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지하철 1호선 구로역 CCTV 관제 철탑에 2명이 올라갔다. 이들은 각각 금속노조 남부지역지회 구 모씨(41)와 기륭전자분회 노조 조합원 윤 모씨(39)다. '쫓겨난 지 1천일 기륭전자 회장과 사장은 즉각 고용·정규직화 실시하라', '이명박 대통령은 기륭전자문제 해결로 능력을 보여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펼침막 두 개를 내걸고 30m 상공에서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 지난 26일부터 금속노조 기륭전자 조합원 등 2명이 복직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서울시 지하철 1호선 구로역 북광장 CCTV 관제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진행중이다. ⓒ 정영은

구로공단 지역인 서울시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기륭전자는 네비게이션과 위성라디오 수신기 등을 만드는 회사다.

2005년 당시 이 회사의 생산직 비정규직에는 불법 파견노동자가 전체의 99%를 차지했다. 회사측은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64만1850원의 월급을 지급해오면서 3개월, 6개월 단기 근로계약을 강요하했고 수시로 해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이에 2005년 7월 기륭전자의 여성 노동자 200여명은 불법파견 시정과 근무조건을 협상하려고 노조를 결성했다. 그러자 회사는 200여명 전원을 계약만료를 이유로 해고했다.

불법파견 철폐와 복직을 요구하며 시작된 이들의 투쟁은 벌써 햇수로 4년째, 지난 19일로 파업 투쟁 1000일을 넘겼다. 기륭전자 파업은 기업들의 불법파견 문제가 처음으로 공론화된 사례로 최고 긴 시간동안 투쟁중인 비정규직 사업장이다.

노동부도 2005년 8월 기륭전자의 300명 중 정규직 15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불법파견한 비정규직라고 판정했지만 회사는 태도 변화가 없었다.

이에 검찰이 불법파견으로 기소하자 회사는 500만원 벌금을 낸 후 복직요구를 외면하는 입장으로 일관해오고 있다. 현행 법상 생산직에 파견 노동자를 채용하면 불법이지만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는 허술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4년간 기륭전자 노조 조합원들의 삭발과 단식, 점거 농성이 이어졌고 급기야 지난 11일 조합원 4명이 서울시청에 설치된 조명탑에서 9시간 동안 고공시위를 벌였다. 긴급히 나선 서울지방노동청이 사측과의 교섭을 주선하기로 했다. 지난 16일과 22일 기륭전자 배영훈 사장을 대신한 총무이사가 노동부 관악지청에서 교섭을 벌였지만 결렬되고 말았다. 이후 지난 26일 다시 고공시위가 시작됐다.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던 지난 28일, 3일째 고공시위중인 1호선 구로역 북광장에서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을 만나봤다. 시위 현장에는 지지방문을 온 손님들과 몇몇 취재진이 보였다. 구로역 광장을 지나던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선전물을 유심해 보기도 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경찰은 기동대 병력 10여명을 배치했고 소방서는 탑아래로 안전 장치(에어 매트)를 설치해놓고 있었다.

▲ 서울 지하철1호선 구로역 북광장 앞 기륭전자 노조의 천막농성장 ⓒ 정영은

지난 26일부터 구로역 고공시위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노숙농성을 시작했다는 김소연 지회장은 “광우병 반대 촛불집회 때문인지 시민들의 관심과 격려가 크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회사측과의 지난 22일 교섭 결과를 묻자 “사측은 우리에게 일단 농성을 중단하고 12월까지 영어교육 같은 것을 받고 기다리라고 하더라"면서 "복직을 요구하자 여부도 장담 못하겠다고 답하더라"면서 교섭 결렬의 내용을 설명했다.

다음은 김소연 기륭전자 노조 지회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 밤샘하면서 노숙농성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비도 오고 궂은 날씨인데 철탑에 올라간 분들과 조합원들의 건강상태는 어떠한지.

