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로 기억된다. 후배 기자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촬영현장 공개가 있다고 연락이 왔는데 취재를 가야하냐고. 매체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며 영화 촬영현장 공개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동선대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움직이는 초등학생 견학처럼 변해가는 현실이 불만이긴 했지만, 그래도 (영화 기자는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일천한 경험이 야기한 편집장의 똥고집 때문에)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모든 현장공개는 다 취재한다는 것을 알면서 새삼스레 물어보는 후배가 다소 의아했다.

▲ 영화 '날나리 종부전' 스틸컷
무슨 영화냐고 물었다. <날나리 종부뎐>이란다. 금시초문이었다. 배우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룹 ‘쥬얼리’의 박정아란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영화사나 홍보사가 어디냐고 물었다. 모른단다. 그럼 연락은 누구한테 받았냐고 물었다. 박정아 매니저란다. 상황은 불 보듯 뻔했다. 인기 가수를 캐스팅해 졸속으로 제작한 영화가 어디 한둘이었던가. 촬영은 막바지로 치닫는데 영화에 대한 홍보는 전무하니 몸이 닳는 건 박정아의 소속사일 뿐. 그제야 부랴부랴 기자들에게 전화를 돌린 거였다. 후배가 쭈뼛쭈뼛 취재여부를 물어본 건 당연했다. 그나마 어렵사리 잡은 현장공개 일정조차 밀리고 밀려, 결국 현장을 공개한 날은 영화의 마지막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1년하고도 10개월이 지난 2008년 5월, 기억에서 사라졌던 <날나리 종부뎐>이 <날나리 종부전>으로 이름을 살짝 바꾸고 개봉을 했다. 두 명의 멤버가 교체된 ‘쥬얼리’가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One More Time’과 ‘ET춤’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자, 스리슬쩍 2년 가까이 묵혔던 박정아 주연의 영화도 ‘쥬얼리’의 인기에 편승해 개봉이 결정된 것이었다. 불현듯 <카리스마 탈출기>가 떠올랐다.

▲ 영화 '날나리 종부전'
2005년 8월로 기억된다. <카리스마 탈출기>라는 영화의 현장공개가 있다고 연락이 왔다. 주연배우는 그룹 ‘베이비복스’ 출신의 윤은혜였다. 당시 윤은혜는 예능프로그램 ‘X맨’에서 ‘소녀 장사’라는 이미지와 김종국과의 로맨스로 제법 인기가 있었다. 그룹의 해체와 동시에 가창력이 부재해 가수로서 수명이 다한 멤버들이 발을 돌린 영역은 대부분 예능과 연기였다. 예산이 충분치 못한 <카리스마 탈출기>는 신인 배우보다 인지도가 높은 윤은혜를 주연으로 캐스팅했고, 윤은혜도 예능인에서 배우로 영역을 넓히기 위해 <카리스마 탈출기>를 택했다.

<카리스마 탈출기>는 그해 11월 개봉 예정이었다. 개봉을 앞두고 조이씨네도 <카리스마 탈출기>의 시사회 이벤트를 진행했다. 허나 개봉이 급작스레 연기됐고, 이미 신청자를 모집한 시사회는 어쩔 수 없이 진행됐다.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의 반응은 실로 참담했다. 개봉은 더욱더 요원해보였다. 그때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유일하게 <카리스마 탈출기>를 극장에서 본 관객들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카리스마 탈출기>도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난 2006년 3월, <카리스마 탈출기>가 개봉을 했다. 드라마 ‘궁’에 출연하며 주가를 올린 윤은혜 덕분이었다. 윤은혜의 인기에 편승해 개봉이 결정됐지만, <카리스마 탈출기>는 전국 1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치며 흥행에 참패했고, 여지없이 2006년 최악의 한국영화로 회자됐다.

<날나리 종부전>도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촬영당시 그토록 홍보에 적극적이었던 박정아의 소속사였건만, 현재 그들에게 <날나리 종부전>의 개봉은 달갑지 않은 일임에 분명했다. ‘One More Time’으로 한창 주가를 올린 박정아에게 <날나리 종부전>이 그리 도움 될 리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또한 그들일 테니까. 따라서 영화의 홍보는 바쁜 스케줄을 핑계로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날나리 종부전>은 개봉 첫 주, 전국 147개 스크린에서 11,126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전국 139개 스크린에서 53,349명을 동원한 <카리스마 탈출기>의 오프닝 스코어와 비교하면 더욱 참담하게 느껴지는 수치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날나리 종부전>을 능가할 2008년 최악의 한국영화는 없을 거란 확신마저 든다.

▲ 영화 '날나리 종부전' 스틸컷
가수의 무분별한 연기 도전을 꼬집으려함이 아니다. 다시는 이런 영화들이 ‘Baby, one more time’을 외치며 제작되는 일이 없길 바람이다. 눈먼 돈이 흘러넘쳐 우후죽순 졸속으로 영화들이 제작되던 시기에 가수의 인지도를 이용했던 기획 상업영화가 한국영화의 위기론이 대두되는 현 시점에 개봉을 했으니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제작사의 기획 의도는 물론이거니와 영화라 부르기도 민망해 영상이라 부르고 싶은 결과물, 이런 결과물의 완성도로 인해 개봉을 미루다가 출연 배우의 인기에 편승해 개봉 시점을 잡은 배급사의 알량한 잔머리까지. 덕분에 꾸준히 연기에 도전해왔던 박정아는 <날나리 종부전>에 덧씌워질 온갖 비난의 대명사를 외적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할 위치에 서고 말았다. 이경규와 <복수혈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박정아를 보면 한동안 <날나리 종부전>이 떠오르는 건 피할 수 없는 일. ‘Baby, one more time’을 부르는 박정아의 목소리가 비장하게 들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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