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의 첫 공식일정인 현충원 참배에 동행한 박선숙 민주통합당 전 의원 ⓒ연합뉴스

민주통합당 박선숙 전 의원이 안철수 캠프의 선거총괄로 건너갔다. 민주당 측 인사가 안철수 측으로 넘어가는 첫 사례다. 박선숙 전 의원은 국민의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하고 참여정부에선 환경부 차관을 역임한 중량감 있는 인사다. 총선 직전 민주당 사무총장으로서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으나 총선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바 있다.

민주당 측 공식입장은 개인의 결정이므로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단일화와 공동의 대선 승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박선숙 사례를 계기로 친노에게 소외당한 당내 비주류가 이탈할 수 있다고 점치고 있고, 다른 쪽에선 박선숙이 ‘제2의 김민석’이 될 수 있다고 분개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사람들이 지금의 ‘문안 정국’을 십년 전의 ‘노정 단일화 구도’에 비추어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와 지금의 상황을 간단히 비교·대조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다.

민주당 내 경선의 비중 문제

2002년 당시 후단협을 만든 민주당 탈당파와 아예 정몽준의 국민통합21로 넘어간 김민석 의원은 국민경선의 대의를 위반했다고 비판받았다. 개혁국민정당을 만들면서 정치계에 입문한 유시민이 특히 그런 논변을 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후보는 지방선거 당시 PK 지역 3개의 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하나도 이기지 못하면 후보 재신임을 묻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후단협의 입장에서도 할 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쪽 말만 옳은 게 아니란 걸 전제로 상대적인 비교를 한다면, 당내 경선의 비중 문제로 볼 때 당시 노무현이 참여했던 경선이 지금의 문재인이 참여한 경선보다는 정당성이 확실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정몽준의 지지율 상승은 당시 월드컵 이후 잠깐 불어운 바람이었지만, 안철수의 경우 근 1년 동안 당 외곽에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고 민주당 역시 그와의 단일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후보의 경우 공동정부론을 말하는 등 안철수와의 협력을 경선과정에서 공약으로 내걸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 경선이 그 당시의 경선만큼 당원들에게 심각한 행동의 제약을 준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총선 패배를 책임지겠다고 한 박선숙 개인의 언행불일치에 대해선 충분히 비판이 가능한 부분이다.

정몽준과 안철수의 정치적 정체성의 비교

다음으로 박선숙을 김민석이라 비판하는 것이 가능하려면 지금의 안철수가 당시의 정몽준과 비슷한 정체성이라야 한다. 그런데 정몽준은 당시의 노무현 지지자 입장에서 선택할 수 없는 정치인이었던 반면에 현재의 안철수 지지층은 문재인의 지지층과 꽤 겹친다.

정몽준은 후보로 나선 이후 스스로 “노무현과도 단일화할 수도 있고, 이회창과도 단일화할 수도 있다”고 발언하면서 정체성이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였다. 또 재벌기업 소유주의 입장을 그대로 지니고 대권까지 도전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차라리 이회창이 되는게 낫지 정몽준만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반면 안철수는 서울시장 선거 전 “현 집권세력의 정치적 확장성을 반대한다”고 공언하는 등 나름대로 범야권 진영 안에 자신이 자리잡도록 느끼게 했다. 사회문제에 대한 후보의 생각을 담은 <안철수의 생각>의 경우 그 정책성향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에 위치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선에 출마하면서 안랩 이사회 의장직에서도 사퇴했고 만일 당선될 경우 지분 전부를 사회 기부할 거라 공언했으니 이 부분에서도 상황이 다르다. 문재인 지지자 중에 ‘차라리 박근혜가 되는게 낫지 안철수만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일화의 명분에 대해

그래서 문안 정국은 노정 단일화 구도에 비해 단일화의 명분을 찾기 쉽다는 것이 특징이다. 정몽준은 노무현이 아닌 이회창과 단일화를 해도 놀랄 것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노무현은 처음에는 ‘명분없는 단일화’를 반대하다 마지막 순간에 정치공학적 결단을 내려야 했다. 반면 안철수와 단일화를 할 거라고 줄곧 말해온 문재인에게는 단일화의 명분에 대한 부담은 없다. 오히려 민주당마저 구태정치의 틀에 넣어온 안철수 쪽이 명분에 대한 부담이 있다. 단일화에 대해 모종의 조건을 내걸었으니 민주당이 어느 정도 변했을 때 단일화를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우리는 흔히 과거의 정치공학적 구도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게 되지만 현재의 구도는 언제나 예전 그대로의 것일 수는 없다. 안철수 바람은 2002년의 노무현 바람과 정몽준 바람의 특징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지지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안철수가 2002년의 정몽준처럼 보일 수 있고, 안철수 지지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안철수가 노무현 바람을 지탱했던 그 열광 위에 기대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안철수가 출마선언을 한 이상 두 사람의 경쟁의 드라마는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재연일 수 없으며 새 주인공으로 다시 쓰여지는 드라마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박선숙의 행보는 비판받을 수 있으나 그것을 김민석의 것에 비유하는 것은 지나친 일로 여겨진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