" 경찰이 밤에만 천막을 칠 수 있게 해서 밤에는 천막에 모여서 농성하고 있어요. 오늘은 비가 와서 경찰이 봐주네요(웃음) 저부터도 그렇고 감기가 잘 안 떨어지는데요. 그래도 다들 힘내서 회사(기륭전자) 앞과 구로역 광장에서 동시로 출퇴근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하루 세번씩 시위를 병행하고 있어요.

(철탑 위로) 올라간 조합원 분들은 현재 위아래 탑위에서 각각 홀로 매트를 깔고 쪼그려 앉아있는 상태에요. 죽을 올려보내고 있는데, 현재는 괜찮아보이구요. 비도 많이 오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탑이 흔들려서 걱정입니다. 고공시위를 장기화시키면 안되는데 말이죠. "

▲ 기륭전자 노조원이 고공시위를 벌이고 있는 구로역 CCTV 철탑 앞 조형물 "우리는 일하고 싶다". 사태해결의 염원을 담은 초들이 장미꽃 한송이와 함께 놓여있다. ⓒ 정영은
- 고공시위 시작과 함께 매일 저녁 촛불집회를 진행중이라던데.

" 구로역 북부광장에서는 26일부터 매일 저녁 7시 촛불집회를 하고 있지요. 60여명에서 많게는 100여명 가까이 참석하고 있어요. 오가던 시민분들이 먹을것도 사다 주시면서 격려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죠.

아무래도 광우병 촛불집회의 영향으로 저희 문제에도 관심을 많이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광우병 쇠고기가 단순히 '소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부정책 전반과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함께 연결하자는 인식이 많으신 것 같아요. 저희 촛불집회 구호도 "미친 소도 막아내고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 철폐하자"에요. "

-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 철폐"이라는 구호가 인상적이다.

"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만들어낸 것이 미쳐버린 '광우병 소'잖아요.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라는 말이죠. 우리나라 파견법 시행이 올해로 10년째에요. 불법·탈법·합법 파견으로 외주나 용역이 흔해졌지요. 이제는 비정규직이 한국사회 전체노동자의 70%를 넘어선 상태까지 온 거에요.

기륭전자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구로공단 전체의 문제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어요. 구로공단만 해도 현재 90%이상이 비정규직이에요. 특히나 여성은 97% 이상이 비정규직 노동자거든요.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임금을 받으면서도 하루하루 해고의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가지요.

몸이 아파도 휴가는커녕 조퇴도 제대로 못하고요. 그런데도 구로공단 대부분 사업자들은 흑자를 내고도 경영악화와 인건비 절감 등을 운운하면서 정규직을 없애고 절반의 월급만 주면 되는 비정규직으로 메우고 있어요. 그러니까 더 늦기 전에 뭉쳐서 함께 싸워야 합니다"

▲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지회장 ⓒ 정영은
- 햇수로 4년째인데 기륭전자 회사측은 여전히 교섭의지가 없는 것인지.

" 4년동안 대표이사가 5번째 바뀌었는데도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아요. 대화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어요.

지난 11일 서울시청 고공시위 이후 서울지방노동청 주선으로 16일과 22일 두차례 총무이사가 대신 교섭장에 나왔는데요, 저희한테 12월까지 영어교육수업 받으면서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복직문제는 장담하긴 어렵다고 하면서 말이죠. 노동부에서 그러는데 사측이 노동부쪽에 "굴욕적 협상은 못하겠다"고 했다더군요.

'비지니스 프렌들리' 정부라 그런지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중국 방문길에 최동렬 기륭전자 회장을 수행으로 데리고 갔다더군요. 최동렬 회장은 여태껏 교섭자리에 한번도 안 나왔거든요. 우리는 너무 안 풀리니까, 어떻게든 돌파하기 위해서 고공시위까지 하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지요. "

- 1000일 넘게 투쟁하면서 조합원들도 많이 지쳤을텐데.

