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일) 저녁 몇 시쯤이었지? 내가 안 기자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게 말이야.

프로듀서연합회 양 회장을 만났더니 안 기자가 경찰 버스 위에 있다고 하더군. 안 그래도 아까 참 닮아 보인다 싶었었거든. 얼른 가보지 않았나. 수만의 대중 속에서 식구를 만나는 것은 보통 반가운 일이 아니거든. 그때 전경버스 위에는 많은 수의 기자들이 취재 중이더군.

구호를 외치는 소수의 시민들도 있었고, 또 건너편 전경차 몇 대 위에는 그 무시무시한 '경찰특공대'들이 대열을 갖춘 채 뭔가를 대기하고 있었지. 전경차가 마구 매연을 내뿜는다고 했었던가? 로이터도 옆에 있다고 했었지. 몇 마디 나누고 수고하라 말하고 우리는 자리를 옮겼는데, 그런데 경찰에 연행되어버렸단 말인가?

▲ 2일 새벽 광화문 네거리. 경찰 버스 위에서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을 경찰이 내려 보내려고 하자, 시위대가 알권리를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제지하고 있다. ⓒ미디어스 안현우
고생이 참 많지? 다친 곳은 없고? 면회 갈 생각도 했지만, 후딱 이렇게 글로써 먼저 안부를 전하네. 너무 속상해 하지 말게. 잡혀가거나 다친 기자가 안 기자만이 아니니깐 말이야.

오늘(2일) 한국기자협회에서 성명서를 내었어. 경찰이 "촛불집회와 시위가 연일 계속되면서 많은 매체의 기자들이 폭행되거나 연행되며 언론의 자유를 위협받고 있다"고 했어. 안 기자가 연행된 것 외에도 기자협회보의 윤민우 기자가 경찰 방패에 찍혔다고 하네. KBS 영상취재팀의 신봉승 기자도 "기자고 나발이고 다 죽여버려"라는 살벌함 속에서 마찬가지로 방패에 찍히고 얼굴을 맞아 부상을 당했다고 하는군. 기협에서 경찰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했네.

"오만한 '공권력'이 카메라의 눈을 무서워하겠는가"

물론 이런다고 뭐가 바뀌겠는가? 한두 번 벌어진 일도 아니고, 안 기자가 나와서 다시 취재에 나서더라도 똑 같은 일이 또 벌어지겠지. 시위 현장에서 기자라고 해서 어떤 '특별한' 대우를 받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국민'을, 이들의 여론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이 오만한 '공권력'이 기자들을, 카메라의 눈을 무서워하겠는가?

지금 권력의 광학(光學)은 촛불의 미학을 한 마디로 우습게보고 있네. '광학(狂虐)' 그 자체네. 미친 듯이 난폭하고 잔인하다는 말일세. 안 기자도 현장에서 보지 않았나? 비 옷 입은 채 뒷걸음치는 청년의 뒤통수를 정확히 겨냥한 그 잔혹한 방망이를 말이야. 쓰러진 서울대 여학생의 머리를 짓밟는 그 범죄적 군홧발을 말이야.

그렇다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빠져 있다네. 너무나 비통해 하고, 너무나 비참해 하고 있다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21세기 한국이 혹 20세기 그 야만의 어둠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어 불안해하고 있네. 분노하고 있네. 하기야 '언론 프렌드리'라는 정권이 다름 아닌 '국민'의 언론·표현·집회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섬김'을 약속한 정부가 바로 주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처참한 상황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나.

'소통'이라는 말로 민주적 대중교통의 심대한 위반 상태를 대충 얼버무리려는 대통령에게 뭘 기대할 수 있겠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은 대중들의 귀에 '촛불 비용은 누가 댔는지 알아보라'는 대통령의 분통은 정말 웃다가 울 서글픈 코미디 그 자체였던 거야.

▲ 1일 밤 9시 30분경 광화문 사거리 시위 현장 ⓒ미디어스 안현우
대통령이, 정권이, 국가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걸세. 그리고 그 길은 누구 말대로 '국민'들에게 항복하는 것 외에 없고, 이미 적나라하게 표출된 민의·여론에 따른 것 밖에 없다네. 그렇지만 동시에 알량한 '지식인' 서클의 교묘한 기회주의와 더불어, 이런 권력의 일방주의를 방임한 기자들도 깊이 반성하는 게 맞지 않겠나?

권력에 맞서기는커녕 오히려 이에 영합해 온갖 감언이설을 내놓은 먹물들과 함께, 자칭 '저널리스트'라 폼 잡고 다니면서 막상 진실에 역행하거나 거짓을 눈감아준 자네들도 '국민'의 아픔, 대중의 분노에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뒤늦게나마 옳고 그름을 깨닫고 직접 행동하는 대중들을 목격하면서, 학자와 기자들은 이제 또 어떤 놀라운 변신을 보여줄런가?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닐세. 나름대로 분투하는 취재, 보도의 움직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대중도 그래서 행동하는 신문사, 방송사에 열화 같은 성원을 보내는 것 아니겠는가. 이번에 보여준 <미디어스>와 <피디저널>, <기자협회> 등의 분투에도 깊은 감사를 보내네. 대중도 깊은 성원을 보내주고 있지 않는가.

