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자놀이> 책이 출판되면서 열린 지난 8월 6일 기자간담회의 모습 ⓒ연합뉴스

“내 인생에서 공지영에 대해 가장 오래도록 생각한 시간이었다. 근데 막상 쓸 때는 그 생각을 못 했는데 시험이 끝나갈 무렵에야 출제의도가 <의자놀이>와 관련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한 언론인 지망생 커뮤니티에 올라온 16일 일요일에 치러진 동아일보 수습공채 기자직 필기시험에 대한 누군가의 후기다. 기자직 논술 시험 논제가 “나의 공지영論(공지영 小考)”으로 나온 것을 보고 많은 지망생들이 당황했다고 한다. 동아일보는 14일자 34면 ‘횡설수설’란에 송평인 논설위원이 쓴 <‘의자놀이’의 거짓말>이란 글을 게재한 바 있다. (관련 기사)

응시자들을 접촉해서 이 논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한 응시자는, “대통령이 아닌 이상에야 개인이 시험문제에 나오는 일은 드물다. 그리고 논술문제가 문장형이 아니라서 공지영에 대한 어떤 생각을 써야 할지 출제의도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맥락이 없었던 문제였다. 다들 당황한 것 같았다. 1교시만 하고 나간 사람도 있더라”라고 설명했다.

다른 응시자는, “정치성향을 평가하는 문제가 나오는 것은 일반적이다. 조선일보의 경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엔 대놓고 객관식 지문에 김대중을 엄청나게 비판한 자기 신문 사설을 싣기도 했다. 한겨레의 경우 작년에 포이동 재건마을 문제를 논하라고 한 경우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데 이 문제의 경우 뭘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공지영이 쌍용차 노동자를 다룬 <의자놀이>를 저술했단 것도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비판이 의도라고는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의자놀이> 인용 관련 스캔들도 내용을 알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글에 하종강이나 진중권의 이름이 나오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뽑아주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근 언론사들의 논술 시험 논제 동향을 보면, KBS는 학교폭력 문제, SBS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물었고, 조선일보는 성장과 분배 문제를 물었으며, 경향신문은 SNS와 재벌개혁 등이 문제로 나왔다고 한다. 한겨레의 경우 다소 특이하게 ‘한국 사회의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해 논하라’는 문제도 나왔다. 신문사별로 요구하는 정치성향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대개 논술의 경우 현안에 관련된 것들이 많이 나와서 오히려 대비하기 쉽다는 것이 응시자들의 설명이다. 작문 시험이 언론사마다 특유의 스타일이 있어서 예측하기 어려운 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런 점에서 SNS에서의 공지영의 활동이나 쌍용자동차 문제와 <의자놀이> 등을 모르는 이들에겐 맥락이 없는 동아일보의 논술 논제는 확실히 ‘튀는’ 것이었다.

물론 공지영이 쌍용차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의자놀이>라는 르포르타주를 낸 상황은 우리 사회가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갑론을박할 만큼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다. 문제는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이 지금까지 <의자놀이>에 대해 침묵해 왔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만 읽고 산 독자라면 지금까지 2009년에 파업했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희망퇴직자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없었고, 한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그들을 인터뷰하고 <의자놀이>라는 책을 냈다는 사실도 알 수 없었다. 며칠 전 ‘횡설수설’란에 실린 그 글이 첫 반응이었다. 그것도 국회에서 진행되는 ‘쌍용차 청문회’가 아니었다면 결코 나오지 않았을 글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지면에서 철저하게 ‘노동’을 지웠다. 그러면서 그들은 응시생들에게 자신들이 배제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비판하라고 한다.

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보수 담론이 어떻게 왜곡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코미디라 말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 논의를 전적으로 회피하다 보니,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이들을 선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들조차 헷갈리는 상황이다. 동아일보는 <의자놀이>의 일부분을 인용해 이 문제에 대한 응시생들의 견해를 물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렇게 했다면 응시생들은 동아일보의 출제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했을 것이므로, 그 출제의도는 달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저 ‘공지영’만 논제로 내거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동아일보의 출제의도를 파악한 극소수가 진보성향일 가능성이 높을 거라는 것 외에는 그들에게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동아일보는 그 사실을 알았을까?

동아일보는 최근 채널A로 넘어간 기자들 때문에 수습기자들을 많이 선발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두 번이나 공채를 했는데 올해도 공채를 실시한 상황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채용을 많이 하는 건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을 설레게 하는 일이나, 자신들의 지면에선 볼 수도 없는 문제를 내는 것은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을 배제하여 ‘가십’으로 만든 그들의 보도행태겠지만 말이다.

▲ 지난 7월 21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금속노조원들 및 대학생들이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으로 행진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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