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이 일주일째 계속되면서 사상자가 천 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빠르게 중재에 들어가면서 이스라엘이 일단 지상군 투입을 유보한 상태입니다."(20일 KBS <뉴스9> "'사상자 천명' 확전 기로")

"하마스도 로켓 100여 발로 반격에 나서 이스라엘 쪽에서도 여러 명이 부상했습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엔 신중한 입장을 보였지만, 하마스에 대한 공격은 전폭 지지하고 나섰습니다."(19일 SBS <8뉴스> "중동의 화약고, 가자지구는..")

▲ SBS <8시뉴스>의 19일자 보도 "중동의 화약고, 가자지구는.." KBS <뉴스9>의 20일자 보도 "'사상자 천 명' 확전기로" - 화면 캡처

방송 뉴스는 현장성이 생명이다. 방송사의 섣부른 가치 판단으로 시청자의 생각을 재단하기보다 문제되고 있는 상황을 직접 보여주는 게 뉴스 공정성 확보에 바람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다. 분쟁이 되고 있는 지역의 당면 현장 상황만 보도할 경우, 사건의 핵심 원인 또는 역사적 맥락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에 대한 방송 보도 역시 그러하다. 가자지구 보도의 구성은 폭격을 당하고 있는 가자 지구의 모습을 스케치하며, 이스라엘 정부와 팔레스타인 하마스 양쪽의 입장을 함께 전달하는 게 고정 레퍼토리다. 언뜻 보면 공정한 것 같지만, 일방적인 폭격의 원인을 숨겨버리는 맹점이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과연 대등한 관계인가? 팔레스타인은 부인할 수 없는 국제사회의 약자다. 유대인 로비단체 에이팩(AIPAC)이 미국 선거 자금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고, 오바마 대통령도 그들 앞에서 맥을 못춘다는 사실은 국제 사회에서 이스라엘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보여준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도 2차 대전 승전국인 서구 열강들의 묵인 아래 발아됐다. 1910년대 이후 미국과 영국 등 강대국 승인 아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에 모여들었고 극단적인 '시오니스트'들은 '분리장벽'을 세워 팔레스타인인을 고립시켰다. 현재는 영토의 대부분을 유대인들이 차지해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자와 같은 주변부로 내몰리게 됐다.

결국 분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한 리포트는 가자지구 폭격을 이스라엘만의 문제로 축소한다. 팔레스타인 영토 내의 근본적 유대주의자들을 방조해왔던 서구 열강들의 과오는 무시한 채 말이다. 또 하마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자칫 시청자들이 합법 정당인 하마스를 무장 테러 조직으로 인식할 위험성도 있다.

따라서 국내 방송이 이스라엘이나 미국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면 보다 더 집요하게 분쟁의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1분 30초 가량의 뉴스 리포트만으로 부족하다면 다른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보완해야 한다. 시청자의 알 권리는 그런 노력을 통해서 채워진다.

최재훈 <경계를 넘어> 활동가는 "반세기 넘는 맥락을 가진 분쟁임에도 불구하고 (맥락에 대한 설명 없이) 단순 현장 중계에만 그치고 있다. 방송사 보도만 보면 하마스가 로켓을 쏘아올린 배경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지 않느냐"며 "이는 방송사 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KBS의 이스라엘 군수장비 소개 보도는 심각성이 상당한 수준이다. KBS <뉴스9>는 20일 6번째 꼭지 <"한국형 아이언돔 구축">이라는 제목으로 이스라엘 군수 장비를 소개했다. KBS는 "최근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포 가운데 250여 발이 공중에서 요격됐다. 이스라엘군은 요격미사일 체계인 '아이언 돔'의 명중률이 90%라고 말한다"며 이스라엘 무기의 성능을 치켜세운 뒤 시뮬레이션으로 아이언 돔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 KBS <뉴스9> 20일 기사 "한국형 아이언 돔" - KBS <뉴스9> 화면 캡처

KBS는 "이스라엘 언론은 한국의 초계함 4척을 도입하는 조건으로 우리나라에 아이언 돔 구입을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며 "아이언 돔이 높은 요격률을 기록하면서 실전 능력은 어느 정도 검증됐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의 최첨단 무기로 1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리포트가 끝나기 무섭게 '아이언 돔' 국내 도입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KBS.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 없이 최첨단 무기 도입을 우선 고려해봐야 한다는 보도는 이스라엘의 군비 증강을 정당화하는 것일 뿐더러 약소 민족이었던 과거의 기억을 애써 지우려는 무의식의 발로다.

최재훈 <경계를 넘어> 활동가는 "가자지구 전체 인구 160~170만명 가운데 과반수가 미성년자인데 이스라엘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포탄을 쏘아붓고 있어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며 "가자지구 주민 100명 이상이 일주일만에 목숨을 잃었는데, 이를 감안한다면 보도의 초점은 어떻게 하면 가자지구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지에 맞춰져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최재훈 활동가는 "오락게임을 하듯이 그래픽까지 동원해서 설명하는 것은 마치 무기수출 업체의 홍보 프레젠테이션 같다. (끔직한 분쟁 상황에서) 효율적인 공격 매커니즘, 무기 성능을 보도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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