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가치는 실용이다. 효율과 실리를 주변에 거느린 이 단어는 원칙주의자의 꽉 막힘과 이상주의자의 거드름을 넘어, 2008년 한국 사회를 아우르는 실세로 자리했다. 능률적이고 효과적이며 현실적인 가치라는 주장에 표피적인 이득까지 염두에 둔 개인의 이해득실도 한몫을 하며, 실용의 가치는 우리 사회에 급속도로 안착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실용이 위기에 봉착했다.

방송으로 따지면 실용의 가치는 시트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저비용, 고효율'이란 출생 이력을 봐도, 시트콤이 얼마나 실용적인 장르인가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우선 제작비의 경쟁력은 기존 드라마와는 '게임도 안 될 정도'다.

'순풍산부인과' '남자셋 여자셋' '안녕! 프란체스카' 등 시트콤 흥행

▲ MBC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 3
국내에 시트콤의 시작을 알린 작품은 지난 1993년 방송된 SBS <오박사네 사람들>이다. 그 뒤를 이어 SBS는 <순풍산부인과> <행진> <LA아리랑> <나 어때> 등을 연이어 만들었다. MBC 역시 SBS의 실적에 고무되어 <세친구> <남자셋 여자셋> <점프> <깁스가족> <안녕! 프란체스카> 등 히트작을 생산했다. 눈치만 보던 KBS도 <오 해피데이> <반쪽이네> <행복을 만들어 드립니다> 등을 제작했다. 그러나 시트콤 제작 숫자에서 알 수 있듯, 당시 각 방송사는 시트콤 찍어내기 레이스를 벌인 셈이다.

당시 시트콤은 엄숙주의자들에게 '꼴 사나운 것'이었다. 세상 모든 것을 엄숙주의로 치장하려는 일군의 사람들에게 시트콤은 경박스러움 그 자체였을 지 모른다. 그러나 시트콤은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시청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 인기가도를 이었다. 이죽거리는 것이라 여겼을 시트콤의 대사에는 시대철학이 담겼었고, 시트콤에 히죽거리는 우리네 모습에선 시장논리에 지친 서민의 카타르시스가 숨어있었다. 그렇게 시트콤은 사람들과 소통했다.

실용의 시대 등장, 시트콤은 하락세

이제 시트콤이 출발한 지 15년이다. 부침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2006~2007년 MBC <거침없이 하이킥>은 인기의 정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야동순재' '식신 준하' '오케이 해미' '꽈당 민정' 등도 히트 캐릭터가 됐다. 그러나 거기까지 였다. 막상 실용의 시대 가치가 등장한 이후, 시트콤은 좀체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여세를 몰 것으로 기대했던 KBS2 <못말리는 결혼>과 MBC '코끼리'는 '꾸준히' 한자리 수 시청률로 존재감마저 잊게 하고 있다.

과학적 장르인 시트콤, '옛 영광' 찾기 위해선 절제없는 모방 안돼

▲ KBS 2TV <못 말리는 결혼>(월~금 저녁 7:40)
말씀(선언)은 있었지만, 소통의 가치는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유행은 또다른 유행의 자양분이 되기보다 모방 만을 양산했다. 절제없는 모방은 원류을 해치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졌다. 나락으로 가는 길엔 욕심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가장 미국적인 장르인 시트콤은 주간 아이템이다. 속전속결의 우리는 일일 시트콤으로 스스로를 지치게 했다. 소재의 고갈은 불을 보듯 뻔했다.

시트콤은 여울에서는 급히 가다가도 굽은 물줄기에서는 쉬어가는 속에 즐거움이 너울이 되어 돌아온다. 웃음이 터진 뒤 마무리 될 시간인 3~4초까지 계산한다. 또 수차례 반복 촬영을 통해 호흡이 짧거나 길진 않은지 철저히 수정·검증한다. 강이 역사를 흐르며 도도함을 이어왔듯, 시트콤은 경험치를 쌓으며 인기를 이어왔다. 결국 시트콤은 경박한 산물이 아니다. 역사라는 경험치를 쌓아 치밀함으로 분석한 과학적 장르인 셈이다.

이미 실용이었지만, 그 활용에서 어그러짐이 있었기에 시트콤이 맥을 못추는 것이다. 실용의 먹거리와 실용의 물줄기가 실용의 시트콤에 오버랩되는 이유는 뭘까?

'리포터'보다는 '포터'가 더 많아 보이는 세상, '날나리'라는 조사가 붙더라도 '리포트'하려고 노력하는 연예기자 강석봉입니다. 조국통일에 이바지 하지는 못하더라도, 거짓말 하는 일부 연예인의 못된 버릇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 보렵니다. 한가지 변명…댓글 중 '기사를 발로 쓰냐'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는 데, 저 기사 손으로 씁니다.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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