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수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
시작은 이렇게 하자. “걱정된다. 달리 방법도 없다. 그렇다고 두고 볼 수 도 없다.” 정청래, 우상호, 손봉숙, 이광철, 천영세 의원 등 17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으로 한나라당과 족벌신문의 언론장악 시도에 저항하며 언론독립에 일정한 역할을 했던 의원들을 18대 국회에서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십년 야인 한나라당이야 가는 세월을 걷어차고 오는 국회 즐기는 맛이 솔솔 하겠지만 입 안 가득 씀바귀를 씹는 고통이 솔직한 우리 현실이다.

그래도 험한 앞길에 지나온 날을 돌아보는 여유를 부려 본다면 방송, 신문 등 언론에 관한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보면 17대 문광위의 시작은 괜찮았다. 문광위는 신문과 방송 등 언론정책 분야와 미디어산업 소관 상임위다. 언론을 통한 정치적 선전, 선동은 선거와 정권유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국회 내 어느 상임위보다 논란이 많고 정치색이 짙다. 특히 방송언론에는 직접적인 압력이 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기본도구가 되는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보장해야 하는 위원회임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여당과 다수 야당만이 주축이 되어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으로 문광위에도 민노당이 참여함으로써 언론노조를 포함한 진보진영의 언론개혁과 언론공공성 확대가 전파되고 입법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의 제∙개정은 신문시장 정상화와 언론 보도로 침해되는 인권 보호를 위한 초석이 되었다. 또한 지역방송의 균형적 발전과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역방송발전위원회의 설치, 지상파 방송사업자 간의 소유 겸영을 금지하는 방송법 개정 성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4년 기간에 비한다면 언론독립과 공공성 확대를 위한 입법 활동과 관련 행정부처와 구 방송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의 행정행위 견제는 실망스러웠다. 신문과 방송의 상호 교차소유 및 겸영 금지를 위한 방송법 개정, 유료방송 시장의 공공성 확대를 위한 방송법 개정 등은 관심이 덜했다. 이종매체간 교차소유 및 겸영 금지에 쐐기를 박지 못함으로써 이명박 정권의 신문방송 겸영 확대에 기름칠을 한 꼴이 되었고 케이블 방송 규제 입법의 소홀은 IP-TV의 공적기능 축소와 향후 유료방송에서 공공성을 약화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

문광위의 가장 큰 잘못은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을 끝까지 처리하지 않은 것이다. KBS 재정을 볼모로 정연주 사장의 퇴진과 대선, 총선에 유리한 방송언론 환경을 조성해 보려는 한나라당과 자당에 유리한 언론환경을 만들기 위해 줄타기한 통합민주당은 공영방송의 자본과 권력에 대한 독립 염원을 외면하였다. KBS의 재정적 어려움은 KBS2의 분리와 국가기간방송법 도입을 한나라당이 끈질기게 주장하는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

DTV 전환 특별법, IPTV 사업법, 방송통신위원회법이 방송통신특별위원회 소관으로 정하여졌으나 상당 부분 문광위 소관임에도 비교섭단체인 이유로 민주노동당이 배제되어 진보진영의 의견이 소홀히 다뤄졌다. 통합민주당이 일정부분 시민사회의 의견을 반영하기는 하였으나 당 지도부와 한나라당의 짬짜미로 바른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방송독립을 심각하게 해치는 언행을 일삼은 강동순 방송위원에게 호통이나 치는 것으로 끝나버린 무기력함과 자기만족으로 끝났고 위원회 회의록 공개조차 강제하지 못한 무능은 자질과 능력 보다 방송언론 독립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탓이었다.

시민사회와 소통도 부족했다. 일부 의원들이 방송현업단체, 언론노동조합 등과 현안을 공유 하였으나 입법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관련 당사자와 한정된 보좌관 등이 제공하는 자료에 의존하는 법률심의는 사업자 편향적이어서 언론 소비자의 이익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노동조합은 오히려 한나라당과 현안을 협의할 수밖에 없는 때도 있었다. 야당의 소통 부재는 시민사회뿐 아니라 같은 당 위원 간에도 부족했다.

최시중씨의 탄핵 결의에 가면 무력함이 더해진다. 최시중씨가 문광위 업무보고를 거부하자 탄핵발의 카드를 호기 있게 꺼내들었지만 정작 탄핵촉구 결의를 위한 마지막 회의는 취소했다. 최시중씨가 방통위 회의 운영규칙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17대 국회는 이미 끝났다.

18대 문광위는 우월적 지위를 행사하는 한나라당의 독단에 소수 야당의 수성이 될 터다 다시 국회에 남는 문광위원들은 죄 값을 치르듯 치열해야 한다. 혼자는 어렵다. 대중은 어떤 경우에도 현명하다. 오만해 하지 말고 시민사회와 조직적으로 소통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떠나는 위원들도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과 족벌신문의 왜곡된 여론을 막는데 함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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