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K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메리 리 변호사의 모습 ⓒ연합뉴스


“제가 메리 리구요. 기자회견은 평생 처음입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을 앞에 둔 기자회견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17년 간 변호사를 한’ 재미교포 변호사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말미에 그는 “다섯 군데 정도나 올 줄 알았는데 많이 와줘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대로 BBK 사건이 묻힐까봐 걱정이 되어서 왔다”고 말했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아직 BBK 사건이 뜨거운 감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메리 리는 미국에서 진행된 2001년 옵셔널벤쳐스 주가조작 사건 관련 민사소송을 담당한 변호사다. 그는 옵셔널벤쳐스의 후신인 옵셔널캐피탈 측의 변론을 맡았다. 기자회견에서 메리 리는 사건을 추적한지 8년이 지난 이제서야 기자회견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설명했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회사 측을 대변해야 하는 변호사의 직업윤리였다. 하지만 옵셔널이 김경준으로부터 380억원을 환수할 수 있는 판결을 받은 이후 회사 측의 상황도 변했다. 김경준 측의 140억원이 불법인출 되었고, 그의 주장대로라면 다스와 김경준 측의 불법 합의 이후 미국 국세청과 연방법무부가 옵셔널의 환수를 방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옵셔널 측에서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공개하는 것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메리 리 측은 보도자료에서 총 8가지의 미공개 사실을 지적했다. 첫째, 에리카 김이 옵셔널 범죄의 수괴라는 것, 둘째, 이명박이 김경준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 동업관계임이 강력하게 암시된다는 것, 셋째, 이명박 측이 2001년 7월 주가조작에 앞서 자금 통로 역할을 한 EBK 증권공개 청산보고를 했다는 것, 넷째, 이명박 측이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발송된 옵셔널 측의 비밀서신 및 서류를 입수했다는 의혹, 다섯째, 주미 한국대사관이 민간기업 다스의 소송에 관여했다는 것, 여섯째, 한국계 연방검사 A씨가 옵셔널에 압박했다는 것, 일곱째, 2007년 기획입국설 자체가 공작의 산물이었다는 정황이 있다는 것, 여덟째, 미국 국세청이 한국 서민들의 돈을 미국 국고로 환수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는 것 등이다.

메리 리는 이중에서 그간 언론에 한 번도 보도되지 않았던 상황은 다섯째와 여섯째 것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한국 대사관의 법무관이 자신에게 수차례나 전화했으며 그것이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메리 리는 당시 대사관의 보고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도달되었는지에 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 주장한다. 또 사건을 담당한 한국계 연방검사가 옵셔널에 다스 변호사의 수임을 지속하라는 서신을 보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그 다스 변호사와 한국계 검사는 친구 사이이며, 메리 리 앞에서 직접 통화하는 모습도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국계 연방검사가 한국 휴가를 다녀간 뒤 미국 검찰의 입장이 180도 선회했다고 메리 리는 주장했다.

그는 2002년에 이루어진 첫 번째 수사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다. 한국의 수사기록 및 법정기록을 모두 검토한 입장에서 볼 때, 이미 2002년 수사 때부터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제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명박이 아직 서울시장이었던 그 시절 처음 이루어진 수사가 잘못된 ‘맵’을 제시하면서, 이미 2007년 수사에선 다른 부분을 볼 수가 없었을 지경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래서 사건의 주범인 에리카 김과 이명박이 대주주였던 LKE뱅크를 수사의 대상으로 올리지 못했으며, 사건 이름을 ‘BBK 사건’으로 쓰는 한계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즉 BBK 사건은 이름도 첫 단추 끼우기도 잘못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많은 방송국 및 일간지 기자들이 몰려왔다.

기자들은 한국에서 이 사건을 ‘BBK 사건’이라 불리게 한 이명박과 김경준의 결별시점에 대한 반증이 있는지를 궁금해 했다. 메리 리는 BBK 대표 이사 사임을 결별로 보는 것은 영어로 표현하면 ‘미스리딩’(misleading:호도하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내지는 ‘하프트루’(half-true:일부만 진실한)라고 설명했다. 정황을 보면 BBK, LKe, EBK가 모두 사무실도 같이 쓰고 인력도 공유하며 사업 편의상 명의만 다른 회사였다고 보인다는 것이다. 주가조작에 동원된 광주은행 지회사인 광은창투(이 회사의 이름이 옵셔널벤쳐스로 바뀐다)를 인수할 때의 자금출처도 이 회사들이었고, 여러 유령회사들이 주식을 인수받자마자 LKE뱅크로 넘겼는데 이 주식의 액수가 50억원에 이르렀고 이것을 다시 무상배열했다는 설명이다. 즉 LKE의 대주주인 이명박은 이미 주가조작의 수혜를 입고 있었던 상황으로, 이 사실만으로도 책임소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또 그가 김경준과 결별했다고 말한 시점인 4월보다 훨씬 뒤인 10월에 옵셔널의 회사자금 54억이 LKE뱅크에 입금되는데, 체포영장에선 이상하게 입금된 곳이 LKE가 아니라 오리엔스라고 바뀌어져 있었다고 한다.

메리 리는 “저는 수사기관이 아니므로 2007년 당시 LKE를 조사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조사는 했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저는 당시 이명박을 조사하라고 조언한 것이 아니라 LKE를 조사해야 한다는 민원을 제출했다. 중앙지검에도 내고 청와대에도 냈는데 효력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주간동아 850호 인터뷰에서 메리 리는 민정수석실에 서신을 보냈다는 사실을 다스 측 변호사가 확인 질문하는 등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에서 자신의 행보를 파악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메리 리는 “조사라는 것이 무조건 잡겠다는 의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고, ‘오픈 마인드’(open mind)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고, ‘익스큐즈'(excuse)를 위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지 않겠느냐. 2007년 조사는 명백하게 세 번째 사례였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메리 리가 8년의 조사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BBK 사건 이야기는 곧 출판되는 책에서 자세히 다루어진다고 밝혔다.

▲ 보도자료에서 소개된 출간될 책의 목차 중 앞부분

한편 BBK 사건을 오랫동안 추적해온 한겨레 이태희 기자는 메리 리에게 “다스 합의에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 등 대한민국 권력이 개입해 있다고 보시나”라고 질문했고 메리 리는 “그럴 개연성이 높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소액주주였던 경영자유연구소 김영교 전문위원은 거듭 “메리 리는 소액주주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옵셔널의 임원들이 모두 사기꾼”이라고 옵셔널 측을 비난했다. 메리 리는 “저는 소액주주를 대변한다고 말한 적이 없고 한국 언론이 그렇게 보도를 하면 팩스를 보내 바로잡았다. 옵셔널 측은 회사횡령금 반환소송을 하고 있을 뿐 소액주주를 대변할 권리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 수십억원의 돈을 투입해 옵셔널 측을 살려내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 사건의 진실을 위해 물고 늘어지는 집단도 없었을 것이고 관련된 진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옵셔널의 나머지 문제는 자신은 모르는 바고 이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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