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도 컨벤션에서 열린 당원 연수대회에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입장하는 박근혜 후보 ⓒ뉴스1

박근혜 후보 측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했다.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후보 측이 민주당 출신의 김종인 새누리당 행복추진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우기까지 하는 등 보수후보로서는 상당한 파격을 감수하며 밀어붙인 이슈다. 그러던 것을 최근에 박근혜 후보 측이 김종인 위원장과 상당한 갈등을 겪으며 사실상 결별 수순을 거친 후 발표한 공약이라 관심의 초점이 됐다. 따라서 이쯤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박근혜 후보 측의 논의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박근혜 후보 측이 애초에 경제민주화를 주요 이슈로 삼은 것은 첫 번째로 이것이 일종의 ‘시대정신’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비할 수 없을 만큼의 국가적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누구라도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후보 측이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 건 두 번째 이유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도층 공략’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가 매우 저조했기 때문에 MB정부와 차별화를 함과 동시에 지지세를 확장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반영된 것이 지난 4월 총선에서의 당명 개정이나 파격적인 비대위 인선 등의 선거 전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 측과 최근 김종인 위원장과의 충돌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위에 열거한 틀의 연장선상에서 판단하면 두 가지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어떻게든 발표하기는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박근혜 후보 측이 경제민주화라는 이슈를 포기하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김종인 위원장 측이 주장했던 핵심적인 조치들이 제외된 채로 경제민주화 공약이 발표됐다는 점이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제외됐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좀 더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일단은 김종인 위원장 측이 주장했던 정책 중 무엇이 거부됐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핵심적인 것은 세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순환출자금지와 관련하여 기존출자분에 대해서도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분조정명령제를 포함한 대규모기업집단법 제정이며, 다른 하나는 주요경제사범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의 실시다. 즉,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신규출자분에 대한 순환출자금지의 적용, 금산분리 강화 등의 조치는 발표된 공약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 측의 주장이 제외된 것이라고 해도 기존 보수진영의 주장과 비교하면 확실히 진전된 부분이 있다는 것.

본래 이한구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새누리당 정책라인의 입장에서도 기존의 신자유주의에 충실했던 보수적 정책틀에서 어느 정도 중도로 이동했던 부분이 있었다. 신규 출자분에 대해서라도 순환출자 금지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 등은 과거에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던 정책들이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으며 시장주의자들의 입장에서조차 상당한 무리를 동반하더라도 공정한 시장질서를 만들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이들이 자기들 나름대로는 무리한 조치를 감행하려 함에도 불구하고 김종인 위원장 측이 그보다 더한 조치를 시행할 것을 주장하자 양측의 알력이 불거졌고 이에 대해 박근혜 후보 측이 김종인 위원장 측이 아닌 기존 새누리당 정책라인의 손을 들어준 것이 경제민주화 공약 발표의 전모인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박근혜 후보 측이 시행해 온 중도층을 겨냥한 전략이 어느 정도 수정되고 있다는 점과 맞물리고 있는 것 같다.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후보단일화가 이슈로 떠오르고 중도층이 이에 적극 호응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박근혜 후보 측은 우측으로 밀려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는 선진통일당과의 합당과 김무성 선대본부장의 등장 등으로 대표되는 보수대연합과 NLL 문제 등 보수 세력의 전통적 입장인 안보에 대한 강조를, 경제적으로는 유로존 위기로 인해 더욱 심각한 모습으로 다가올 경제위기에 대비한 성장강화론을 내세우는 것으로 전략의 방향이 선회되고 있는 것이다.

발표된 경제민주화 공약과 받아들여지지 않은 김종인 위원장 측 주장의 핵심적인 흐름을 다시 보면 이러한 전략의 선회도 명확해진다. 앞서 언급했듯 경제민주화 공약은 박근혜 후보 측의 왼쪽 날개, 즉 중도를 향한 정책 이슈이다. 즉, 이것은 박근혜 후보가 좌측으로 갈 수 있는 한계점을 보여주는 것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 비교적 명확한 선이 그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의 글에서 나는 경제민주화 이슈의 3가지 측면을 검토한 일이 있다. 그 첫째는 시장에서 재벌이 독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조정, 둘째는 재벌의 소유구조 그 자체에 대한 개입, 셋째는 새로운 경제질서의 비전 제시이다. 첫 번째의 측면에 대한 대응으로는 공정한 시장질서의 확립과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제시되어야 하며 두 번째 측면에 대한 대응으로는 재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거나 권력을 분산시키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박근혜 후보 측이 발표한 공약은 첫 번째 측면에 대한 대응, 즉 공정한 시장질서의 확립과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이것은 ‘재벌에게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순환출자 하지 마라, 골목 상권에 진출하지 마라, 은행업까지 겸하지 마라 등등. 이게 반해 김종인 위원장 측 안은 ‘재벌을 대상으로 한 무언가를 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재벌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될 것이고 바로 이 점이야 말로 경제정책에 대한 철학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시장지상주의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부분인 셈이다.

그런데 보통 재벌에게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하는 정책은 대개 국가와 기업 사이에서의 어떤 ‘주고받기’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결국 전체 경제정책에 대한 임시방편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시장주의자들의 ‘결단’에도 불구하고 그 실효성을 의심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또한 박근혜 후보 측이 애초에 기대됐던 것 보다 오른쪽으로 움직였다고 해서 안철수 후보나 문재인 후보 측이 같이 오른쪽으로 딸려가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강조하고 싶다. 즉, ‘박근혜가 이 정도 했으니까 우리도 이 만큼만 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은 호기를 놓치는 판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야권의 후보들로서는 이 시점에 보다 과감한 정책을 내세우며 ‘우리는 심지어 이정도까지 하는데’ 라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울러 박정희식의 국가주도수출경제체제나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전면적 도입이 아닌, 제 3의 새로운 국가적 경제 비전의 수립에 대한 담론을 적극적으로 내놓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부디 야권의 후보들이 안일하게 판단하지 말고 현재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장을 내놓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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