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는 '구라'가 세서 언제나 찾게 된다"

지난 5일 한홍구의 신간 '장물바구니-정수장학회의 진실'(돌아온山 펴냄,18000원) 출판 기념회에서 한겨레 토요판 에디터 고경태는 한홍구와의 질긴(?) 인연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본디 '구라'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힘이다. 장물바구니에서 엿볼 수 있는 한홍구식 '구라'는 정확한 자료와 사료를 기반으로 한다. 참조한 서적과 논문만 50여편이 훌쩍 넘는다. 분량이 350페이지에 달하는 장물바구니는 꼼꼼한 자료와 기록의 산물이다.

뿐만 아니라 50년대부터 지금까지 기록된, '김지태와 장학회' 기사를 바탕으로 장학회를 둘러싼 사건을 거침없이 풀어간다. 이러한 성취를 이룰 수 있던 배경에 대해 그는 독특한 대상에 감사를 표한다.

"조금 다른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대상은 네이버의 뉴스라이브러리다. 이 환상적인 시스템은 도대체 어떤 의미였는지 모를 단편적인 사료의 전후맥락을 세우고 행간을 읽어낼 수 있게 해주었다. 처음 현대사를 공부하던 1980년대에는 옛 신문 기사를 찾아 복사하려면 서너 건만 찾아도 하루가 휙 가버렸는데 뉴스라이브러리를 통해서 필요한 기사 몇 백 건을 뽑아 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도움을 받지 못했더라면 책 내용은 아마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뉴스라이브러리'라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고 정수장학회 저격에 나선 한홍구. 그는 장물바구니가 하루빨리 해체되길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현 이사진이 총사퇴하고 김지태 회장 유족과 김지태 회장의 유지를 계승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사회가 전면 재조직돼 명칭을 포함한 정관을 변경하여 김지태 장학회 또는 부일장학회로 재출발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도 한홍구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독자들이 써야 한다"고 당부한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기로를 독자들이 가늠하길 바라는 한홍구. 과연 그의 바람대로 장물바구니 해체는 이뤄질 수 있을까?

'현재사학자' 한홍구가 풀어가는 '언론인' 김지태와 장학회의 모든 것

책의 구성은 총 4장으로 나뉜다. 1장에서는 김지태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의 사회·정치 활동, 재벌로의 성장 등을 담고 있다. 2장은 박정희 정권이 어떻게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를 강탈했는지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위조된 '기부승낙서'와 부인 송혜영에게 씌워진 '밀수 혐의'는 국가가 개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파렴치를 보여준다. 3장은 부일장학회와 5.16장학회의 관계, 5.16 장학회의 활동, 전두환·박근혜와 정수장학회 등 김지태 사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4장에서는 그간 김지태 재산 환수를 위한 노력이 무엇이 있었는지를 '필화'사건을 통해 조명해보고, 참여정부에 이뤄졌던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의 진상조사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를 다시금 되짚는다.

읽다보면 궁금해진다. 수많은 재벌 중에서도 왜 하필 김지태였을까?

"김지태의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이 4월혁명의 전개과정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한 명의 군인이 있었다. 새로이 부산에 신설된 군수기지사령관으로 1960년 1월 15일자로 발령받은 육군소장 박정희였다…(중략)…무력으로 이승만 정권을 뒤엎을 궁리를 하고 있던 박정희에게 4월혁명은 재앙이었다. 이승만 정권이 학생시위에 의해 붕괴되는 것은 박정희에게는 정권장악의 목표도 기회도 사라지는 것을 의미했다."

김지태는 유일하게 조봉암 사형에 대한 부당함을 부산일보 사설을 통해 피력했다. 또 3.15 부정선거와 4·19와 같은 역사적 순간을 MBC 문화방송으로 대중에 알렸다. 한홍구 교수에 따르면, 그가 언론을 사회적 공기(公器)라고 인식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현재의 공영방송 사장과 비교해봐도 김지태는 언론인 자격에 합당한 인물이었다.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는 지난달 21일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고 김지태씨가 부산일보, MBC 주식 등을 '자발적'으로 헌납했다며 야당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요구'를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뉴스1

한편 이러한 공정 언론은 박정희에게 눈엣가시였다. 박정희는 언론이 혁명의 전개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직접 지켜보면서, 정권을 장악하고 유지해나가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론의 지지임을 체감한다. 단지 김지태의 돈이 탐이나서 김지태를 가둔 것은 아니었다.

장물바구니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부당한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이다. 개혁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문화방송사사>에서 경영상의 일대쇄신을 단행하고, 자기자본과 타인자본과의 비율을 합리화하기 위해 단행했다는 '지방 직할국 5개국의 영업권 양도'에 대해 야당 측은 1971년 대통령 선거의 자금 조달을 위한 것이라고 문제 삼은 것이다."

지난 10월 한겨레 기사로 폭로된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의 회동처럼, 1971년 당시에도 5·16장학회에 대한 김대중 대선 후보의 비판이 거세지자 군사 정권은 언론사 지분 매각을 통한 대선 자금 마련에 절치부심한다. '꼼수'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 없다.

한홍구 교수는 "역사학은 원래 발 빠른 학문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불행한 현대사는 역사학에 많은 짐을 지우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지만 한국 역사학은 현실의 요구를 외면해왔거나 때로 성의껏 대응한다고 준비하지만 정작 필요한 때를 놓쳐버리는 일이 허다했다"며 스스로 반성을 한다.

'현재사학자'로서 끊임없이 현대사를 고민해 온 한 교수의 걸작이 과연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12월까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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