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24' 행사가 치뤄지던 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군용 24인용 텐트를 혼자 칠 수 있겠느냐고 누군가 묻는다. 한 유저가 “되는데요..”라고 대답한다. 수많은 다른 유저들이 ‘불가능한 일’, ‘허세’, ‘게시판에서야 모든 일이 가능하지’,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이 치는 뻥’이라고 반응한다. 가능하다고 말했던 유저가 ‘내기’를 제안한다. 자발적으로 ‘T24’란 이름을 지은 기획단이 조직되고 텐트를 협찬해 주겠단 회사가 나타나고 누리꾼들이 보낸 협찬물품이 쌓인다. 일주일이 지난 후, 그는 서울 시내의 한 초등학교에서 수천 명이 직접 지켜보고 인터넷으론 십 만 이상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혼자서 두 시간 안에 24인용 텐트 치기’라는 불가능해 보였던 ‘미션’을 ‘클리어’ 하는 데 성공한다.

마치 영화 각본 같은 이 상황은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8일까지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사진전문 유명 커뮤니티 SLR에서 생긴 일이라 규모가 더 쉽게 커졌고, 행사 당일엔 사이트 회원인 유명가수 ‘렉시’와 한 성악가의 공연까지 곁들어졌다. 렉시는 공중파 방송 출연을 마다하고 노 게런티로 출연했는데, 온라인 방송 동시 접속자 수가 8만을 넘어가는 시점에 공연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공중파 나간 것보다 더 낫겠다”는 평까지 나왔다.

▲ 국방부 블로그 연재 웹툰 [슭의 말년휴가] 중 ⓒhttp://mnd9090.tistory.com/1498

이 사건은 자본이나 단체조직이 개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순전히 게시판과 SNS를 통해 주류 매체에 보도될 규모의 행사가 조직된 상황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을 ‘SNS의 소셜함의 발현’으로 바라보는 주류 매체의 시선은 기본적으로 타당하다. 온라인 문화가 이전부터 이런 행사의 가능성을 던지긴 했지만 SNS가 게시판이나 블로그에 비해 훨씬 ‘소셜’한 것이 행사성공의 원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왜’ 모였는지, ‘어떻게’ 이렇게 많이 모였는지를 묻는다면 조금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다. 그것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사와 욕망을 물어보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내기를 건 이유는

T24가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면 이것이 많은 사람의 경험에 결부되어 있다는 문제와 ‘내기’라는 문제가 얽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이 생기기 전에도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인터넷의 ‘내기’가 더 흥미를 끄는 건 서로 신상을 모르고 외모나 체격 정보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에서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내기에 대한 흥미를 높이는 셈이다.

사실 인터넷 논쟁이 격렬해질 때 ‘오프라인으로 나와서 해결하자’는 제안이 오가는 것은 PC통신 시절 때도 있었던 일이었다. 온라인에선 주로 이런 상황을 게임의 용어를 전유하여 ‘현피(‘현실 PK’의 준말. PK는 ‘Player Kill’의 준말로 MMORPG 게임 등에서 타 캐릭터를 죽이는 행위를 말함)뜬다’고 표현한다. PC통신 유저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서로 사는 곳이 서울 부산이라 차를 몇 시간씩 끌고 와 대전에서 만나는 상황이 성사되는 것을 본 적도 있다니 ‘분노의 힘’이 대단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단순한 ‘현피’ 상황이라면 몇몇 보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T24처럼 주최 측이 결합하여 대대적으로 홍보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즉T24는 인터넷 어딘가에선 ‘현피’라 불리긴 했지만, 전형적인 ‘현피’는 아니었기에 성공한 것이다.

한편 T24엔 군용 24인용 텐트라는 소재의 특수성이 크게 작용한다. 한국 사회가 징병제 국가인지라 강제적으로 특정 나이 대 남성들에게 특정한 경험이 주입되어 그것이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있다. 물론 군대경험이란 것도 시기․부대․보직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지휘소 텐트로 쓰이는 24인용 텐트는 많은 육군 출신들의 경우 직접 쳐보지는 못했더라도 훈련장에서 남들이 치는 것을 보기는 했을 물건이란 특수성이 있다. 게다가 최근에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기에 '언제' 군생활을 해봤냐는 문제도 넘어선다.

