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가를 그만둬야…."

MBC <PD수첩>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참 설명하던 정재홍 작가는 결국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정 작가는 17년의 방송작가 생활 중 12년을 <PD수첩>과 함께했다. 정 작가는 "<PD수첩>에는 내 인생의 절정기가 녹아있다"며 인터뷰 내내 <PD수첩>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자본과 권력에 대한 '성역 없는 비판'을 했기 때문에, 지난할 수밖에 없던 시간이 생각나서였을까? 그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 정재홍 작가 ⓒ김도연

정 작가는 7월 25일 해고를 통보받은 직후 고민이 많았다. MBC라는 거대 언론사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계란으로 바위치기'였기 때문이다. MBC와 충돌했다는 사실은 다른 방송사로 옮기는 데 큰 지장을 줄 뿐 결코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잠자코 있으면 다른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정 작가는 "그래도 이 상황을 묵인해버린다면 절대 다른 일을 못할 것 같았다"며 MBC와의 싸움에 나서게 된 이유에 대해 털어 놓았다.

정재홍 작가가 MBC 앞 천막농성을 접은 지 5일째 되던 날인 31일 오후, <미디어스>는 서울 여의도 MBC사옥 인근의 카페에서 그를 만나 긴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안의 심각함에 비해 별다른 여론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PD수첩 해고 작가들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자 함이었다.

인터뷰 도중 그의 벌게진 눈동자를 보며 기자는 러시아 대문호인 솔제니친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위대한 작가는 말하자면 그의 나라에서는 제2의 정부(政府)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정권도 별 볼일 없는 작가라면 몰라도 위대한 작가를 좋아한 적이 없다." 사실을 보도하겠다는 일념으로 방송을 만들어 온 작가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징계가 작가들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인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치졸함'을 보여주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정재홍 작가의 해고가 단순히 '개인적인 실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현재 MBC는 'MB씨'라는 별명처럼 공영방송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MBC <뉴스데스크>는 네티즌들로부터 '최악의 대선보도를 한다'는 오명을 듣고 있고, <한겨레>가 공개한 대화록에서는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과 박근혜 후보의 최측근인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유착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왜 이렇게까지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정 작가의 말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김재철과 그의 밑에 있는 이들은 자신과 관련한 이익에 대해서는 매우 영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국장, 부장을 하는 이들의 월급, 수당, 퇴직금은 엄청납니다. 그들은 김재철과 손을 잡으면서 이미 그 이득을 확보했고,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부동의 1위니까 '5년 후'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운이 좋으면 지역사 사장, 언론 관련 기관도 갈 수 있을 거예요. 이들은 '선택'을 한 거죠."

정 작가가 떠난 자리에는 새로운 작가들이 메워져, <PD수첩>은 내달 말에 정상 방송을 재개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재홍 작가는 냄비 속 개구리가 자신도 모른 채 서서히 죽어가는 사례에 빗대어 "방송 재개된 <PD수첩>이 처음부터 대놓고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후보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부르지는 않더라도 MBC <뉴스데스크>가 망가지듯이 (서서히) 망가져갈 것"이라고 밝혔다. 개구리는 점차 뜨거워지는 물 속에서 스스로 뛰어나올 수 있을까? 그를 만났던 31일은 유난히 추웠다.

다음은 정 작가와의 일문일답.

- 해고된 지 벌써 3개월이 넘었다. 해고된 <PD수첩> 작가들의 일상이 궁금하다.

MBC 총파업 170일 동안 작가들은 대기 상태에 있었다. 그러고 나서 해고통보를 받았다. 해고된 뒤 다른 방송사에서 함께 일하자는 연락이 왔었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하면서 복직시켜달라는 것도 웃기고 부당한 대우에 침묵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투쟁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해고된 작가들은 MBC 정문 앞에 '끝장캠프'를 설치해 2주 동안 밤샘투쟁을 했다. 거리에 있었더니 몸이 조금 아팠다. 현재는 방송작가협회 'PD수첩'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대책을 구상하고 있다. MBC와의 싸움이 일상이다.

- 해고된 지 벌써 3개월이고, PD수첩은 9개월이 넘도록 불방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좁쌀 경제'라 잘 무너지지 않는다.(웃음) 사실 가족들이 굉장히 어려워하고 있다. 돈을 안 갖다준 지가 벌써 10개월이다. '끝장텐트' 하면서 거리에서 밤샐 때 아이들에게 참 많이 미안했다. 엊그제 곱창전골집에서 곱창을 먹었는데, 다들 감동했다. '이게 몇 개월 만이냐'면서 감동했다. 나만 어렵겠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도 택시운전을 하면서 복직투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월요일부터 홍보물이라든지 단편적인 기획안이라든지 작업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수입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가 장기적인 싸움을 하기 위해서라도 조금이나마 벌어야 한다. 숟가락 놓고 있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이야기가 많이 오갔지만 후배들은 그러지 말고 버텨야 한다고 하더라

- 정재홍 작가에게 있어 <PD수첩>은 어떤 의미인가?

