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관심이 떠나갔어도 정치적 시민권을 얻기 위한 분투는 눈물겹다. 통합진보당과 거기에서 갈라서 나온 새진보정당추진회의 얘기다. 양측은 모두 야권연대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말한다.

일단 민주당 측의 의사는 확실하다. 민주당은 이석기와 김재연이 제명되거나 사퇴하지 않는다면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가 어렵다고 말해왔다. 구당권파(경기동부연합)와 신당권파(인천연합+참여계+통합연대)의 싸움에선 전자와의 야권연대는 불가능하지만 후자와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해왔다. 새진보정당추진회의의 노회찬 조준호 공동대표가 이해찬 민주당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다.

통합진보당 잔류파의 상황을 먼저 봤을 때, 상식적인 시각으론 경기동부연합이 이석기와 김재연의 제명 혹은 사퇴를 거부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민주당 측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그들이 여전히 ‘진보적 정권교체’에 힘을 보태겠다 말하고 대선후보까지 낼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가 난망하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을 탈당했거나 진보신당에 있는 복수의 관계자들은 그들의 행동이 그들 문화의 관성에서 나온 것이라 지적한다. A 관계자는 “그들은 웃는 얼굴로 투쟁현장을 돌아다니면 최소한의 지지층은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야권 중에서 통합진보당이 두렵기 때문에 검찰이 탄압하고 있다거나,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판 뒤에 미국이 있다거나 하는 얘기들 역시 모두 진심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B 관계자는 “굳이 정치공학의 시선으로 말한다면, 이정희를 내세워 지지율이 2~3%라도 되었을 때, 박빙의 선거판에선 민주당이 손을 내밀 수 있다는 식의 ‘플랜’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진단했다. 물론 민주당 측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면 “종북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현 통합진보당 측과의 제휴는 전혀 현실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하는 상황이다.

▲ 지난 3일 중앙위 폭력사태에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이정희의 모습.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녀는 대선 출마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연합뉴스

여러 번 지적되었듯 현재의 의원수나 정당규모가 경기동부연합이 지금까지 일구어 낸 적이 없는 성과란 사실도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한 관계자는 “그들 입장에선 사실상 사상 최대의 성공을 거둔 상황이다. 더 배고픈 시절에도 잘 견뎌왔다 여길 것이고, 지금의 성취를 다소 잃어버린다 해도 감내할 수 있다고 여길 것”이라 예상했다. 다른 관계자는 “야권연대를 하면 좋겠지만 만일 안 될 경우 독자 후보로 완주해도 충분하다 여길 수 있다. 이 경우 진보신당이나 기타 세력들이 야권연대에 참여하지 않는 독자적 좌파노선 후보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경우, 경기동부가 야권연대 바깥의 진보후보라는 포지션을 점유하게 되는 것”이라 우려했다. 단일 정파가 되었기 때문에 정파연합당이었던 과거 민주노동당이나 이전의 통합진보당 시절과는 달리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유동적인 방침을 내리는 게 가능하다는 것도 이들의 장점이다.

반면 새진보정당추진회의 측은 야권연대 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높지만 통합진보당 측처럼 정치현실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지는 않기 때문에 훨씬 더 절박함을 느끼는 상황이다. 새진보정당추진회의는 노회찬 의원과 조준호 전 대표를 공동대표로 선출한 상황이다. 한 관계자는 “민주노총 출신 조준호를 전면 배치하고 참여계 측 인사들을 뒤로 숨기면서 노동중심성을 강화한다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노동계의 지지를 안고 가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그는 “심상정의 경우 야권연대 단일화를 위한 형식적 대선후보로 나설 수 있기 때문에 대표로는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들의 경우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원장의 단일화가 이슈가 되는 시점에서 나서지 않으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정리’된 다음엔 야권연대의 문이 닫힐지도 모른다는 절박함도 있다. 이들은 초기에 지지율이 높았을 때는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 제안에 꿈쩍도 하지 않는 상황을 경험하였다. 시민사회 세력 일부를 흡수하면서 한때 지지율이 올랐던 민주통합당은 임종석 사무총장 논란 및 공천 논란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지고 나서야 통합진보당 측과의 협상에 임했던 전력이 있다.

따라서 만일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이후 단일후보의 지지율이 박근혜를 압도한다면 통합진보당은 물론 새진보정당추진회의 측도 찬밥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인 대선 일정으로도 단일화는 11월이나 되어야 완료될 것이기에, 야권연대에 의미있게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전에 협상을 완료해야 한다. ‘10월까지는 협상을 해야 한다’는 이해찬 대표의 조언 역시 그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

▲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새진보정치추진회의의 노회찬과 조준호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10월까지는 야권이 정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새진보정당추진회의 측이 부쩍 안철수 원장을 언급하는 상황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 그들이 단일화 과정에 무언가 역할을 해야 한다면 정당이 확실한 문재인을 말하는 것보다는 안철수의 지지세력 중 하나로 야권연대에 포섭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서기호 의원이 “안철수 원장이 함께 하고 싶은 정당을 만들겠다”고 말한 것은 이런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이는 정치공학적으로는 명료한 상황이지만, 진보정당의 정체성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떨떠름한 부분이 있다. 한 진보정당의 관계자는 “어쩌다가 진보정당 인사들이 안철수의 뒷다리를 잡고 늘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새진보정당추진회 측 입장으로는 최소한의 정치적 정당성을 위해 안철수의 정치적·정책적 행보가 정태인 새사연 원장의 프레시안 인터뷰 예측대로 민주통합당보다는 왼쪽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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