▲ 국방부 블로그 연재 웹툰 [슭의 말년휴가] 중, 텐트를 쳐본 예비역이라면 당연히 이런 반응이 나올 듯 하다. ⓒhttp://mnd9090.tistory.com/1498

T24의 주인공 이광낙 씨(아이디: Lv.7벌레)는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람들이 군대에서 봤을 때 워낙 (24인용 텐트가) 크고 병사 십수 명이 쩔쩔매며 치는 상황을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혼자서는 절대 안 된다’는 인식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실 24인용 텐트는 텐트 무게만도 90Kg에 지지대 무게를 모두 포함하면 200Kg이라 하고 지지대 높이도 20m를 넘는 초대형 텐트다. 국방부 공식 트윗 계정 관리자가 “원래는 8명이서 십분 만에 치는 것이 기본”이라 말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FM'(야전교범 ‘Field manual’의 약자. 군대의 공식적인 지침을 의미)일 뿐 실제 훈련에서는 숙련자가 드물 경우 십수 명이 달려들어 수십 분이 걸리는 일도 있다. 그래서 나이와 부대를 불문하고 24인용 텐트를 아는 이들은 ‘군대 안 가보고 하는 허세다’, ‘안 되는 거다’란 식으로 반응하였다.

이런 반응은 무리가 아니었던 것이, 통상적으로 알려진 24인용 텐트를 치는 방법은 상동과 상동 지주부터 결합해서 세우는 것이기에 혼자서 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광낙 씨의 경우 이런 방법을 택하지 않았고 주변 지주를 먼저 세운 다음 마지막으로 상동을 올렸다. T24가 열린 이후 다수 예비역들은 “저렇게 치는 방법도 있다”고 증언했고 이전에 “이론적으로야 가능은 하지”라고 말했던 이들도 이 방법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론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안 된다’고 보았던 이유는 또 한 번 군대의 특수성과 관련이 있다. ‘24인용 텐트치기’는 스포츠가 아니다. 군대라는 조직은 일개인이 혼자서 텐트를 칠 수 있는 편법을 연구할 기회를 제공할 이유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훈련상황에서 사람이 부족해 4명 정도가 지휘소 텐트를 치는 일은 생길 수 있고 극한의 경우 2명이 하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지만 혼자서 텐츠를 치도록 내버려두는 상황이 발생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혼자서 두 시간 안에 텐트를 치는 것보단 8명을 동원해 십분 만에 텐트를 치는 방법을 지도하는 것이 군대의 방식이다. 그렇다면 가능한 상식적인 추론은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을 주장하고 있다’가 되는 것이다. 상식적인 수준에선 ‘허세’일 거라고 예측하는 쪽이 ‘내기’에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

이광낙 씨는 전화 통화에서, “나도 군생활 하면서 (혼자서 2시간 안에 24인용 텐트치기를) 해본 적은 없었다. 군대에선 간부였기 때문에 병사들에게 텐트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병사들이 잘 못 하는 부분이 있을 때 쳐주면서 (텐트 치는) 과정을 잘 알았기 때문에 혼자서도 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8년을 복무하고 중사로 전역한 육군 부사관 출신이다. 방송 인터뷰에선 “(있던 부대의) 인원이 적어서 병사 두세 명이 치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다 보니 혼자서도 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 국방부 블로그 연재 웹툰 [슭의 말년휴가] 중. 이런 방식으로 치면 물론 혼자서 치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http://mnd9090.tistory.com/1498

결국 ‘되는데요..’의 의미는 그 미션 자체를 경험해 봤단 것은 아니었고 유사한 미션을 반복적으로 지휘하면서 힘과 요령이 있고 방법을 숙지하면 혼자서 칠 수 있단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었던 셈이다. 물론 그에겐 자신이 그걸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 미션은 더욱 대단했고 예비역들이 ‘시청하면서도 믿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도전과 축제 사이

물론 보는 사람 모두가 경악한 것은 아니었다. 24인용 지휘소 텐트를 혼자서 칠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예비역이라도 공군․해군․의경․소방서 복무자나 지휘소텐트를 쳐보지 않고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이들은 심드렁한 경우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여성이라도 주변 남성들의 증언을 듣고 T24라는 축제를 즐긴 경우도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T24 축제의 시초가 ‘내기’였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이 ‘내기’가 여러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거대한 축제’가 될 수 있었던 사실을 해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 사건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잘못하면 경찰이 출동할 수 있는 ‘현피’가 아니었기에 안심하게 즐길 수 있었고 어떤 정치적 이득이나 경제적 영리활동과도 구별되어 있다고 쉽게 믿을 만한 소재였다. 보통 사람들은 근육질 남성이 텐트를 치는 것보단 예쁜 여성이 모종의 이벤트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후자의 이벤트가 상품이나 쇼핑몰 광고, 앨범 홍보 등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흥이 식기도 한다. 즉 T24는 어떠한 실용적 목적과도 결부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 어떤 ‘순수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었다.

