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전 대표 노회찬 의원은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지난해 9월 진보신당을 탈당하고 통합진보당 창당에 합류했던 노회찬 ‘새진보정당 추진회의’(새정당(추)) 공동대표가 어제 오후 1년여 만에 진보신당을 찾았을 때 그를 처음 맞이한 것은 김현우 진보신당 녹색위원장의 피켓이었다. 사실 김현우 위원장을 비롯하여 진보신당의 주요 당직자들은 노회찬 의원과 함께 오랫동안 운동을 한 사람들이다.

▲ 20일 오후 진보신당 김현우 녹색위원회 위원장의 모습 ⓒ진보신당

하지만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 진보신당의 지도자였던 인물들이 당의 결의를 따르지 않고 이탈했고, ‘통합진보당’이 그 이름으로 진보신당의 존재감을 없애고 야권연대에서도 배제하는 동안 역할을 보여준 것이 없으니 항의할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진보신당 김종철 부대표와 박은지 대변인이 만류하여 김현우 위원장은 십여 분 정도 항의한 후에 자리를 피했고 노회찬, 조준호 새정당(추) 공동대표는 진보신당의 홍세화, 안효상 공동대표와 대화를 나눴다. 진보신당 전 대표 노회찬 의원으로서도 등록취소 이후 서교동으로 이사 온 새 진보신당 당사는 처음 방문한 상황이었다.

네 사람의 대화는 예의를 차렸고 서로가 할 말을 에둘러서 했다. 진보신당은 당의 틀을 벗어나 ‘사회연대후보’란 이름의 좌파 단일후보를 민중경선을 통해 선출한다는 입장이고, 경선 흥행을 위해 홍세화 대표도 출마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그 외에 좌파진영의 여러 대선 흐름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 노회찬 의원이 멋쩍은 미소를 짓는 가운데 김현우 위원장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제지되었다. ⓒ진보신당

반면 새정당(추)는 후보를 낼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정하지 못했고 후보를 내더라도 야권연대의 틀 안에 들어가 ‘진보적 정권교체’에 협력하여 교체된 정권 안에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높다. 두 정치세력의 특징이라면 지금 있는 조직을 존속하려는 게 아니라 대선 대응 이후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당을 만들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노회찬 새정당(추) 공동대표는 오늘 아침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은 독자적 대선후보를 내는 것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새정당(추) 내부에서는 진보신당에 상당히 근접한 입장인 셈이고, 좌파후보의 논의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철수가 출마하여 정치적 중도층을 공략하는 이 시국에 진보좌파 진영의 독자후보 출마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한 진영 내에서 선거를 하지 말자는 쪽과 하자는 쪽이 둘 다 있으면 대개는 하게 된다. 그러나 선거에 참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역량은 같더라도 그 선거의 의의나 효과가 같은 것은 아니다. 지금껏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의 당선이 유력시되고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연대와 통합이 대세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좌파후보의 출마의 의의는 미약하다고 여겨졌다.

▲ 화기애매한 대화를 나누는 양측 대표단. 왼쪽에는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와 안효상 대표의 뒷모습, 오른쪽에는 새정당(추) 노회찬 대표와 조준호 대표의 모습. 중간에 있는 이는 새정당(추) 이정미 대변인. ⓒ진보신당

그러나 역설적으로 안철수가 출마선언을 하고 중도층을 장악하면서 다른 가능성이 생겨났다. 안철수 후보는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서는 정책지향적으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중간 정도에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출마선언문과 이후 행보는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의 중도 정도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그를 희구하는 이들이 주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갈등에 염증을 느낀 정치적 무당파층이란 데에 착안한 정치공학적 행보로 여겨진다.

