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TV는 화려했다. 더구나 재미있었다.

<괴물>같은 인기 영화도 볼 수 있었고, 방송사들이 마련한 각종 오락프로그램도 흥미로웠다. 하이라이트 편집해 놓고 특집이라고 우기는 방송도 있었고, 늘 나오던 연예인이 또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참을만 했다.

재탕, 삼탕 좀 하면 어떠랴? 성묘 다니느라 바쁜데 본방송 보기 힘든 시청자를 배려한 게 아니겠냐고 마음먹으면 억울할 것도 없었다.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연휴가 길지 않았나. 그 많은 시간을 특집으로 채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가위라 일시적으로 넓어진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이해했다.

▲ 추석 특집으로 방송된 MBC '무한도전'의 한 장면 ⓒMBC
허나, 허전하다. 뭔가 빠졌다. 외국인들 나와서 공연하고, 아나운서들이 춤도 추니 딱 추석분위기 맞는데 그게 뭘까? 그렇다. 추석특집 드라마다. 채널CGV가 마련한 <커플브레이킹> 말고는 어디에도 없었다.

시청자들은 섭섭하다. 해마다 추석특집극은 여러모로 기대를 모았다.

일단은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에 큰 점수를 줬다. 추석은 모처럼 여러 연령대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이다. 이때 누구나 공감하며 볼 수 있고 같이 즐기면서 웃거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매개체였다.

단막극이 주는 재미도 컸다. 평소에 단막극은 홀대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추석특집극은 황금시간대에 배치되어 시청자들이 편하게 볼 수 있었다. 미니시리즈로 익숙한 유명작가들이 내놓는 작품들이라 기대도 있고, 공들인 영상들도 볼거리를 줬다. 기존 드라마에서 소외되기 쉬운 중견배우들이 주인공을 꿰차는 것도 의미가 깊었다.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처럼 새로운 형식의 드라마를 선보여 후에 정규편성이 되기도 했다.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한몫 했다. 매년 주제는 같더라도, 달라지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거울의 역할을 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유는 달라진 방송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드라마 한편을 만드는 제작비가 엄청나게 높아졌다. 단막극도 사라진 판이니 특집극을 만드는 건 기대하기 힘들다. 제작비가 적게 들면서도 시청률이 보장되는 오락프로그램이 있으니 선택은 당연하다.

최근에는 굳이 명절이 아니더라도 2~4부작 분량의 특집극이 자주 편성되니 사정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그것도 아니다. 제작중인 드라마가 차질을 빚거나 타방송사와의 경쟁에서 밀릴 것 같을 때 들어오는 드라마들이 주로 특집극이다.

이래저래 씁쓸한 추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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