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인을 하고 있는 김미화씨 ⓒ김도연

토요일(3일) 오후 4시,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대형서점 한 편이 북적인다. 자리에는 빈 의자가 놓여있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이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오늘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활짝 웃으며 의자에 앉는 이는 '순악질 여사' '나꼽살의 여왕벌'로 대중들에게 큰 웃음을 주고 있는 방송인 김미화씨. 최근 자전적 에세이 <웃기고 자빠졌네>를 펴낸 김미화씨의 사인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오랜 시간 그를 기다렸다.

지난 2010년 4월 KBS는 김인규 사장이 주재하는 임원회의를 통해 <다큐멘터리 3일>의 내레이터를 맡은 김미화씨에 대해 "일부 프로그램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내레이터가 잇따라 출연해 게이트 키핑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출연을 문제삼았으며, 이로 인해 한동안 'KBS 블랙리스트' 논란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KBS는 김미화씨가 개인 트위터를 통해 '블랙리스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자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이후 김미화씨는 '폴리테이너'란 '딱지'와 함께 MBC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도 하차하게 된다.

이명박 정권에서 고초를 가장 많이 겪은 연예인으로 손꼽히는 김미화씨는 이날 <미디어스>와의 '막간 인터뷰'에서 "지난 4-5년을 정리하고 털어버리고 싶은 생각에서 일기처럼 쓴 책이 '웃기고 자빠졌네'"라며 "'웃기고 자빠졌네'를 읽으신 독자 분들이 '눈물이 약간 나지만, 대체적으로 재미있다'는 평을 해주셔서 다행"이라고 밝혔다.

기자가 하차 통보를 받았을 당시의 상황에 대해 묻자, 김미화씨는 입가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다소 진지하게 말했다.

"하차 통보를 받았을 당시에는 '내가 왜 이렇게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비참해져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비교적 빨리 털어내는 스타일이고 슬픔에서 빨리 벗어나는 성격이라서 슬퍼한 시간은 짧았어요. 내가 그동안 살아온 게 비뚤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진심으로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죠. 권력을 가지고 있는 몇몇 분들의 의지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생긴 것이지, 방송을 같이 하던 PD와 작가 등 많은 방송인들은 다 저를 응원해줬어요. '저 사람들만이 나에겐 희망이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죠"

"많이 춥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먼 곳에서 오셨네"라며 독자들과 교감을 나누던 김미화씨에게 반가운 초대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민주통합당 신경민 의원이었다. 신 의원은 김미화씨 옆에 앉으며 "이 자리는 동창회 자리인 것 같다. 김미화씨와 나는 '퇴출동기' 아닌가요?"라면서 친분을 과시했다.

▲ 김미화씨와 신경민 의원 ⓒ김도연

신경민 의원 역시 MBC <뉴스데스크> 앵커 시절 정부를 향해 직설적인 비판을 쏟아내는 '클로징 멘트'로 대중들의 환호를 받았으나 이로 인해 2009년 <뉴스데스크>에서 하차해야 했다. 하차 후, 신경민 의원은 김미화씨가 진행하는 CBS 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에 2달 동안 패널로 출연하면서 친분을 쌓아왔다. 뿐만 아니라 신경민 의원과 김미화씨는 명진 스님과 함께 이명박 정부 하에서 박해받고 쫓겨났던 사람들의 모임 '명쫓사'의 회원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김인규 KBS 사장과 김재철 MBC 사장은 어떤 의미일까? <미디어스>의 짓궂은 질문에 김미화씨는 "김인규 사장이나 김재철 사장이나 식구들을 전혀 돌보지 않는 가장인 것 같다"며 "엄동설한에 자식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옷을 벗겨 밖으로 내보내고 자기만 따뜻한 안방에서 지내는 아버지 아닐까?"라고 답했다.

신 의원은 "김재철 사장은 미꾸라지 같은 도주자"라며 "김재철 사장은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비호 아래서 자신 혼자만 꿋꿋하게 살겠다고 도망 다니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기관 하나라도 제대로 기능했다면 우리사회가 이처럼 멍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숨지었다.

▲ 김미화씨가 펴낸 <웃기고 자빠졌네> ⓒ김도연

<웃기고 자빠졌네>에 사인을 받던 신 의원은 "김미화씨의 방송은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뉴스에 대한 눈높이를 낮춰서 '뉴스대중화'에 큰 기여를 한 것 같다"며 "사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는데 본인 스스로의 노력과 기획으로 우려를 불식시키셨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김미화씨의 퇴출은 우리사회의 큰 상처이며 우리사회의 합리성이 다시 선다면 제자리로 돌아가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미화씨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에도 맡겨진 일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많은 분들이 시사, 경제, 정치 등을 딱딱하게 생각하시고 멀게만 느끼시는데, 나는 대중연예인으로서 이러한 문제들을 가까이 끌어당기는 역할만 했다. 조그마한 노력을 인정해주시는 분들에게 참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막간 인터뷰가 끝난 뒤, 신 의원은 다른 행사로 떠났고 김미화씨는 기다리고 있던 이들과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퇴출동기'의 유쾌한 만남, 하지만 더 이상 퇴출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문밖을 나서는 기자의 마음은 조금 무거웠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