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와 우파의 구별이 역사적으로는 공간의 메타포로서 시작되었지만 사실 시간적 비유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했던 전통적 좌파는 어떻게 하면 역사적 흐름을 빨리 진행시켜 바람직한 사회를 실현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혁명은 역사적 과정의 속도를 높이는 가속 페달과 같은 것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좌파는 본래 사회개혁을 추진하는 혁신주의자이고 진보주의자였습니다. 이에 반해 전통 우파는 변화보다는 전통을 중시하고 기존의 가치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전통주의자이고 보수주의자였습니다.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자본주의가 끊임없는 자기혁신과 수정을 통해 오래 지속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자기모순에 의해 금방 붕괴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본주의는 세계를 가공할 속도로 바꿔놓았습니다. (...) 자본주의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가공할 속도로 세계를 변화시키자, 좌우의 정치지형도는 역전되었습니다. 우파는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고, 좌파는 반대로 이러한 운동을 일단 정지시켜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할 지점을 찾으려 합니다.
- 이진우, <중간에 서야 좌우가 보인다 - 대한민국 정치이념지형도>, 책세상(2012), p170

▲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낙향 기자회견'을 한 후 큰 절을 하는 강기갑 통합진보당 대표의 모습. 통합진보당의 씁쓸한 퇴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이다. ⓒ연합뉴스

‘미래’를 고수하던 좌파가 ‘과거’를 수호하게 된 역전 현상은, 그러나 한국 사회에선 훨씬 더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왜냐하면 이 나라엔 아직 자유주의가 충분하지 않아 국가권력에 의해 침해받는 개인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고, 복지국가는 ‘우리에겐 오지 않은 선진국들의 과거’였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문맥에서 ‘과거’는 개발연대의 박정희식 발전국가였고 ‘미래’는 IMF 이후의 신자유주의 체제였다. 그 문맥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지지자들은 마치 전통적 좌파처럼 합리적 자본주의를 가속화시키는 것이 역사의 진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장하준을 위시로 한 다른 이들은, 한국의 과거인 발전국가를 고수해야 ‘국가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발전국가는 복지국가와 같은 과거가 아니다. 우리는 발전국가 모델에서 적어도 개인에 대한 통제는 줄이고, 시장에 대한 통제는 유지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강화하자는 수정안을 제출해야 복지국가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필요한 ‘과거’와 ‘미래’가 착종되어 나타난다. 한미 FTA가 진보라 믿는 이들부터 경제성장을 거부하는 이들이 진보라고 믿는 이들까지 ‘진보’에 대한 우후죽순의 정의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일 게다.

정태인 새사연 원장은 ‘진보의 시즌 1’이 끝났고 ‘진보의 시즌 2’가 필요한 시점이라 진단한다. 그의 견해를 빌리지 않더라도 지금이 기존 진보가 소멸하는 시국이란 인식 혹은 위기의식은 팽배하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봉합이 아닌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진보정당 운동이 두 번째 분당 국면을 맞이하면서, 진보세력이 한국 사회에서 간신히 획득한 정치적 시민권은 사실상 조소거리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이제 안철수와 문재인의 단일화이며 안철수와 박근혜의 샅바싸움이지, 통합진보당의 분당이나 진보신당의 재창당이나 그 외 좌파 세력의 결집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통합진보당 내 두 세력을 포함한 제 진보세력의 무능과 독선을 비판하는 일은 이제 그것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고 하겠다. 기존 운동의 자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도박이 실패하여 가산을 탕진했다면, 이제부터는 그 다음에 뭐가 남아 있느냐를 물어보는 쪽이 차라리 유익할 것이다.

▲ 강기갑이 사퇴 기자회견을 하던 그 시각 심상정 의원은 쌍용차 대정부 질의를 하고 있었다(왼쪽).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이 본회의 도중 틀어진 쌍용차 영상을 보고 눈물짓고 있다(오른쪽). 이는 진보정당이 해야 하는 일, '통합진보당 사태'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의 연극이 끝났더라도 앞서의 경험의 성과들을 계승하여 다음의 길을 나아가야 할 것이다. ⓒ연합뉴스

그 물음은 크게, 내용의 문제, 형식의 문제, 그리고 세대적 재생산의 문제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내용적인 측면에선 크게 보아 복지국가 담론으로 수렴되는 부류와 그것보다 더 왼쪽의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는 부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보다 더 왼쪽의 대안이란 것은 대체 무엇이며 현재의 실천에서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답변이 나온다면 가령 두 부류의 경제학자들이 나누어 싸우고 있는 재벌개혁 논쟁에 대해서도 ‘좌파적 평결 혹은 개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형식의 문제에선 민주당으로의 합류, 민주당과 선거연합 및 연립정부를 추구하는 독자적 진보정당, 민주당 외곽에서 활동하는 진보정당, 정당의 틀을 넘어선 좌파운동 등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내용적으로 복지국가 담론에 수렴되는 부류라면, 여기에서 민주당으로의 합류를 택할 것인지 민주당과 연합하는 독자적 진보정당을 택할 것인지가 고민될 것이다. 그 외의 이들이라면 장기적인 존속기획은 물론 올해 대선에서의 대응방안이 고민의 지점이 된다. 또 여기서는 민주노총 등 기존 노동운동 조직과의 관계가 중요한 변수가 된다. 통합진보당 외곽 블록에서 진보신당이나 연석회의나 사노위 등이 어지러이 내놓고 있는 대선 대응방안을 그들 세력의 장기적인 존속기획에 맞춰 구체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시작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대적 재생산의 문제에선 386세대의 공통의 운동의 경험을 주된 기반으로 형성되었던 진보운동이 이후 세대의 어떤 계층과 어떤 식으로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별도의 논점이면서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그 문제해결 방식이 서로 촘촘하게 얽혀있다. 그래서 진보운동이 무력해 보이는 시대에 이 제각기 다른 ‘방언’들이 허탈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문제를 분리해 볼 수 있다면, ‘진보 시즌 2’에 대해 각자 내세우는 대안에 대한 평가의 준거는 마련될 것이다. 이제는 지나간 것에 대한 평가와 함께 새로 시작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검토해 봐야 하는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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