" 오늘(28일)로 벌써 1008일째인데요. 회사는 저희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고 손해배상 가압류 신청도 했죠. 그게 54억원이나 되요. 워낙에 손배가압류 액수이 엄청나니까. 최근에는 CMS로 후원도 받고 있긴 한데요. 200여명 조합원 중 36명이 남아 싸우고 있죠. 사측은 조합원들한테 사직서를 내면 가압류를 풀어주겠다고 회유했거든요. 대부분 파견업체 통해서 재취업했다가 다시 해고당한 경우가 많아요. 다수가 아르바이트 다니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구요. 종일 투쟁하고 있는 분들은 현재 10명이에요. 시위하고 소장 나오고 경찰서 불려다니고 했죠.

참 지리한 싸움이지요. 그래서 정말 '연대의 힘'이 중요하다고 느껴요. 여기 농성장에 예술작품 보이시죠? 회사(기륭전자) 앞에는 더 많아요. 미술인분들이 만들어주셨어요. 이번에 광우병 미국소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지속되면서 저희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시민여러분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것 봐도 그렇구요. 응원에 힘내 싸워서 반드시 다시 일하러 현장으로 돌아가야겠지요. "

- 지지 방문하러 오신 분들도 상당한 것 같다. 기자가 취재오면서 길을 물으니 상인분들이 바로 알려주더라.

▲ 응원의 꽃다발을 받고 감사의 표시로 흔들고 있는 윤 모 조합원 ⓒ 정영은
"전주에서도 지지방문 오신 분들도 있었어요. 지난 26일 '광우병 쇠고기 수입중단'을 외치면서 분신기도한 이병렬씨가 한강성심병원에 계시대요. 그 분 문병오는 차에 들리셨다고 하더라구요. 이 분 전신 3도 화상 88%라 위독하다는데 언론에서는 기사도 별로 안나오는 것 같아요.

다른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 분들도 오시구요. 저희가 역광장에 있으니까 역주변 상인이나 시민분들도 오가면서 수박이며 음료수며 먹을거리 사들고 격려하러 많이 들리세요.

오늘(28일)은 향린교회 여성인권모임에서 응원의 장미꽃 한다발을 사오셔서 철탑으로 올려보냈어요. 올라가 있는 조합원과 통화했는데 저 친구가 이럴 때 아니면 꽃 받을 일이 없는 친구라 그런지 너무 좋아해요. (웃음) "

- 복직투쟁이 장기화되면서 보도가 거의 없었는데 이번 고공시위로 다시 언론에서 취재를 꽤 하는 것 같은데.

" 고공시위 첫날에는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꽤 많이 왔다갔어요. 간단하게라도 여러군데 보도됐고요.

아쉬운 점은 저야 그동안 이미 인터뷰를 많이 해서 상관없지만 사실 철탑에 올라간 조합원들 실명은 안 나갔으면 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기자들이 알고 다 내보냈더라구요.

경인방송(OBS) 취재팀은 새방송 만드는 투쟁하느라 노숙농성을 많이 해봐서 잘 아나봐요. 이 분들은 고공시위 첫날에 아예 핫팩을 싸들고와서 밤샘 농성을 같이 하기도 했어요. 며칠째 현장을 지키고 있는 기특한 기자분들이죠. 그런데 그런 기특한 기자들만 있는 건 아니고. (웃음)

이렇게 고공시위 같이 극한적이고 치열한 투쟁의 현상이 생길때는 언론들이 관심을 좀 가져주는데요. 그런데 이럴 때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벌이고 있는 투쟁의 내용에 대해서도 꾸준하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저희 말고도 KTX나 이랜드-뉴코아, 코스콤 등 장기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사업장들 많이 있잖아요. 최근 박성수 이랜드 회장이 사태해결도 안 한 채로 홈에버를 삼성 홈플러스로 팔아넘겨서 이랜드 비정규직 분들은 더 답답해진 상황이에요. 그런데도 이런 문제들은 언론보도에서는 전혀 부각되지 않아요. 잊혀져가고 있는 거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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