MBC에서 17년 간 방송작가로 살았다.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PD수첩>을 하면서부터다. <PD수첩> 속에는 내 인생의 절정기가 녹아있다. 성역 없는 비판과 거악과 상대하겠다는 모토와 함께 <PD수첩>은 구조적인 문제에 천착했고 '황우석''광우병''검사와 스폰서' 등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방송들을 같이 만들어왔다. 지금의 상황은 이러한 가치가 단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가슴이 많이 아프다. 해고 당일(7월 25일) MBC에서 이곳(MBC 근방의 카페)으로 걸어오면서 무지하게 많은 생각을 했다. 'MBC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백해무익인데, 다른 언론사들이 나를 받아줄까?' '이길 가능성은 있을까?''부당하다고 끝까지 외칠 수 있을까?''그들 말처럼 잠자코 꼬리 말고 집에 가면 다른 프로그램을 할 텐데' 등 온갖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작가와 PD들이 쌓아올린 <PD수첩>을 부당한 방법에 의해서 무너지게 만들 수는 없었다. 이 상황을 묵인해버리면 절대 다른 일은 못할 거다. 너무나 부당하다.(침묵) 내가 작가를 그만둬야….(울컥)

▲ MBC가 일방적으로 해고한 정재홍, 이소영, 이화정, 장형운, 이김보라, 임효주 작가.(왼쪽부터) ⓒ김도연

대체작가를 정말 뽑았다니, 사실 믿기지 않았다

- MBC 사측은 4명의 대체작가를 뽑았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심경은 어땠나?

사실 잘 믿기지 않는다. 대체작가들이 과연 출근할지 과연 올 것인지. 우리 사회의 정의를 이야기하고 약자를 대변했던 <PD수첩> 제작 목적을 대체작가들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PD수첩> 작가는 너희들만 할 수 있나'라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사측은 "종신작가하겠다는 거냐?"라고 물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 결단코 아니다. 해고되는 과정에서의 '부당성'에 대해서 따지는 것이다. 사측은 '방송 작가'의 전문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또 노조 파업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해고 사유를 들었지만, 이는 작가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처사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922명의 작가들이 <PD수첩> 대체작가를 거부했던 것이다. 내가 짤린 자리에 그들이 들어와서 아프다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해고를 합법화, 합리화 시켜주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 대체작가에 대한 정보를 들었나?

전혀 모른다. <PD수첩> PD들도 모르고 배연규 팀장만 안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은 PD다. PD가 작가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배 팀장이 PD들에게 대체 작가와 일할 거냐 물었고 안한다고 하니까 다른 팀으로 가라고 한다. 어제(30일) 들은 이야기이다. 배연규 팀장이 <PD수첩> 팀 회식을 했다는데 정규직 PD 7명은 제외하고 나머지 3명의 시용피디와 회식을 했단다. 이들에게 아마 '1년 동안 일 잘하면 정규직 시켜줄게'라고 구슬렸을 것이다. 반면 기존의 PD들은 해고된 작가들을 복귀시켜달라고 이야기하는 입장이다. 결국 기존의 PD들이 배제된 채 대체작가와 시용PD만으로 제작을 하겠다는 것이 사측의 생각이다.

- 사측은 내달 방송을 목표로 하고 있다.

12년 동안 <PD수첩>을 했지만 늘 대작이 나왔던 건 아니다. 하다보면 취재가 되지 않아 기대 이하의 작품이 나온 적도 있다. 핫한 이슈를 가지고 2-3차례 잘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반언론적인 환경에서 제작하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진실을 왜곡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보도할 가능성이 커진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자세와 철학적인 부분이 기존의 <PD수첩>과 같겠나? 처음부터 대놓고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후보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부르진 않더라도 MBC <뉴스데스크>가 망가지듯이 망가질 것이다.

대체작가실? MBC, 대체작가들도 무시하고 욕보이고 있다

- 정재홍 작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남은 PD들과 상의해서 대응하겠다'고 말한 바 있는데, 어떤 대응을 할 계획인가?

만약 대체작가들이 출근하면 내부에 남아 있는 시사,교양 작가들이 국장실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계획을 하고 있다. 우리는 들어가지 못하니까.(웃음) 또 현재 MBC 노동조합에서 지금 단식하고 있는데, 그들과도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할 것이다.

- 한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대체작가들을 위한 작가실이 MBC 사옥 8층에 따로 만들어진다던데? 전례가 있는 일인가?

전례가 없다. PD 자리는 6층에 있고 우리의 빈자리도 그곳에 있다. 새로운 작가들을 뽑았으면 우리 빈자리에 앉히면 될 것을 따로 만든다는 건 방송작가를 무시하고 욕보이는 처사다. 오는 작가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제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사람을 그렇게 대우하면 되겠나?

