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취임 1년. 모든 걸 잃었습니다. 가족을 잃었고, 삶의 터전을 잃었고, 꿈을 잃었습니다.

용산참사로 시아버지를 잃었고, 남편은 아버지를 잃고도 그 죽음의 책임자가 되어 여전히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후 용산유가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시아버지와 남편을 위해 거리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를 잃고도 슬퍼하지도 못하는 남편을 지켜보며 살았습니다. 아버지와 동지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의 쓸쓸한 눈을, 철창너머로 바라만보며 살았습니다.

시어머니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막내아들의 석방을 위해 오늘도 거리에서 눈물을 삼키며 다니십니다. 시어머니는 그날 이후 웃음을 잃었습니다. 가족의 행복만을 꿈꾸며 평생 살았던 어머니는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아들을 감옥으로 보낸 후 행복이란 글자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4년을 보냈습니다.

▲ 지난 2009년 7월 11일 서울역 광장 앞에서 열린 '용산참사 범국민 추모대회'에 참여한 용산참사 유가족과 문정현 신부 ⓒ전국언론노동조합

내 나이 마흔 한 살. 마흔 한 살 여자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정치가 뭔지, 대통령 공약이 뭔지, 관심도 없이 살았습니다. 다만 어떤 분이 대통령이 되던,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 모두를 잘살게 만드는 분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힘있는 사람, 돈많은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그들만의 대통령임을 몸으로 실감하며 지난 4년을 보냈습니다.

대통령 선거 유세 때마다 나오는 복지, 주거정책, 일자리창출……. 모두 거짓 이었습니다. “국민을 위해 살겠습니다”. 모두 거짓 이었습니다. 언제까지 말뿐인 공약. 말뿐인 약속을 하실 겁니까?

아무런 대책 없이 쫓겨나야 했던 철거민들을 공권력을 투입해 대형 참사가 발생하여 무고한 시민 여섯 명이 죽었습니다. 공장으로 돌아가고픈 노동자들을 또 다시 공권력을 투입해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하여 그 후 스물 세 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을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삶터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저 멀리 제주 강정마을에선 함께 살고 싶다고 목 놓아 외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철탑에 오르고 있습니다. 막가파식의 개발로 집을 잃은 철거민들은 오늘도 거리에서 비닐 한 장 덮고 잠을 청합니다.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고 잠을 자던 할머니와 어린손녀가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장애인도 사람이다. 장애등급제 폐지하고 부양의무제 폐지하라고 외치는 장애인들의 노숙천막에는 오늘도 차가운 시선들 뿐입니다.

세상 어느 나라가 이처럼 모질단 말입니까? 세상 어느 나라가 국민들을 죽으라고 벼랑으로 내 몬단 말입니까?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나라, 장애인들을 1급, 2급 숫자로 나열하는 나라. 가진자들을 위해서라면 집을 빼앗고, 삶터를 빼앗고, 사람의 목숨도 빼앗는 나라. 이젠 바꿔야합니다. 더 이상 힘이 약하다고, 가진 것이 없다고 쓰레기 취급당하는 세상을 멈춰야 합니다.

당신들은 국민대통합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먼저라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당신들이 국민대통합을 원한다면, 사람이 먼저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부디 우리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길 바랍니다. 거리에서 외치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길 바랍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 함께 살자”는 외침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요.

이제 대선이 끝나고 얼마 후면 용산참사 4주기가 다가옵니다. ‘용산참사’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거나, 그저 과거의 사건 정도로만 언급하는 주요 후보들을 보면서, ‘철거민을 사면해 달라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외치는 우리들의 애타는 목소리가, 그 절규가 들리지 않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허탈해 지기도 합니다.

4년이 흘렀지만 우리의 삶은, 우리의 눈물은... 여전히 2009년 1월 20일 입니다. 대통령이 되시면 가장 먼저 참사 생존자인 철거민들을 사면해야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국민을 죽음에 이르게한 그날의 참사에 대해, 이명박 정권이 결코 하지않는 사과를 해 주십시오.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위해 이제 새로운 정부, 국가가 사죄하는 심정으로 나서 주십시오.

다가 올 용산참사 4주기 때는 부디 늙은 노모와 막내아들이 함께 아버지 산소에 술 한 잔 올릴 수 있기를 간곡히 바래봅니다.

* 정영신님은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고 이상림님의 며느리이자, 5년 4개월의 형을 받고 구속된 용산4구역 철거민 이충연님의 아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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