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이 오늘자 ‘김진의 시시각각’란에 <박정희 독재 어떻게 볼 것인가>란 칼럼을 게재했다. 박정희 문제에 대한 보수논객의 글을 논박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 시선에 동의하는 이들에게는 비판이 효용이 없을 것이고, 그 시선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겐 비판이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진 논설위원의 글은 보수논객들도 인혁당 문제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박근혜에 당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글에서 박정희 시대를 정당화하는 보수진영의 상이한 전략들을 읽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 오늘자 중앙일보 김진 칼럼

“유일한 살인이 75년 인혁당재건위 8명을 사형한 것이다. 당시는 월남 패망 20여 일 전이었다. 정권이 비정상적 심리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어쨌든 이는 정권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이다. 정보부는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하고, 검찰은 협박했으며,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권은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집행만 미루었다면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천상(天上)에서 인혁당 8인에게 사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막걸리를 마시며 조국을 얘기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유족을 껴안는 일은 이승의 딸에게 남겨져 있다.“

제 머릿속에서 살인가해자와 살인피해자를 천상에서 화해시키는 엽기적인 상상력에 경악하는 일은 뒤로 미루자.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김진조차도 인혁당 사형 사건을 정당화하거나 그 판단을 유보해서 역사에 맡기자고 말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진영 내에서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는 대략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박근혜 버전. 박정희의 모든 행동은 선의에서 비롯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불의의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생각함. 아마도 홍사덕과 많은 TK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을 것임.

둘째, 김진 버전. 어지간한 것은 다 정당화하지만 인혁당 사건 만큼은 ‘사법 살인’으로 인지함.

셋째, 조선일보 버전. 5.16의 긍정성은 인정하되 유신은 ‘삽질’이었음을 밝히자는 일종의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

▲ 유신시절 육군 사관학교 임관식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 후보의 모습 ⓒ연합뉴스

문제는 장삼이사로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과 정치적 논쟁에서 자기 논리를 구성하는 것은 좀 다르다는 데에 있다. 박정희 시대를 긍정하는 보수적 유권자 중에 김진이나 조선일보처럼 생각하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도 모를 것이고, 5.16은 긍정하되 유신은 무리한 일이었다는 식의 정치적 타협에도 관심이 없다. 그들 대부분은 아마도 박근혜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이 된 입장에선 박근혜처럼 얘기를 해서야 계속해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박근혜가 그렇게 말을 하면 할수록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된다. 두 달쯤 전 작가 엄기호는 트위터에서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라서 안 된다는 말은 우리 아버지 세대에겐 더욱 박근혜를 찍어야 하는 이유가 되고 내 조카한테는 찍을지 말지를 정하는 데 눈곱만큼도 참조사항이 못 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에 아버지 세대와 조카 세대 모두 “인혁당이 뭐야?”라고 묻고 있다고 전한다. 그래서 설명해주면 “에이, 그건 아니다~”라는 반응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반응이라도 양 세대가 박근혜의 행보에 문제를 느낀 이유는 다른데 있을 것이다. 먼저 조카 세대는, 지나간 역사논쟁인 줄 알았던 것이 현재 박근혜의 통치철학과 맞닿아 있을 가능성을 본능적으로 보았을 것이고, ‘지나간 잘못’을 흔쾌히 인정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쿨하지 못하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아버지 세대의 박근혜에 대한 실망은 동북아시아 남성 특유의 <삼국지연의>와 <대망> 류의 역사소설에 기반한 정치의식에서 나온 것일 게다. 그들은 아마도 ‘천하를 가지겠다는 자가 자그만 부분도 물러서지 못하는 완고함’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믿을 것이고, 그가 ‘아버지를 위한다고 저리 하지만 결과적으론 아버지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불효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리하여 ‘인혁당 정국’이 박근혜의 핵심지지층을 흔들 수는 없지만, 그 외 중도층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선 엄연히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바다. 그는 분명히 ‘박근혜 대통령’의 가능성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