- 방송작가협회까지 나서고 있지만 여론의 반향이 크지 않은 측면이 있다.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국민들이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또 현재 워낙 복잡한 사건과 사고가 많고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 계신 국민들이 '잘 먹고 살던 MBC 사람들이 뭐 저렇게 악다구니를 쓰나?'라고 여기신다. '공정방송 쟁취'라는 구호가 추상적이기도 하고. 하지만 삶아지는 개구리처럼 눈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한계점을 넘어선다면 국민들의 알권리에 심각한 침해를 가져다 줄 것이다. '안철수 논문표절 의혹' 보도 등 망가지고 있는 <뉴스데스크>와 방영조차 되지 않고 있는 <PD수첩>이 이를 방증한다. 우리사회의 '소금'이 빠지는 것과 같다. 물론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면 공감해주시는 시민들도 많다.

- 이 사안에 대해 무관심한 시민의 지지를 이끌 수 있는 계획은 없나?

우리와 한국방송작가협회 비대위도 고심하고 있다. 뭘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좀 더 많이 이해해주실까? 지금 첨탑에 올라가신 비정규직 노동자 분들도 있지만, 예전 막다른 순간에 다다랐던 분들을 취재할 때 느꼈던 감정들이 요즘 참 많이 밀려온다.

김재철 세력에게 자리 깔아준 것은 새누리당

- 최근 MBC가 '편파방송 1위'로 꼽히고 연일 말썽이다. 12년 전 처음 <PD수첩> 할 때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너무나 안타깝다.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던 울타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국장이 방패 역할을 했다. 윗선의 압박이 내려올 때 국장이 1차적으로 막아줬고 막지 못하는 것은 팀장으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국장은 윗선을 향해 "쟤들은 제 말 죽어도 안 듣습니다. 직접 설득해 보십시오"라고 말하곤 했다. 팀장에게 압력 전화가 오면 팀장은 "당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지금 당장에라도 (압력 전화가 왔다고) 공개할 수 있다"면서 제작을 고집했다. 이렇게 일정 정도 언론의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었고 나름의 비판 정신이 살아있는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재철 사장 이후로는 사장이 PD수첩을 공격하는 지휘관, 국장은 일선 전투 부대의 대대장으로 전락했다. 이제는 팀장이 직접 총을 들고 PD와 작가들을 겨누고 있다. 내부의 방패가 이제는 우리를 무너트리기 위한 장치로 변질된 것이다. 이 사람들은 언론인이 아니다.

- 박근혜 후보는 최근 '방송의 공공성을 실질적으로 이루겠다'고 했는데.

작가로서 새누리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가지고 있는 언론 정책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 특히 그 질문과 관련해 말하고 싶은 사람이 백종문 MBC 편성제작본부장이다. 이 사람은 사람만 바꾸면 방송이 바뀔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집요하게 사람을 쳐냈고 거기에 순치된 사람들을 앉히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가 최근의 방송들로 드러나고 있지 않나? 이러한 사람들이 김재철을 끝까지 옹호하고 있는데, 박근혜 후보는 공정방송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김재철 밑에 있는 이들은 자신과 관련한 이익에 대해서는 매우 영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중요한 것이 사적 이익이라는 말이다. 현재 국장을 하고 부장을 하는 이들의 월급, 수당, 퇴직금 엄청나다. 그들은 김재철과 손을 잡으면서 이미 그 이득을 확보했고,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부동의 1위이니까 5년 후를 내다보고 있다. 자신의 정년까지 보장만 되면 못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지역사 사장, 언론 관련 기관들도 갈 수 있을 것이고. 이들은 '선택'한 거다. 정치 세력이 공정성을 무너트리고 언론의 비판 정신을 짓밟더라도 나의 '밥'만 챙길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생각. 이들에게 자리를 깔아주고 떡고물을 던져준 것은 새누리당 아닌가?

-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노동조건도 생각해 볼 지점이 있는 것 같다. 방송작가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보나?

일단 작가가 정규직이 되는 것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작가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다. 화가, 음악가, 연기자들 처럼 창작력과 의욕이 있을 때 작품을 만든다. 하지만 비정규직 대우에도 '도의'가 있어야 한다. 특히 작가를 꿈꾸는 리서쳐, 막내 작가, 외주 작가들에 대한 처우는 매우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방송국 구성원 모두가 같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2000년 초에 구성작가협의회장을 하면서 근무 기간이 예측가능한 계약을 해달라는 요구를 작가들과 함께 주장해 왔고 방송작가를 전문직으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노력한 부분들이 반영돼 제도와 인식이 조금씩 개선돼 왔다. 이번 해고사태는 10년 넘게 싸워 올린 직업적 성취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국장과 팀장은 (근로관계에 대한) 계약서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