▲ 지난 1월 13일 매일경제 기사. 가령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어찌 보면 무의미한 일로 치부될 수도 있는데, 바로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이 안심하고 많이 모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크나큰 의미가 있는 일이 되었다. 가령 중간 중간 축하공연 형식의 이벤트를 벌인 이들에겐 이 행사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광낙 씨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단순한 텐트 치기 내기에서 시작된 행사가 누리꾼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됐다는 점에서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행사가 열리는 시점에서 이미 현장의 분위기는 내기의 성패와는 상관없이 이 축제를 즐기며 이광낙 씨를 응원하는 것에 가까웠다고 한다.

만일 이광낙 씨가 ‘실패’했다면 반응이 어땠을까. 이에 대한 반응은 박권일 ‘자음과 모음 R' 편집위원이 트위터에서 한 분석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그는 “이제는 ‘온라인 허세-오프라인 검증’이 명실상부 젊은 대중의 엔터테인먼트가 됐다. 대부분 ‘검증 직전 버로우’의 리얼리즘으로 귀결, 냉소주의를 강화하지만 가끔은 경이로운 영웅서사가 되어 억압된 로맨티시즘을 자극하기도 하는 듯”이라고 설명한다. 앞서 T24가 어떤 이해관계에서도 무관하기에 진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얘기도 했지만, 박권일 위원의 분석은 왜 이광낙 씨가 현장에 나오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이광낙 씨는 ‘버로우’ 타지 않고 행사 현장에 나오는 순간에 이미 ‘진정한 것’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성패 여부를 떠나 그가 텐트를 치는 솜씨가 영 시원찮았다면 망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찌질이’로 취급당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전여옥과 디시인사이드 정치사회 갤러리 유저의 오프라인 토론이 성사되었을 때, 그리고 진중권이 디시인사이드 디워 갤러리 유저들과 쿠키뉴스 주최의 토론을 했을 때의 상황에 비견할 만했을 것이다. 이 경우엔 상대가 전여옥이나 진중권과 같은 ‘네임드’가 아니라 ‘난공불락의 24인용 텐트’라는 물건이란 차이는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초반 20여분 동안 보여준 주변 지주를 세운 ‘해머질’의 수준만으로도 그는 이미 그런 취급을 받을 가능성을 벗어났다. 예비역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 대부분 ‘상동까지는 가봐야 안다’고 얘기했지만 저 사람이라면 ‘혼자서 24인용 텐트 치기’에 도전할 만하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했던 것이다. 실제로 미션에 성공하고, 게다가 텐트의 강도를 의심할 여지를 없애는 ‘텐트 위에 올라가 드러눕기’ 세레머니를 보여주면서 ‘경이로운 영웅서사’의 정점을 찍었지만, 설령 이러한 결론이 아니었더라도 이광낙 씨는 조롱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이벤트에 기대하는 것이 ‘내기의 논점’이 아니라 ‘진짜’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가령 소재 때문에 이 정도로 대중적일 수는 없었던, 스타크래프트2 커뮨에서 일어났던 ‘맹덕엄마 사건’이란 것이 있다. ‘맹덕엄마’란 아이디를 쓰는 유저가 PlayXP 게시판에서 플저전 밸런스에서 프로토스가 사기라고 주장해서 논쟁을 하다가 서로 격분하여 1:1 대결을 하여 진 사람이 XP 사이트 활동을 중지하는 일명 ‘버로우빵’을 하게 된 사건이다. 사실 이 사건에서 맹덕엄마의 주장이 ‘옳음’을 증명하려면 맹덕엄마가 프로토스를 잡고 저그를 압살해야 한다.

그러나 이후 연쇄적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버로우빵’ 게임에서 그는 자신의 주종족인 테란을 잡고 상대방을 ‘쳐발랐다’. 그렇다면 그 게임들은 훗날 게이머 김정훈으로 밝혀진 맹덕어멈의 주장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맹덕엄마의 ‘버로우빵’ 승리에 열광했다. 사람들이 보고 싶었던 건 ‘프저전 밸런스 논쟁의 결론’이 아니라 ‘게시판 찌질이’인 줄 알았던 어떤 사람이 압도적인 실력을 뿜어내는 그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이해한다면 이광낙 씨 역시 T24의 성공여부와는 무관하게 사람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었을 거라 예측할 수 있다.

