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정당정치를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대통령으로서 초당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과 무소속 대통령은 엄밀히 구별해야 한다. (...) 지금 국민들이 주문하는 시대정신은 낡은 정치를 갈아엎으라는 것이다. 무소속 대통령도 문제지만, 개혁되지 않는 정당의 대통령도 문제다.” (오늘자 한겨레 사설, <무소속 대통령도, 낡은 정당 대통령도 답 아니다>)

“그런 정당이 그들에게 부여된 정치 혁신이라는 과제를 외면하면서 무소속 대통령은 안된다고 외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 그래도 무소속 대통령론을 펼 요량이라면 국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비례대표제는 어떻게 고칠 것인지, 권력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게 옳다.” (오늘자 경향신문 사설, <문·안 후보 ‘무소속 대통령’ 논쟁할 만큼 한가한가>)

▲ 오늘자 한겨레 사설

▲ 오늘자 경향신문 사설

프레임의 충돌과 안철수의 딜레마

며칠 간 지속되는 문재인‧안철수 측의 ‘무소속 대통령’ 논쟁에 두 진보언론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비판의 내용은 대동소이하고 양측의 문제를 모두 지적하는 모양새다. 한겨레가 조국 교수의 3단계 단일화 방안을 소개하면서까지 단일화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면, 경향신문이 서민들의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는 국정운영의 비전을 촉구했다는 결론의 차이는 있다. 문재인과 안철수, 혹은 민주당과 안철수의 ‘기싸움’이 정권교체를 위해 좋지 않다는 현실판단이 두 신문을 동시에 나서게 한 것으로 보인다.

두 후보의 충돌은 일종의 프레임 대결이라고 볼 수 있다. 안철수 후보 측이 부각되려면 ‘낡은 정치 청산’이나 ‘새 정치 실현’과 같은 말에 사람들이 반응을 해야 한다. 말하자면 ‘정치개혁’ 프레임이다. 반면 문재인 후보 측이 부각되려면 ‘정권 교체는 정당의 몫’이나 ‘안정적인 국정 운영과 개혁의 실현 방향’과 같은 말이 사람들에게 어필해야 한다. 말하자면 ‘정당정치’ 프레임이다.

그런데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무소속 대통령 논란’이란 것은 그 자체로 민주당의 의도에 휘말린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안철수 후보 측은 아직 무소속으로 완주할 것이며 국정운영도 무소속 후보로 할 것이라고 밝힌 바도 없다. 다만 민주당 측의 공세가 ‘무소속 대통령은 안 된다’고 나오자 이에 대해 반응한 것 뿐이다. 그러나 이런 논쟁 자체가 민주당에게 유리하며 말을 하면 할수록 안철수를 지지하는 야권 성향 유권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볼 수 있다. 최근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다소 빠진 것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해석할 수 있다.

크게 보아 현재의 안철수 후보는, 야권에 너무 밀착해도 중도파 지지율이 빠지고 야권에 너무 대립각을 세워도 야권성향 지지율이 빠지는 딜레마 상황에 빠져 있다. 안후보로서는 강하게 반응할 게 아니라 예의 애매모호한 화법으로 빠져나가거나 오히려 “민주당도 제1당이 아니며 민주당이 국정운영을 하더라도 나와 비슷한 종류의 어려움에 빠져든다”는 식으로 역공을 취하는 쪽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양비론을 넘어선 안철수 후보 측의 문제

물론 민주당 측의 논리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소속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불가능하다’는 말의 전제는, 민주당 소속의 대통령이 탄생하지 않을 경우 새누리당 뿐 아니라 민주당 역시 국정운영에 전혀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협박에 기초해 있다. 당원과 비당원을 다르게 대하는 것이야 정당의 당연한 권리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지향이나 정책에서 큰 차이가 있는 새누리당이 아니라 그것이 흡사한 무소속 후보에 대해 그런 종류의 협박을 늘어놓는 것이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런 협박은 정당이 사교집단이나 이익집단이 아닌 이념적 결사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안철수 후보가 무소속으로 당선이 되고 국정운영을 한다 하더라도 개혁의 방안이 올바르다면 협조하겠지만, 민주당 소속이 되어야 만이 훨씬 원만한 국정운영을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상호 간의 논리야 어쨌든 다소 강하게 나온 민주당의 의도대로 이 상황이 전개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안철수 후보 측의 부실함에 있다고 하겠다. 민주당의 경우 그 당이 잘하고 있느냐 못하고 있느냐를 떠나서 ‘안철수의 입당’이라는 명확한 요구사안 및 대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안철수의 경우 ‘정치개혁’이라는 프레임으로 민주당을 압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요구사안이나 대안이 전무하다. 대체 무슨 방향으로 어떻게 민주당을 개혁하라는 것인지도 말을 하지 않으면서 ‘국민에게 물어보라’라고 말하는 게 전부다.

분명한 것은 국민들에게 정치개혁의 대안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의견은 다수이며, 상충되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별다른 대안없이 ‘좀 잘하라’고만 요구한다. 설령 국민들의 의견 중에 정치개혁에 유효한 대안이 있다 하더라도 그걸 정치세력이 파악했다면 그게 무엇인지를 다른 이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안철수 후보 측이 회피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측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치개혁의 방안이란 것은 기껏해야 총리의 권한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총리의 권한이 논의되는 것은 정치개혁의 방안이 될 수 없고 단지 단일화를 염두에 두 후보의 권력분점의 방안일 뿐이다. 현재 운위되는 책임총리제나 총리실 강화보다 훨씬 강력한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한 정치연합이었던 DJT 연대가 출범한 것이 어언 15년 전이다. 이 정도 얘기를 가지고 정치개혁의 프레임을 밀어붙이려고 한다면 앞으로도 안철수 후보는 고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 10일 카이스트 강연을 하고 나오던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파이팅 하세요"라는 한 학생의 응원에 응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낸 ‘민주당 전략’에 대한 성찰도 필요해

물론 안철수 후보가 각론이 없이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책임은 문재인 후보 측에, 아니 민주당에 있다고 하겠다. 안철수 후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 시대에 민주당이 자신의 기득권과 생존을 위해 지나치게 강조하고 부풀렸던 정치적 전략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시민사회 세력이다.

이를테면 그들은 이념이나 정치성향의 차이는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인 단일화를 명령’하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여과없이 수용했다. 대체로 단일후보가 민주당 후보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즐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은 종종 단일후보가 민주당에서 나오지 않는 상황을, 민주당 정체성에 맞는지 미심쩍은 그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 상황을 감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후보에 맞서기 위해 국정운영의 역량 문제보다는 ‘반MB정서’나 ‘반독재자 정서’와 같은 것을 전면에 배치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집권 이후의 국정운영을 걱정하기 이전에 박근혜를 이길 수 있는 것이 누구냐고 묻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이러한 직관적인 ‘반새누리 정서’에 기반한 민주당 중심의 통합을 정당화하기 위해 절차와 제도를 말하기보다 그것을 우회하는 ‘사람’과 ‘진정성’이란 요소를 강조해왔다. 안철수와 그의 ‘진심캠프’야말로 민주당이 지금까지 펼쳐왔던 그 모든 전략을 충족시키며 민주당을 배반하는 후보가 아닐까? 말하자면 민주당이 안철수 때문에 받는 피해는 자신이 던진 부메랑에 얻어맞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차제에 이런 종류의 정치적 논리와 이를 통한 지지자의 동원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성찰도 야권에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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