▲ 박정희의 농촌 지도 사진을 들춰보며 흐뭇해 하는 박근혜 후보 ⓒ연합뉴스

보수논객들이 불안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선일보 사설이든,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진의 글이든, 그들이 박정희 시대의 공과를 쪼개서 제시하는 이유는 박정희를 싫어하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사실상 박근혜 한 사람만을 쳐다보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만 접어주면 충분히 국민정서를 업어 대처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기나 말기나 박근혜는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사건에 대한 평가는 거부한 채 유족들만 만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박근혜의 이러한 행보는 매우 고무적이다. 공교육에서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이 나라에서, 모든 유권자에게 수십 년 전 역사를 다시 들춰볼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트렌드에 따라 무언가를 집단적으로 배우는데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다. ‘박정희의 딸’이 대선에 나와 ‘타협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온 국민에게 배움을 요구하는 것은, 그가 그의 딸로 이 세상에 나와 한 일 중에서 가장 공익에 부합하는 일일 것이다.

김진의 논리에서도 조선일보의 논리에서도 우리는 ‘과거를 말하지 말자’는 독재계승 세력의 전략 탓에 박정희 시대의 공과를 살피는 논변이 얼마나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알 수 있다. 조선일보가 유신을 거부하는 논리는 그게 비극적 결과로 마감되었다는 결과론일 뿐이고, 김진이나 홍사덕이 유신을 옹호하는 논리는 상황론일 뿐이다. 그러나 결과에 대한 평가는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정부가 내세운 상황론은 과연 실제의 사태에 부합했는지가 검증되어야 한다.

김진처럼 수험생의 금욕과 개발독재를 비교하려면, 적어도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 문제를 포함해야 한다. 가령 한일협정으로 대일 청구권 자금을 당겨와 생산시설에 투자한 정책행위는 ‘수험생의 금욕’과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고 긍정적인 평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구체적인 평가를 거부하고 개발독재를 통으로 긍정하는 행위는, 비유하자면 폭력가장이 수험생의 생활을 잘 통제했다는 이유로 아내도 때리고 수험생도 때리고 갓난애기도 때린 것을 통으로 정당화하려 드는 것과 흡사하다.

비교할 만한 제3세계 독재 국가들에 비해서 한국의 개발 독재가 사람을 '덜 죽였다'라는 것은 (김진은 '무혈독재'라 표현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이 기술한대로 '상대적'인 얘기일 뿐이다) 한홍구와 같은 진보적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바다. 대신 그들은 한국 사회가 6.25 전쟁 전후로 이미 '좌익'들을 척결한 '반공의 멸균실'이었기에 반체제인사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렇게 본다면 독재체제가 죽일만한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한국의 상황은, "금세 공산화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독재세력의 정당화의 서사에 대한 의문을 표시할 수 있는 부분이다.

유신에 대한 얘기 역시 마찬가지다. 유신을 긍정하는 김진은 물론 유신을 비판하는 조선일보조차 당시 박정희 정권 측에서 내세운 상황론을 검증하려 들지 않는다. 1968년의 박정희가 체제에 위협을 느꼈다고 말한다면 차라리 이해가 가는 바다. 하지만 닉슨이 중국과 소련을 방문하던 그 ‘데탕트’의 시기에, 화해협력 조류로 가는 것을 거부하고. 북쪽의 김일성과 서로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날짜까지 협의해서 발효한 유신체제가 대체 왜 ‘공산화의 위협을 겁내’ 이루어진 것인지를 박정희 옹호론자들은 설명해야 한다.

보수세력은 지금까지는 이런 종류의 얘기들을 ‘과거는 덮자’는 말로 무시할 수가 있었다. 평균적으로 볼 때 박정희를 옹호하는 이들은 연령으로는 박정희 시대를 겪었으면서도, 지식의 측면에선 박정희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김진은 그 무지를 전제해야만 통할 수 있는 글을 박근혜를 위해서 쓰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박근혜 덕분에, 앞으로는 이보단 맥락에 기반한 논의가 가능해질 지도 모른다. ‘박정희의 딸의 대선출마’의 역설이다.

▲ 지난 8월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유신잔재 청산과 역사정의를 위한 민주행동(가칭)' 출범 기자회견에 참가한 사월혁명회와 민청학련운동계승사업회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행동은 10월 17~27일을 집중행동기간으로 정하고 박정희정권 피해자 추모제, 유신 다큐멘타리 상영 등 시민 참여형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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