"조중동만의 실패는 아닐세…냉철하게 되돌아보세"

그렇다고 대충 넘어가지 말도록 하세. 지금의 비상사태를 초래하는 데 미디어, 저널리즘 그리고 기자와 피디들이 일조한 사실은 명명백백 남아있네. 조·중·동만의 실패가 아닐세. 민의를 철저히 배신한 것에서 나아가 여론을 철저하게 왜곡·조작·은폐하는 그 찌라시들이야 이미 대중이 시장에서 추방해 버리지 않았나. 권력을 감시하고 민의를 따라야 할 상식적 미디어, 합리적 기자, 비판적 (PD)저널리즘이 과연 그 책무를 다 했는지 냉철하게 되돌아 봐야 한다는 것일세.

나는 이렇게 보네. 2008년 5월의 비극, 6월의 분노는 신자유주의 자본권력, 2MB 정권과 더불어 기자·피디, 저널리즘, 미디어의 실패를 총체적으로 입증하고 있다고 말일세. '국민'은 정권뿐만 아니라 기자·피디들을 대신해 언론과 언론자유를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보호하며, 그럼으로써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이렇게 거리와 광장으로 나온 것이네. 수 백 명이 연행되고 수 십 명이 부상당하면서도,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계속해 몸으로 권력에 맞서는 걸세. 조·중·동의 일방적 선전에 저항하고 있는 것일세.

민주주의의 죽음을 애도할 줄 아는 착한 '국민', 자유언론을 위해 싸울 줄 아는 용감한 대중이 나선 것일세. 청계천과 광화문, 시청, 그리고 대구, 부산, 광주 등지의 수만뿐만 아니라,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수천만 인·민들이 자유 언론(인) 보호의 투항 없는 직접행동에 나선 걸세.

그러하니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하네. 자유언론을 실천하는 대중에게 말일세. 저널리즘, 언론은 더 이상 기자·피디들만의 특권일 수 없네. 거짓에 맞서고 진실을 발언하며, 그럼으로써 선전하는 권력과 권력의 선전에 대항하는 대중들이 진정한 언론인이고 참된 저널리스트임을 선언했네. 그런 놀라운 저널리즘 혁명이 다음아고라, 아프리카 TV를 통해 2008년 말 바로 이 땅에서 라이브로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

"권력의 선전에 대항하는 대중이 참된 저널리스트"

딱! 뒤통수를 내리치는 대중의 곤봉은 경찰의 몽둥이와 달리 너무나 지성적이어서 순간적으로 이 먹물까지도 화들짝 정신 들게 만드네. 가혹의 군홧발 질이 아니라, 감동과 각성의 죽비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권력은 그럴 수준이 못 되지만, 우리는 최소한 지성적 대중의 운동을 쫒아가야 하네. 그러지 않고 지체되면, 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더운 날 많이 갑갑할 걸세.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급하기도 하겠지. 괜찮네. 냉정한 상식의 대중들이 지키고 계시네. 대중의 상식이 권력을 철저하게 역감시 중이니, 비록 광학한 권력이라고 하더라도 더 이상의 무리수를 쉽게 택할 수 없을 걸세. 그러하니 이 짧은 여유(?)의 시간을 오히려 좀 더 유용하게 활용토록 해보세. 차분하게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제안일세.

신자유주의 자본국가에 반해 안 기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선전하는 권력, 권력의 폭행에 맞서 저널리즘은 어떻게 대중과 대중의 언론자유, 그리고 민주사회를 보호할 것인가? 그럼으로써 거꾸로 대중에 의해 그 비판적 자율권을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미디어스>는 진실의 해방, 언론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좀 더 잘 해낼 것인가?

"대중의 상식이 권력을 감시하고 있네…차분하게 되돌아보세"

노원경찰서라고 했지? 건강하시고, 다른 활동가들 면회 때처럼 아이스크림 몇 개 사들고 조만간 찾아보겠네. 사실 이 친구들 면회를 하면서도 난 그렇게 말했다네. '잘 들어갔어. 수 백의 사람들이 연행되고 있는데, 함께 해야지'라고. 안 기자에게도 그렇게 말하겠네. 오히려 잘 들어갔네.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원망, 슬픔과 분노를 어찌 거리에서의 취재로 다할 수 있겠나. 매일 매일의 지면 기사로 때울 수 있겠나.

어떻게 예리하게 비판의 정신을 가다듬고, 어떻게 이를 정밀한 필봉으로 완성시키며, 그래서 어떻게 권력 반대 민주 수호의 대중적 언론기관으로 안 기자와 이 땅의 기자·피디, 저널리즘을 위치시킬 것인지 고심하는 기회가 되길 비네. 한 칼을 갈고 나오게. 그럼. 평등·평화·평온.

지금처럼 '비평의 무기'를 예리하게 연마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할 때가 있을까? 벼락같은 이성의 도끼질, 결을 거스른 감수성의 대패질에 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래디컬’한 저널리스트로의 변신. 자본권력과 국가권력, 매체권력, 지식권력이 나의 상대다. 가끔 참패당하고 때로는 붙잡고 버티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왼손펀치 한방을 가진 선수로 남고 싶다. 인민은 착하고 또 무섭다. 이들과 함께하는 비평 말고 그 어떤 것이 후기근대, 후기자본의 불모지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 목청 낮춘 채 예의주시하는 보통사람들의 삶, 이들의 언어에 스며들어 비평의 유격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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