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어제 저녁 TV토론 이후 지지자와 포옹을 하고 있다. ⓒ뉴스1

대선 후보 간 3자 토론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정희 후보의 맹활약 덕분이다. 애초 박근혜-문재인 후보 간의 대결에서 이정희 후보가 간간히 감초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예상은 빗나갔다. 오히려 약방의 감초는 문재인 후보의 역할이 됐고, 토론에서의 존재감으론 ‘박근혜 대 이정희’의 구도가 굳어져버렸다.

3자토론의 이해득실

이정희 후보가 워낙 독하게 밀어붙인 탓에 평소 정치에 관심을 좀 가지고 있다 하는 사람들도 이게 누구에게 유리한 결과로 귀결될지에 대해 평가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이정희 후보가 ‘다카기 마사오’, ‘전두환 6억’ 등 SNS 공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민감한 주제를 공중파에서 꺼내 박근혜 후보를 곤란하게 만든 것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통쾌하게 생각하고 있는 반면, 이정희 후보의 표독스러움에 중간층 유권자들이 야권에 등을 돌릴까 불안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워낙 임팩트가 있는 토론이긴 했지만 박근혜 대 문재인의 구도에서는 득도 실도 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다. 박근혜 후보로서는 이미 범보수연합이 완성돼 있는 마당에 이정희 후보 측에 이런 식의 공격을 받아도 떨어져 나갈 표가 없을뿐더러, 이번 토론이 ‘박근혜 후보는 토론에 불안하다’는 기존의 불안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된 셈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도의 공격을 받아도 결정적인 실수를 하거나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 아니, 오히려 미약한 것이나마 반격의 실마리를 찾기도 했다는 것이 지지층에 어필할 수 있다고 본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점잖았다거나 비방이 아닌 정책검증에 집중했다거나 하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존재감이 없어 토론에 실패했다는 부정적 평가가 있기도 한 것 같은데, 일단 토론을 통해 부동층을 끌어올 만한 포인트를 잡지 못했다는 것은 일리 있는 평가인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문재인 후보의 경우도 기존 지지층을 잃을 만한 어떤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단 현재의 추세가 유지되기는 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이정희 후보의 전략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하는 것인데, 이러한 측면에 대해 판단해보기 전에 우선 대통령 선거에 대한 각 정치세력의 전략이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판돈이 적은 자가 도박을 하는 방법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어떤 포지션을 취하고 움직일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마치 타짜들이 화투판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나 똑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타짜들의 화투라는 것은 사실은 온갖 술수가 난무하는 것이지만 겉보기에는 최대한 룰에 맞는 싸움으로 보인다는 게 핵심일 것이다. 이정희 후보의 전략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박근혜 후보를 낙선시키고 정권교체에 복무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문재인 후보의 아군으로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대통령 선거에 나온 이상 자기 정치세력의 득실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정희 후보는 그동안 1% 군소후보로서 존재감을 피력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슷한 군소후보로서 진보정의당 심상정 전 후보가 정치개혁과 제도개선을 주문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최대한 공간을 찾으려고 했었던 반면, 이정희 후보는 자기 노선을 반복해서 강조하며 대중의 기대에는 별로 부합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민주통합당으로서는 애초에 진보세력에 대한 야권연대를 작동시켜 박근혜 대 문재인의 1대 1승부의 구도를 만들려고 하는 전략을 갖고 있었으나 안철수의 등장과 이로 인한 정치적 혼란으로 중간층의 판단 기준이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찾게 되자 진보세력, 특히 경선부정사태와 색깔론 시비거리의 원죄를 안고 있는 통합진보당과의 협력은 오히려 표를 깎아 먹는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의 3자토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통합진보당과 이정희 후보로서는 첫째로 1%의 군소후보가 아닌 보다 존재감 있는 후보로서 대중에게 분명히 각인되고, 둘째로 이를 통해 민주통합당에게 자신들에 대한 어떤 배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을 목표한 전략을 수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게 내 추측이다.

선거의 상식으로 종종 회자되는 말이 있다. ‘알아야 찍고, 좋아야 찍고, 찍어야 찍는다’라는 게 그것이다. ‘알아야 찍는다’는 것은 애초에 인지도가 어느 정도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 나와도 득표에는 실패한다는 얘긴데, 이제 이정희 후보가 어제의 활약으로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라갔으니 인지도의 상승은 이야기하나 마나한 것이 됐을 것이다. 물론 인지도가 상승했더라도 ‘좋아야 찍는 것’이기 때문에 특유의 표독스러움으로 호감도를 깎아먹은 상황에서는 지지율 상승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1%대의 군소후보로서는 인지도의 상승 덕분에 3%대의 후보가 되기만 해도 이후 국면에서 보다 나은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이기는 것이 목표인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후보의 입장에서는 1% 이하의 이정희 후보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존재일 수 있지만, 이정희 후보가 3%대의 지지율을 획득하게 된다면 박근혜 후보와의 박빙 승부에서 어떻게든 처리하지 않을 수 없는 골치 아픈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심상정과 이정희의 다른 선택, 어떤 결과를 낳을까

통합진보당과 이정희 후보의 전략은 바로 이러한 점을 고려한 일종의 도박인 것이다. 이정희 후보의 모습을 보고 다수 국민이 염증을 느껴 그저 그를 외면한다면 이정희 후보의 1% 지지율은 여전히 1%일 것이다. 하지만 이정희 후보의 모습을 보고 ‘그나마 말은 시원하게 한다’며 지지하는 대중이 생겨날 경우 1%는 3%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비칠 수 있다. 이럴 경우 민주통합당으로서는 드러내서 야권연대의 모양새를 갖출 수는 없겠지만 통합진보당 측에 어떤 실리를 제공하고 후보직 내려놓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즉, 통합진보당의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잃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잃지 않거나, 운이 좋아서 이득이 생기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투표 바로 전날이라도 어떤 정치적 실리를 보장받고 후보직을 사퇴하면 그 자체로만도 이득이다. 경선부정 사태나 색깔론 시비 등은 잠시 동안 잊혀지고 야권 지지자들 모두가 감동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런 전략은 지금까지도 아무런 존재감을 찾을 수 없는 심상정 전 후보와의 비교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심상정 전 후보와 그 지지자들은 이정희 후보와 그 지지자들만큼 독하지 못했기에 다수 야권 지지자들의 정서를 거스르지 않고 안전하게 퇴장하는 길을 선택했다. 누가 자기 정치세력의 앞길을 더 크게 연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지만, 진보정치를 지지해온 사람으로서 ‘심상정이 저 자리에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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