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65주년 전국농촌지도자대회에 참석하기 전 임원간담회를 갖고 차를 마시고 있다.ⓒ연합뉴스

박근혜 후보 측의 ‘대통합’ 행보가 독립야구단 9일 고양 원더스 방문을 거쳐 10일 인디음악인들과의 만남을 준비하다가 무산되었다. 캠프 관계자가 “인디밴드는 그야말로 ‘음악계의 2군’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을 하여 인디음악인들이 반발하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캠프의 발언은 승부를 통해 객관적인 실력 측정이 가능한 스포츠의 영역과 다양한 취향과 예술적 평가가 공존하는 음악 영역의 특징을 무시해 버리는 ‘무식한’ 발언이었다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발언이 전적인 ‘무지’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을 지언정, 그 뒤에 숨어 있는 함의 내지 편견은 단순하지 않다. 어쩌면 그것은 한국 사회 주류에게 ‘인디’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를 ‘솔직하게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미디어스는 몇몇 인디가수와 독립영화 감독에게 박근혜 캠프의 ‘실수’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2010년 1집 앨범 [서울 불바다]를 낸 인디밴드 ‘밤섬해적단’의 드럼과 코러스를 맡고 있는 권용만씨는 “2군 발언에 드러난 인식은 박근혜 캠프에만 있는 게 아니라 ‘탑밴드’ 같은 프로그램에도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인디를 ‘어둠’ 속에서 끌어내려고 하는 ‘좋은 의도’, 배고프고 힘드니까 온정의 손길을 주자는 것, 이것이 ‘패자부활전’ 발언 뒤에 깔려 있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의 범위는 박근혜 캠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그는 “물론 인디밴드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도 메이저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빛에서 살고 싶은 생각 없이 내 맘대로 하겠다는 이들도 있다”면서, “후자의 사람들에겐 의도 좋은 손길들이 방해만 된다. 문화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인디에 시설이나 돈을 지원하면 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만 받는 상황이니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고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최근 [백년]이란 첫 정규앨범을 낸 인디가수 ‘회기동 단편선’(본명 박종윤)은 좀 더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인디밴드에 대한 개념정의가, 원래는 국가나 자본으로부터의 지원에서 독립했다는 함의가 있는데, 실제로는 기획사나 레이블을 끼고 있기도 하다”면서, “원래는 질적인 정의가 되어야 할 인디가 어떤 의미에선 인기나 지원의 양으로 구별되는 현실이 실제로 있다는 점에서 그 표현이 착잡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확실히 2군이란 발언은 거칠고 멍청했다. 스포츠는 대체로 실력과 돈이 일치하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다는 걸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인디씬이 ‘카우치 사건’ 이후로 방송에 나갈 기회를 잃게 되면서 실제로 ‘1군’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이 올라가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인디씬을 2군으로 불러선 안 되겠지만 그런 사람들을 끌어내주는 기획이나 관심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카스텐 같은 경우도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라며 인디씬의 단순하지 않은 사정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2군 발언을 듣고 어떤 사람이 화가 났을까. 차라리 나같은 사람은 아니다. 부른다고 올라갈 생각도 없고, 실력에서도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력은 충분히 되는데 자본을 못 끌어오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화가 났을 것 같다”고 추측했다.

독립영화 감독 윤성호의 경우도 비슷한 사정을 전했다. 그는 “말을 듣고서 씁쓸했지 유감은 없었다”라면서 “시장에서도 인디음악이나 독립영화에 대해 리그는 존중하지만, 메인스트림 진입하기 위해 전 단계에 있는 리그라는 전제를 가지고 보고 있다. 이런 마인드가 대세이고, 다른 정당에 있는 분들도 크게 다르게 보지 않을 거다. 그 생각을 센스 없게 표현했을 뿐이다. 악의도 없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중이나 저널에서도 요즘은 인디를 존중을 하는 편인데, 시장의 시선과 비슷한 구석도 있다. 인디 생태계가 폭넓게 존속해야 시장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대중문화의 새로운 인재를 발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거다. 물론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리고 이건 실제로 인디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와는 상관이 없다. 인디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그들을 받아들이는 산업적 현실이 다른 셈이다”고 해석했다.

윤성호 감독은 “나도 ‘윤감독, 이제는 입봉 하셔야지?’란 말을 종종 듣는다. 영화를 잘 모르는 이들이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고 제작하는 분들이 그런 말도 한다. 그럼 내가 ‘아 제가 장편도 만들고 했는데...’라고 말하지만 ‘에이 그런 거 말고...’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 전제에 동의는 못하지만 어떤 애정에서 나온 말인지도 알기 때문에 선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경험담을 전했다.

박근혜 캠프의 2군 발언이 스포츠와 문화를 구별하지 못한 무지의 소산인 건 분명하지만, 한국 사회의 척박한 문화적 생태계가 은연 중에 사회 구성원들에게 인디음악을 2군으로 보게 하는 현실도 분명히 있다는 지적이었다. 물론 ‘실력’과 ‘소득’과 ‘지원’이 대체로 일치하는 스포츠와는 달리 문화영역에선 갖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그러나 크지 않은 파이에서 대기업 기획사, 제작․배급사 중심으로 편재되는 이 땅의 문화산업에서는 인디가 2군이라서가 아니라 ‘메이저’가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가기 때문에 지원의 대상이 되는 딜레마적인 상황이 있다. 박근혜 캠프 발언의 천박함에 분개한 이후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회 문제는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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