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기간 동안 다수의 언론들은 정책 이슈가 아닌 각종 전화여론조사 중계에 힘을 쏟았다. 전화여론조사가 심층적인 분석을 내놓기보다 '단순 지지율' 제시에 그쳤다는 비판과 함께 체계적인 선거 예측 모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학계를 통해 제기되고 있다.

▲ 한국방송학회가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세미나 <대선 여론조사와 방송사 출구조사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미디어스

28일 한국방송학회가 서울시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대선방송 진단 세미나 <대선 여론조사와 방송사 출구조사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은 기존의 대선 여론조사가 지닌 맹점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상이한 조사방법으로 집계된 전화여론조사만으로는 유권자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의견과 심층적 분석을 위해선 지지율 조사가 아닌 '예측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또, 난립하고 있는 여론조사 기관에 대한 사후적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학계 인사들은 공감의 뜻을 표했다.

'대통령 선거 예측의 문제와 판세분석 조사의 개선 방안'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은 이준웅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주요 언론과 여론조사회사가 적극적으로 선거예측 이론모형을 개발하고, 그 모형에 근거해서 결과를 예측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언론을 통해 많은 조사결과가 제시되기는 했지만 하나씩 검토해 보면 허접해 보이는 결과들만 쌓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대선 기간 동안 발표된 전화여론조사 결과를 시간에 따라 순서대로 배열한 그래프. ⓒ이준웅 교수 <대통령 선거 예측의 문제와 판세분석 조사의 개선 방안>

이 교수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9월 10일부터 12월 12일까지 수행된 전화여론조사 중 언론사 웹사이트와 포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조사는 161개에 달했다. 리얼미터의 ARS 조사가 46회로 가장 많았고, 한국갤럽이 16회, 리서뷰가 15회의 조사를 시행했다. 이 교수는 "같은 조사회사가 발표한 결과도 며칠 걸러서 들쭉날쭉 하는가 하면 같은 날 발표되는 조사결과들 간에 수치 차이가 심하게 나기도 해 유권자들은 혼란스러워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161개의 여론조사 결과를 시간에 따라 순서대로 배열하면 그 양상은 더욱 심각하다"며 "조사 문항, 질문지, 표집방법, 응답률, 가중치 설정, 무응답자 규모 등이 조사회사별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대선 기간 동안의 각종 여론조사를 자료처리한 결과 안정된 추세의 그래프를 도출할 수 있다. ⓒ이준웅 교수 <대통령 선거 예측의 문제와 판세분석 조사의 개선 방안>

이 교수는 "그러나 수집된 여론조사 결과를 자료처리해 보면 안정된 지지율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며 자료 분석보다 지지율 제시에만 골몰하는 조사기관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이준웅 교수는 단편적 정보만 제공하는 전화여론조사가 아닌 심층·분석적 조사가 가능한 '선거예측 모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각 후보의 지지율 제시에 그칠 게 아니라, 왜 이런 지지율이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도록 체계적인 예측 모형을 개발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한규섭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투표를 누가 할 것인지 가려내는 것이 조사의 분석적 측면에서 중요하다"며 "미국에는 오랜 선거 전통으로 기록이 남아있지만 한국에는 세부적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 따라서 어떤 변수들이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모형을 만드는 일이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사실 시간적 여유나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세밀한 분석을 위해) 유권자들에게 추가적인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예산과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며 "또 문항을 길게 만들 경우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도 발생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여론조사 기관들에 대한 '사후 평가'를 통해 무분별한 결과 발표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세미나의 토론자였던 현경보 SBS 시사토론팀장은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들이 난립하는 과정에서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사들은 새로운 조사가 나오기만 하면 무책임하게 보도하기 바쁘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후적인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어떠한 언론을 통하는 여론조사든 사후에는 구체적인 조사과정을 완벽하게 공개해야 하며 공개된 조사를 가지고 학회와 학자들이 검증을 해야 한다"며 "투명한 공개를 통해 일반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 또, 검증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은 여론조사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고 질이 안 좋은 회사는 도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규섭 교수도 "이번 대선에서 엿볼 수 있듯이 각 조사회사 간의 격차가 너무 크다"며 "조사기관에 따라 그 특징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또 "대선이 끝난 시점에서 조사기관에 대한 엄밀한 사후적 평가가 더해져야 할 것"이라며 여론조사 기관에 대한 사후 평가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영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 역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 국민들이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여론조사에 대한 품질 평가와 학계의 연구가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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