안철수 출마 이후 부동층이 줄어들었다는 일부 언론의 기사는 안철수 후보의 행보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이러한 안철수의 움직임에 맞서 문재인 후보는 야권의 전통적 지지층을 지키기 위한 행보를 할 수밖에 없어 일종의 좌클릭 움직임을 보여주게 된다. 박근혜 후보가 인혁당과 유신 논쟁으로 완고하게 오른쪽에 갇힌 가운데 두 후보의 영역이 확장되어 전체적으로 야권의 영역이 넓어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3자구도로 계속 흘러가서는 안철수 후보나 문재인 후보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곧 두 사람의 지지율을 합치면 박근혜 후보를 넉넉하게 압도하지만 3자구도로 가서는 당선이 불투명한 그런 상황이 올 수 있다. 우리가 2002년에 이미 경험했듯 단일화는 이런 조건에서 합의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보다는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가 훨씬 명분 있는 정치행동인 것도 사실이다.

2002년 11월 당시 단일화에 성공한 직후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여론조사에서 10% 이상 앞섰다. 노무현 후보가 중도층과 진보층의 연합을 이끌어내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경우 그 왼쪽 지지층을 효율적으로 규합하여 여론조사에서 7%까지 지지를 받았다. 물론 최종결과는 노무현 신승과 권영길 3.9% 득표였지만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 후보와 좌파 후보가 함께 약진하면서 보수 후보를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 후 십 년의 세월이 지났고 새누리당 지지자의 세대적 구성을 볼 때 중도층과 진보층을 합한 파이는 예전보다도 크다. 안철수와 문재인의 지지율을 더해보면 과거 노무현 정몽준 단일화보다 더 강력한 연합이 탄생할 듯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에게는 표를 주기 어렵다는 진보층 유권자도 적지 않다. 여기에 더해, 통합진보당은 이정희 전 대표를 후보로 출마시킬 가능성이 높다. 야권연대에서 그들을 받아들여주지는 않을 테니 완주를 하여 3위를 차지하는 것이 그들의 현실적 목표가 될 것이다.

이렇게 안철수와 문재인의 약진, 이후 두 사람의 단일화, 이정희의 출마라는 상황이 충족되면 이번 대선에서 좌파후보의 도전에 약간의 맥락적 의미가 생성된다. 이정희를 지지한다는 것은 안철수와 문재인에게 포섭되지 않는 한국 정치의 급진은 미국에 반대하고 북한에 온정적이며 민주주의 절차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낭만적 민족주의여야 한다고 믿는다는 것과 같다. 그런 면에서 그들을 ‘종북’이라 지칭하는 보수언론의 시선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다음 세대를 위한 진보는 그런 이들을 극복해야 한다는, 일종의 ‘마이너리그’의 도전과제가 생긴다.

▲ 새정당(추) 노회찬 조준호 공동대표는 오늘은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을 방문했다. 물론 이에 대해선 독자후보가 목적이 아닌 야권연대 판에 들어가기 위한 세력확인이란 시선도 있을 수 있다. ⓒ연합뉴스

홍세화는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한반도에 불어닥칠 제2의 파국이 올 것이고 전망이 어두울 수 밖에 없는 실정"에서 “그 시기 야당이 수구보수정당만 남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노회찬 역시 “정권교체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거나 모든 문제가 해결되거나 해소된다고 보진 않는다”고 답한다. 대선 정국이 방금 말한 ‘2+2’ 구도로 정리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중간 과정은 달랐던 이들의 호흡이 바라보는 지점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어떤 부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홍세화는 “앞으로 진보세력이 결집한다고 했을 때 핵심”은 “물이 아래로 흐르듯 그런 자세”이며 “밑으로 흐르듯이 흐르다보면 결국 만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노회찬은 이에 대해 “만남도 그런 만남이 좋다. 물은 섞일 때 어디서 왔는지 따지지 않는다. 바다가 바다인 이유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라고 화답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민주개혁 세력이 박근혜를 극복하는 가운데 ‘마이너리그’에서 아래로 모여든 이들이 한국 정치의 미래를 위한 다른 급진의 지향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해봄직하다.

▲ 두 사람은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결국 바다에서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은 제주도 해안을 유영하는 돌고래들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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