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자 한국일보 1면 기사

“대통령 탄핵 이후로 기자들이 그렇게 많이 모인 건 처음 보았다.”

기자회견에 참여했던 한 본지 기자의 말이다. 안철수 후보의 출마선언이 취재진과 기자로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성황리에 끝났고 지지율 상승이 감지되는 등 ‘컨벤션 효과’도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언론이 안철수 후보를 해석하는 틀은 간단하다. 기자회견에 온 기자들은 안철수가 출마선언을 할 것인지와 단일화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지에만 관심을 쏟았다. 이제 전자가 확실해진 상황에서 남은 것은 후자인 것으로 보인다. 모든 조간신문이 1면에 안철수를 다룬 가운데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이 1면 제목에 ‘단일화’란 단어를 가져갔다. 조선일보 1면이 <대선출마 안철수 “지금 단일화 논의 부적절”>이었고, 동아일보 1면이 <“단일화, 정치혁신-국민동의 있어야 가능”>이었는데 한국일보 1면이 <“현시점서 단일화 논의 부적절”>이었고 경향신문 1면은 <안철수 “정치혁신․국민 동의 있어야 단일화”>이었는 등 정치성향과 상관없이 제목도 비슷비슷했다. 당장은 단일화할 생각이 없고 조건을 달았음이 중요한 정보로 취급되었다.

이는 당일의 기자회견 상황과도 일치한다.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 여부에 대해 기자들로부터 몇 차례나 질문을 받았고 위 제목들에 표현된 원론적인 답변을 반복했다. 이것은 다소 아쉬웠던 부분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정치공학의 측면에서 볼 때 단일화 여부는 다음 대통령이 누구인지를 예측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순수하게 정치공학의 측면으로 본다면, 오히려 이날 안철수가 단일화 여부에 대해 딱 떨어진 답을 줄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안철수 후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일단은 중도층이나 무당파층까지 안고 가면서 지지율을 확보한 후 문재인 후보를 압박하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자들은 다소 답이 나오기 힘든 질문에 대해 중복적으로 질문하면서 괜한 힘을 뺀 셈이다.

한편 정치원칙의 측면에서 볼 때 안철수가 끝까지 무정파 후보로 남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은 의회민주주의의 측면에서 볼 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오늘자 조선일보 사설이 가장 정연하게 지적을 하였다.

▲ 오늘자 조선일보 사설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은 자기 당 정강(政綱) 정책을 실천할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하지만 자기들이 배출한 대통령에 대한 책임도 진다. 헌법상으론 설령 대통령이 국정을 잘못 운영하더라도 탄핵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킬 수 없다. 그래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과 실적에 대한 찬반 의사를 지방선거·총선 등 각종 선거에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에 대한 중간 평가로 표시한다. 이것이 정당정치이고 책임정치다. 정당 없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국민이 대통령의 정치 과정에 대해 평가할 통로를 봉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는 권한 소재와 책임 소재가 일치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통령과 정당이 따로 놀고 국민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혼돈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이 던졌어야 할 다른 질문은 “만일 무정파 후보로 당선될 경우 국정운영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냐. 정계개편을 해서 새 여당을 만들 생각이냐, 아니면 대연정을 제안할 생각이냐? 그도 아니면 다른 복안이 있느냐?”와 같은 것이었을 수가 있다. 물론 안철수 후보는 이에 대해서도 뾰족한 답을 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단일화 여부에 대해 거듭 질문하는 것보다는 이쪽 질문이 그가 정당과 정치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좀 더 구체적인 답변으로 들을 수 있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는 출마선언문에서 정당정치를 무시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기성정치를 구태정치로 규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아직 오리무중에 있는 그의 행보에 대해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진보언론도 우려의 시선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향후 전개될 ‘샅바 싸움’에서 많은 언론이 정치원칙을 말하기 보다 경마식 중계보도를 할 경우 안철수가 말하고 국민들이 염원한다는 그 두루뭉술한 정치개혁의 방향이 실종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전례를 통해 보건대 후단협이 나올 수도 있고 당이 쪼개질 수도 있고 페이퍼당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언론은 정치공학 뿐 아니라 정치원칙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는 원칙을 상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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