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가 지난 25일 '2007 경영평가 보고서'를 의결하면서 보고서 내용과 상충되는 평가 내용을 방송문안에 포함시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사회는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이사들의 추가 의견을 보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실제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를 뒷받침할 뾰족한 근거를 찾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KBS 정연주 사장 퇴진을 압박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공표되는 경영평가 내용까지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현재 KBS 이사회는 "KBS의 2007년 경영 성과는 여러 긍정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수신료 인상에 실패하였으며 인사제도 개혁에도 성과를 내지 못함으로써 경영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는 내용을 방송문안에 추가해 외부 평가위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평가위원들은 오는 31일 KBS '뉴스9' 직후 방송될 경영평가 내용에 자신들의 이름으로 이사회의 입장이 방송될 경우 법적 대응까지 나서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사옥 ⓒ미디어스
이런 가운데 양혁승 연세대 교수를 비롯한 평가위원 5명은 29일 오후 "이사회가 (추가 방송문안에 대한) 결의사항을 취소하지 않을 경우, 우리가 제출한 방송문안을 31일 방송에 사용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증명을 KBS 이사회로 보냈다. 양 교수는 "방송이 실제 나가버리면 우리의 인격권이 심각하게 훼손되기 때문에 먼저 시급하게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밝혔다.

논란이 되고 있는 '2007 경영평가 보고서'는 KBS 이사회가 위촉한 외부전문가 6명과 내부위원 1명으로 구성된 경영평가단이 지난해 11월 말부터 6개월 동안 방송, 기술, 정책·뉴미디어, 경영 등 4개 부문에서 △경영목표 설정의 타당성 △예산집행의 효율성 △인사·조직 제도 △재무상태 등 7개 항목을 평가한 것으로 최근 이사회에 보고돼 의결을 마치고 곧 보고서 형태로 발간될 예정이다.

그러나 미디어스가 29일 입수한 '2007 사업연도 KBS 경영평가보고서'에는 이사회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KBS 경영과 관련해 지적사항과 개선사항은 적시돼 있으나 총론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볼만한 특이 요소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회가 주장하는 경영 적자, 수신료 인상 실패, 인사제도 평가 부분은 보고서에 나와있는 내용이지만 전체적인 맥락과 다르게 부정적인 표현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등 문제가 있다는 것이 외부 평가위원들의 입장이다.

보고서는 우선 인사제도와 관련해 "KBS가 팀제로 전환한 것은 옳다고 판단된다"면서도 당초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려면 △자율팀제의 장점이 살아날 수 있도록 팀 체제를 설계하고 시행 △여유인력을 유지하면서 인력육성을 위한 투자 확대 △팀제를 중심축으로 일 중심 문화와 창의성 촉진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급여제도, 평가제도, 경력관리제도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인적자원관리 측면에서도 "급여 구성을 단순화하고 조직에 대한 기여도를 반영하는데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체계로 전환하는 등 급여체계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인사관련 제도의 성과가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도록 해야 한다"는 보고서 내용을 이사회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깎아내린 셈이다.

▲ 동아일보 5월26일자 2면. KBS 이사회의 '2007 경영평가보고서'는 평가위원들과 언론시민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사는 등 논란을 빚었다.
보고서는 또 수신료와 관련해서도 "KBS가 공적 책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특단의 재원마련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방송통신위원회에 수신료 인상의 타당성 검증 의무와 함께 수신료의 조정주기를 법제화하고 수신료 조정금액을 산정하는 지표를 확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을 뿐 '수신료 인상 실패'에 대한 '책임' 문제를 별도로 적시하지 않았다.

재무상태의 건전성에 대해서도 "방송 3사 중 KBS만이 279억원이라는 큰 폭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것은 광고수입 감소의 원인이 광고시장 축소라는 외적 요인이라기 보다는 주중 드라마 부진에 의한 시청률 하락이라는 내부 요인으로 추정된다"며 "KBS는 내부적으로 체질개선과 자기혁신을 통한 자구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보고서는 2007년도에 KBS가 적자를 기록한 원인을 내부 요인에서 찾고 지속적인 자구노력을 주문한 것으로 "만성적인 적자를 기록했다"는 이사회의 판단을 뒷받침할 만한 내용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경영부문 평가위원인 양혁승 교수는 26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KBS의 적자 상태가 만성인지 아닌지 여부는 이사회가 종합적으로 판단해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다"면서도 "이번 평가보고서는 2007년도에 대한 보고서이고 2007년도의 적자 상황은 적시했다. 그러나 2006년도는 법인세 환급 등으로 적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만성인지 아닌지 여부는 해석이 달라진다"고 밝힌 바 있다.

KBS 이사회는 현재 외부 평가위원들의 반발과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수정안을 제시하는 등 조율에 나서고 있지만 별다른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 이사회는 현행 방송법에 따라 '경영평가단'을 구성해 KBS의 경영목표 타당성, 예산집행 효율성, 인사·조직관리 실태, 재무상태 등을 평가한 뒤 매년 5월 그 결과를 방송을 통해 공표해야 한다. KBS 이사회는 2007년도 경영평가를 위해 지난해 11월, 회계(이범열 공인회계사)·경영(양혁승 연세대 교수)·기술(강태인 전 KBS TV기술국장)·방송(이범수 동아대 교수, 김훈순 이대 교수) 부문에 6명의 외부 전문가와 KBS 감사 1명 등 모두 7명의 평가위원을 위촉한 바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