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옆 대나무숲' 계정 프로필

트위터에서 엊그제부터 “출판사 옆 대나무 숲 @bamboo97889”이란 계정이 생겨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계정은 ‘출판사 X'라는 계정의 ‘계폭’을 애도하면서 생겨났다. '출판사 X' 계정은 자신이 다니는 출판사의 ‘사장님’의 여러 가지 행동을 비판하는 계정이었다. 그는 자신이 일하는 출판사 이름만은 밝히지 않았지만 신원이 밝혀지는 상황이 두려웠는지 “사장님이 소집하고 있다”라는 말을 끝으로 계정을 폭파했다. ‘대나무 숲’은 그 직후에 생겨났다.

▲ '출판사 옆 대나무숲' 계정의 첫 트윗이다.

이렇게 시작된 대나무 숲 계정은 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500개가 넘는 트윗이 올라오고 2천 명이 넘는 팔로워가 생기는 등 유명인 계정 못지않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500개의 트윗이 전부가 아니었고 비번을 공유한 계정의 특성상 중간에 지워진 트윗들도 많다고 한다. 트윗들을 보면 중간중간에 공유 비번으로 들어와 트윗을 지우는 ‘반달질’을 규탄하는 것들도 있다.

‘출판사 X' 계정이 주로 '사장님’에 대한 뒷담화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이 계정에서는 근무환경, 저자, 번역자, 동료들에 이르기까지 출판환경 전반에 대한 폭넓은 불평 및 고발이 나온다. 여러 가지로 민감한 얘기들일 수 있다. 그래서 ‘반달질’ 및 ‘계폭’을 피하기 위해 익명 트위터앱 ‘해우소’를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출판계에는 원래 ‘북에디터’라는 익명 게시판이 있다. 편집자들은 대나무 숲 계정이 북에디터보다 훨씬 더 활성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주로 출판계 내부 사람들이 보는 북에디터와는 달리 업계 바깥의 사람들에게도 얘기가 전달이 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대나무 숲이다.

한 편집자는, “원래 편집자들이 트위터에 매우 익숙하다. 출판사 계정을 담당하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다 해도 트렌드를 파악하거나 필자와 소통하기 위해 트위터를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텍스트에 익숙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트위터에 대한 진입장벽도 낮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쉽게 대나무 숲 계정에 합류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나무 숲의 트윗 중 하나는 “회사 트위터 관리할 때는 트위터가 이렇게 재미난 건지 몰랐다.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해야”라고 말하고 있다.

대나무 숲에 대한 편집자들의 평가는 다양했다. 어떤 이는 “상황 자체는 북에디터를 통해서도 알고 있었던 것이고,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프고 암울해서 일단은 안 보고 있다”고 말했고, 다른 이는 “이것이 출판업의 문제만이 아니고 중소기업 일반의 문제일 텐데 어느 영역에나 있는 ‘또라이 사장’들의 얘기를 올려두는 게 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는 “문제 상황에 대한 공유는 그 자체로 필요한데, 여기서 그치지 말고 업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도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분회’ 공식계정의 경우 이미 대나무 숲 계정에게 말을 건 상황이다.

▲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분회 공식계정이 대나무숲 계정에 보낸 멘션

그러나 트위터라는 매체를 활용하는 또 하나의 조류가 생겨났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트위플들은 자신이 종사하는 직종에 대해서도 이런 종류의 ‘대나무숲’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 벌써 이공계 연구실 계정 @Bambooforlab 이 만들어지는 등, 사회 이곳저곳을 반영하는 대나무숲은 우후죽순으로 늘어날 기세다.

다음은 ‘출판사 옆 대나무숲’ 계정에 올라온 것들 중 너무 구체적이지 않으면서 업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들을 기자가 임의로 꼽아본 것들이다.


- 이 계정이 사장 뒷담화를 하고 있지만, 사실 그 사장들 많은 수가 출판사에서 편집장 하고 주간 하다가 밀려나듯 회사 그만두고 배워먹은 도둑질처럼 회사 차려서 경영이 뭔지도 모른 채 사장 노릇 하고 있다는 게 문제죠.

- 연월차, 상여금도 없는 곳. 대선 관련 책은 내면서도 선거날 정상근무하는 곳. 아파도 조퇴 없고 쓰러지든 말든 관심 없음. 회식 땐 변태 사장을 위해 직원들에게 접대시키는 구린 출판사도 있음..

- 전작 선인세도 안내주면서 자꾸 다음 계약 하라고 등 떠미니 미치겠다. 어차피 독촉 총알받이는 내가 하는데.

- 인세지급순서 : 사장과 친한 저자(는 판매와 관계없이 선인세도 가능) > (중요한) 국내저자 > 전화 오는 저자 > 잘 팔리는 해외저자 > 나머지는 그때그때 달라요

- 사장이 잡지를 새로 창간한다고 했을 때 전 직원이 말렸는데요. 남의 말만 듣고 창간하고 그 잡지는 쫄딱 망했어요. 그리곤 돈 없다고 월급이 밀리네요.

- 어느날 갑자기 잘 쓰고 있던 외주들을 전부 쓰지 말란다. 비싸다고 더 싼값으로 찾으란다. 결국 초짜에 가까운 사람들을 어떻게든 수소문해서 데리고 왔다. 실력이 없으니 우리가 트레이닝을 시켜주고 있다. 그래도 일정을 맞추란다. 어쩌라고.

- 교수님들아, 제발 교재로 채택하려 한다고 협박하면서 공짜로 책 좀 보내달라고 하지 좀 마셔요. 너님 공짜로 주려고 내가 야근에 시달리는 게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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