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법무팀에서 일하다 지난 2004년 퇴직한 후 ‘법무법인 서정’에서 일해왔던 김용철 변호사가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지난 7월말 회사로부터 부당하게 퇴사를 강요당했으며 △7억 원의 출자지분에 대한 환급금 등으로 우선 10억 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 한겨레 10월8일자 12면.
김 변호사가 소장에서 주장한 내용을 보면 상황이 좀 심각하다. 오늘자(8일) 한겨레에 소개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김 변호사는 한겨레 기획위원을 겸하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 “삼성과 중앙일보 간부가 ‘압력’ 행사”

“지난 5월 한겨레에 ‘범행 처벌은 사법부 몫이지만 현행범 체포는 누구나 가능하다’는 법률 상식 칼럼을 쓰며 당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예로 들었는데, 때마침 같은 날 한겨레에 익명의 전직 삼성그룹 고위 임원의 말을 따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은 사실상 그룹 비서실(구조조정본부)이 개입했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칼럼이 나간 뒤 소속 법인 이아무개 대표 등이 ‘중앙일보의 한 간부가 당신을 조처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른 기업 사건을 (수임)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며 휴직을 권고했다.” “다른 변호사들로부터 ‘삼성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복귀 명분이 선다. 삼성에서 근무해도 된다는 사인이 오면 근무가 가능하다’ ‘반기업적 사람이 근무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퇴사를 종용했다.” “기사에 언급된 익명의 고위 임원을 구조본 법무팀장 출신인 나라고 판단하고 삼성과 중앙일보 간부가 법인에 압력을 넣은 것 같다.”

언급된 당사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법무법인 쪽이 김 변호사가 쓴 칼럼이 문제가 됐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 외에는 모두 부인하고 있다.

한겨레에 소개된 법무법인 대표의 말이다. “당시 법인이 한화건설 사건을 맡고 있었는데, 소속 변호사가 그룹 총수인 김 회장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것이 한화 쪽으로선 언짢은 일이었다. 김 변호사 스스로 2개월 정도 쉬겠다고 했다.” 관련 변호사들. “삼성이나 중앙일보와 관련한 말을 한 적이 없다. 삼성 계열사 사건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눈치 볼 일도 없다”며 김 변호사의 주장을 모두 부인했다. 중앙일보 간부도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김 변호사의 칼럼과 한겨레 기사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 한겨레 5월25일자 1면.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사건의 정황을 요약한 것이다. 일단 8일자에 보도된 내용만을 놓고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측면이 있다.

“‘범행 처벌은 사법부 몫이지만 현행범 체포는 누구나 가능하다’는 법률 상식 칼럼을 쓰며 당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예로 들은 것”과 “익명의 전직 삼성그룹 고위 임원의 말을 따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은 사실상 그룹 비서실(구조조정본부)이 개입했다’”는 한겨레 보도 사이에 ‘연관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문제'가 됐던 한겨레 5월25일자 12면 '칼럼'
‘증거’를 제시한 것도 아니고 관련자들의 ‘증언’이 나온 것도 아니다. 오직 유추해 볼 수 있는 근거는 삼성 법무팀 출신 변호사가 ‘대기업을 비판하는 칼럼’을 한겨레에 게재했고, ‘묘하게도’ 같은 날 “익명의 전직 삼성그룹 고위 임원의 말을 따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은 사실상 그룹 비서실(구조조정본부)이 개입했다’”는 보도가 나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당한 퇴사’의 사유가 될 수 없다. 설사 둘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증거'가 나온다고 해도 이것이 '부당한 퇴직 사유'가 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번 사건이 논란을 빚고 있는 이유다.

‘흥행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는 언론, 왜?

▲ 한국일보 10월8일자 8면.
현재 양쪽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긴 하지만 소송까지 제기한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언론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흥행적 구성요건’도 충분하다. 갈등의 한 축은 삼성이라는 대기업과 중앙일보라는 메이저 신문. 다른 한쪽은 한겨레 기획위원을 맡으면서 그곳에 칼럼을 쓰고 있는 변호사. ‘얄팍한’ 수준이긴 하지만 흥행적 측면에서도 ‘밀릴 게’ 없다.

하지만 이 사안은 언론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삼성과 중앙일보 간부라고 언급한 곳은 한겨레 정도. 서울신문은 ‘A그룹·모 신문사 간부’로 표기를 했고, 한국일보는 ‘대기업과 한 일간지 간부’라는 표현을 썼다. 조선일보는 ‘삼성 법무법인에 근무하던 변호사가 부당한 퇴사를 강요당했다’는 내용의 1단 기사를 내보냈다.

나머지 전국단위종합일간지, 경향신문과 국민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은 아예 이 사안을 보도하지 않았다. 왜일까. 답은 오늘자(8일) 관련 내용을 보도한 기사 안에 있는 것 같다. 물론 개인적 추론일 뿐이다. ‘판단과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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