탈정치적인, 그래서 지극히 정치적인

바로 그렇기에, T24는 다른 많은 사건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떻게 정치를 회피하려고 하는지를 보여준단 점에서 우리의 정치가 처한 어려움을 드러낸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언론들이 이 부분에 대해선 주목하지 않고 T24에 대해 관성적으로 환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뉴데일리와 같은 보수 인터넷 매체가 진보적 매체들에 비해 이 사건에 더 열광하고 있다. 패스티벌이 열리기 전에도 보도가 나왔고 행사 당일에도 시시각각 사진을 찍어 올리는 등 관심이 대단했다. 이벤트가 대성공을 거두고 나서야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진보매체들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는 SNS를 괴담의 온상으로 몰던 보수언론들의 보도기조를 생각하면 재미있는 일이다. 그들의 반응을 종합하면 SNS에서 얻은 정보는 믿으면 안 되지만 SNS를 통해 정치와 무관한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를 하는 것은 환호할 만한 일이다. 일그러진 잣대다. 한편 진보언론들이 상대적으로 호들갑을 떨지 않는 것은 기사가치를 높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 볼 수는 있으나, 역시 SNS의 자발성을 과잉되게 예찬하던 모습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군대와 결부된 이벤트이기 때문에 군사문화의 프레임으로 접근하여 보수언론이 진보언론보다 더 환호한 측면이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 T24가 성공할 경우 이광낙 씨에게 스위트룸 1박을 쏜다고 약속했던 남희석은 약속을 지킬 예정이라고 한다. 이강낙 씨에 따르면 그러나 아직 '입금'을 약속했던 누리꾼들의 돈은 간헐적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내기'에 오간 금액과 물품은 어마어마했지만 실제로 그에게 얼마나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연합뉴스

그런 해석에 동의하진 않더라도,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공히 정치적인 문제와 분리해서 생각하는 T24가 역으로 정치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은 유효하다. 특히 냉소주의의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그렇다. 정치평론가 김민하는 주간경향 950호(2011.11 원문 링크)에서 “누군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한다고 해도 그는 결국 ‘거짓’을 말하는 것이며 그 뒤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고, 그 진실은 반드시 나의 이득과 합치되지 않는다는 직관적 믿음이 냉소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근본적 인식”이라 설명한다.

이 경우 대중의 가능한 대응은 거짓을 적당히 즐기는 태도를 취하거나, 이면의 진실에 집착하는 것이다. 김민하는 가요계에 비유할 경우 아이돌 가수는 립싱크를 해도 괜찮다고 믿는 것이 전자의 태도이며, ‘나가수’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 후자의 태도라고 본다. 한겨레21 924호(2012.8 원문 링크)에서 그는 “조금 성급하게 말하자면, 대중은 ‘진정한 무엇’을 찾다가 그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무것도 없는 것’에 열광하다 이것이 지겨워지면 다시 ‘진정한 무엇’을 찾는다”고 정리한다.

즉 형식을 파괴하는 후크송이나 ‘강남스타일’ 같은 노래에 대한 열광이 ‘아무것도 없는 것’에 대한 것이라면, 임재범을 발견하게 한 ‘나가수’나 버스커버스커를 발견하게 한 ‘슈퍼스타K' 그리고 ‘벌레전설’(T24 이후 ‘Lv.7 벌레’는 이렇게 불린다)에 대한 열광은 ‘진정한 무엇’에 대한 것이다. 이는 다시 정치 영역으로 가져오면 후크송의 형식파괴에 비견할 만한 한국 정당들의 끊임없는 재창당과 부당한 시스템에 대항하는 ‘진정한 무엇’이라 여겨지는 노무현과 안철수에 대한 희구심리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설명은 이해관계에 무관하고 순수해 보이는 T24가 같은 주말 치러진 민주당 국민경선에 대한 관심조차 압도한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그러나 정치는 원래 이해관계의 조정이며 구질구질한 갑론을박을 어쩔 수 없는 과정으로 포함한다는 점에서, 이 ‘탈정치의 정치’에서 기성정치권이 어떤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문재인은 현재 경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있지만 손학규가 경선 불복을 하지는 않을지, 또 안철수는 언제 어떻게 출마선언을 할지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뾰족한 해법이 나오지는 않지만 우리의 정치문제가 T24의 저변에 깔려 있는 냉소주의와 영웅서사, ‘아무 것도 없는 것’과 ‘진정한 것’ 사이의 진자운동에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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