보분석원 측은 ‘정보를 열람하기 위한 국세청 측의 파견직원을 늘리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순 있지만 정보접근권 자체를 열어주는 것에 대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견직원의 숫자를 조정하는 식의 방향을 잡을 경우 두 기관의 협의 정도로 문제가 해결된다.

앞서 설명했듯 CTR 자료에는 자금세탁 등의 범죄와의 연관이 의심되는 자료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 2천만 원 이상 거래 내역이 전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금융위원회와 금융분석원 측은 더욱 난색을 표하고 있다. 민감한 자료이기 때문에 자료 자체는 금융정보분석원만 갖고 의심이 되는 자료들에 대해서만 열람을 하도록 하자는 게 금융위원회와 금융분석원의 속내로 추정된다.

국세청 위상 강화?

박근혜 당선인의 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국세청의 정보접근권 확대는 결국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상급기관인 기획재정부보다 국세청이 먼저 업무보고를 하게 된 것도 이러한 힘의 관계가 작용한 것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 하에서 국세청의 위상이 유례없이 높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상을 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국세청의 권한이 비대해지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국세청에 해당하는 미국의 IRS(Internal Revenue Service)와 같은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 올해 창설 100주년을 맞는 IRS는 미국 조세제도의 상징과 같은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IRS는 세금 징수와 관련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해 과거에는 FBI나 CIA보다 무서운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 IRS의 무시무시함은 게임에 등장할 정도이다. 루카스아츠(Lucas Arts)의 어드벤처 게임인 '텐터클 최후의 날(The Day of Tentacle)'에 등장하는 IRS. 탈세 혐의를 잡고 프레드 박사를 체포하러 왔다.

문제는 IRS가 비대한 권한을 남용해 정치권력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IRS의 정보들을 정적을 제거하거나 겁박하는 등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닉슨 대통령의 것이다. 닉슨은 1970년 앨라배마 주지사로 출마한 조지 윌리스가 72년 대선에서 유력한 경쟁자가 될 것을 우려해 IRS로부터 윌리스의 세무조사 자료를 넘겨받아 언론에 흘렸다.

결국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자 미국 의회는 개인정보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세법을 개정했고 IRS의 ‘능력’은 대폭 축소됐다. 대통령의 납세자료 열람권은 제한됐고 세무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받게 됐다.

한상률의 추억

미국의 사례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국내의 사례를 제시할 수도 있다. 불과 2009년의 일이다. 한동안 시끄러웠던 ‘한상률 게이트’를 얘기하려는 것이다.

사건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정권이 바뀌었지만 직을 유지하기 위해 모종의 음모를 꾸몄다는 의혹에서부터 시작됐다. 한상률 국세청장의 주도로 전 정권을 겨냥한 사정성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졌던 정화삼씨가 운영하던 제피로스 골프클럽을 비롯해 노 전 대통령이 자주 찾던 삼계탕집,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등이 세무조사를 받았다. 정화삼씨는 구속수사를 받았다. 2008년 7월에는 그 유명한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에도 착수했다. 이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이 문제는 2009년 안원구 당시 국세청 국장이 세무조사를 무기로 기업들에 미술품을 강매한 혐의로 긴급 체포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이 문제가 엄청난 폭탄이 된 ‘스토리’는 이랬다. 안원구 전 국장은 한상률 당시 청장의 유임을 지지했지만 한상률 당시 청장이 유임되자 정작 자신은 좌천당했다. 그러자 안원구 전 국장은 한상률 당시 청장이 전임자인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상납한 ‘그림’을 자신의 아내가 운영하는 갤러리를 통해 처분하려 했다는 것과 한상률 당시 청장이 ‘정권실세’에게 상납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5억 원을 요구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것은 ‘그림 로비’사건이 돼 한상률 당시 청장이 낙마하는 원인이 됐다. 그밖에도 안원구 전 국장은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장을 하려고 해 국세청은 태풍의 진원지가 되고 말았다.

이 의혹은 지난 해 국세청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 자리에서도 논란이 됐다. 안원구 전 국장이 야당의원들과 함께 국세청 5층 국감장으로 향하자 국세청 직원들이 엘리베이터 전원을 끄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이 모든 사태는 오로지 국세청이 민감한 세무정보들을 갖고 있었고 이를 정치권력과 유착해서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남용한 데에서 비롯됐다.

▲ 작년 10월 국감에 참석하기 위해 안원구 전 국장이 나타나자 국세청은 아수라장이 됐다. ⓒ연합뉴스

오히려 국세청 개혁이 필요

이러한 ‘세정(稅政)유착’ 현상을 일소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편이 제시된 바 있으나 박근혜 당선인의 경우 국세청장 지위 격상, 국세청장 임기 보장 등의 해결책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세무행정에 민·관이 함께하는 거버넌스 체계 등의 도입 필요성을 촉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 또한 존재한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거버넌스 체계가 만병통치라는 식의 접근 역시 위험하다"고 지적하며 "민·관이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이 함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또 "현재로서는 국세청장 인사를 제대로 하는 것이 유일한 방편"이라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세청 등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체계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란을 우려한 것인지 국세청에서도 자체적인 개혁안을 내놓았다. 소위 ‘특명조사국’이라고도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폐지하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인 한국적 상황에서 이러한 조치가 과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지하경제 양성화도 필요하지만 오히려 그 당사자인 국세청 개혁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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