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MBC 수목 미니시리즈 <스포트라이트>에서 GBS 사회부 수습기자가 경찰서 기자실에서 여기자를 성추행한다. 당시 GBS는 명성일보 사주의 ‘불법용도 변경’건을 보도하기 일부 직전 상황. GBS와 명성일보는 결국 서로 기사화하지 않는 조건으로 결론을 내리고 사건을 무마한다.

<스포트라이트>의 리얼리티를 두고 논란이 많지만 한국 언론에서 위와 같은 풍경은 적지 않게 발생한다. 그게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사회부 기자가 사회 정의를 위해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쓴다는 설정은 지극히 교과서적인 설정일 뿐이다. 혹자는 그러지 않았던가. 한국에서 능력 있는 기자가 되려면 ‘정보보고’를 잘하는 기자가 돼야 한다고. 그런 말이 나오는 배경과 이유가 다 있는 법이다.

기자실 성추행 사건, 요즘 시대에 100% 세상에 알려진다

▲ MBC 수목 미니시리즈 '스포트라이트'
각설하고. <스포트라이트>에서 묘사된 것처럼 GBS와 명성일보간에 형성된 ‘암묵적 침묵’이 한국 언론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과거엔 가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엔 불가능하다. 명성일보 사주와 관련된 사안은 상당히 고급정보이기 때문에 다른 언론에 알려지지 않을 확률이 많다. 하지만 GBS 사회부 수습기자의 ‘기자실 성추행’의 경우 이건 거의 100% 세상에 알려지게 돼 있다.

경찰서 기자실을 출입하는 기자가 어디 한 둘인가. 그리고 이런 사안 같은 경우 모든 언론사에 정보보고가 되기 마련이다. 모든 언론사에 정보보고가 된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새나갈’ 확률이 많다는 얘기. 특히 요즘엔 <미디어스> <미디어오늘> 등과 같은 매체비평지도 많고 인터넷매체도 과거보다 훨씬 많아져서 이 같은 사안은 GBS와 명성일보간 ‘합의’를 보기 전에 보도될 가능성이 많다. ‘암묵적 합의’ 자체가 어렵다는 얘기다.

장면 둘.

명성일보 편집국장과 GBS 사장이 저녁 식사 자리를 함께 했다. 명성일보 사주의 ‘불법용도 변경’건을 무마시키기 위해 명성일보 쪽이 제안해 마련한 자리다. 이 자리에서 GBS 사장이 이런 얘길 한다.

“우리 회사 시스템상 국장이 결정을 하면 사장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거든요.”

멋진 말이다. 멋진 말이긴 한데 과연 한국에 이런 방송사 사장이 있을까. 현실적으로 힘들다. 물론 방송 전반에 걸친 결정권한은 보통 보도국장에게 있다. 하지만 유력 언론사 사주와 관련한 의혹보도의 경우 보도국장 선에서 마무리되진 않는다. 방송사의 경우 보도본부장이 있는데 이런 사안 같은 경우 현실적으로 최소 본부장급 그러니까 임원회의에서 보도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많다. 임원회의에는 사장도 물론 참여한다.

동료기자의 납치소식을 사진과 함께 실명으로 보도?

그러니까 “우리 회사 시스템상 국장이 결정을 하면 사장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GBS 사장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다. 일상적인 시스템 하에서는 몰라도 명성일보 사주 의혹과 같은 사안에서는 아닐 가능성이 많다.

장면 셋.

▲ MBC 수목 미니시리즈 '스포트라이트'
희대의 살인범 장진규와의 인터뷰 특종을 위해 GBS 서우진 기자가 다방종업원으로 위장했다가 다른 방송사의 기자납치 보도로 ‘위험’에 처하게 된다. 지난 22일 <스포트라이트> 마지막 장면이 이렇게 끝났는데 이것 역시 현실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일까.

방송사간 경쟁이 아무리 치열하다고 해도 한국 언론의 도덕·윤리 수준이 이 정도까지 바닥을 헤매진 않는다. 22일 방영분에서 이를 보도한 방송사는 SNS로 나오는데 (현실적으로 어느 방송사를 상징할까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물론 드라마적인 요소를 감안해야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동료기자가 신분을 위장하고 살인범과 같이 있는데 ‘미친 척하고’ 자사 뉴스에 기자의 사진을 내보내는 ‘정신 나간’ 방송사는 없다.

그리고 마지막. 한국에 서우진 같은 기자가 있을까. 오! 물론, 서우진 기자처럼 현장에서 열심히 뛰는 기자들은 많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에 나오는 GBS 서우진 기자처럼, 살인마 장진규와의 인터뷰를 위해 ‘위장잠입’을 하고 '캡'에다 보고도 하지 않고 혼자서 뛰어다니는 그런 기자가 있을까.

한국에 서우진 같은 기자가 과연 있을까

답변은 유보한다. 대신 좀 엉뚱한 질문을 하나 던진다. 한국에 종군기자가 있을까.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 한 가운데 뛰어들어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그런 기자. 물론 있다. 하지만 대부분 ‘프리랜서 언론인들’이다. 이른바 동원호 납치 사건 때도 현장에 들어간 것은 ‘일개 프리랜서’ 김영미 PD였다. 아프간이나 이라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 국방부의 ‘도움을 얻어’ 항공모함 타서 이런 저런 풍경을 전하는 주류 언론사 기자는 많아도 전쟁 한 가운데 뛰어드는 그런 기자는 없다. 왜? 위험하니까. 그래서 다시 묻는다.

한국에 서우진 같은 기자가 과연 존재할까.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