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지검에서 '공천헌금' 조사를 받고 나오며 실신하는 현영희 의원. 과연 그녀 혼자만의 일일까? ⓒ연합뉴스

박근혜 후보가 새누리당 경선 후보로 확정됐다. 그리고, 바로 지난 주 새누리당은 공천헌금 의혹의 당사자인 현기환 의원과 현영희 의원을 제명하였다. 바야흐로 박근혜 후보를 중심으로한 대선체제가 완성되는 듯 보이는 순간이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의 입장에서 아직도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는 것은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공천헌금 논란은 왜 중요한가

이후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일단 현기환, 현영희 의원 제명 맥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천헌금 논란이 치명적일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이 논란이 전형적인 정치권 구태의 표본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통령 선거에서 새로운 시대의 희망을 보고싶어 하는데 구태 정치가 나와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공천헌금 논란이 곤란한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이명박 정권이 이제 막바지라는 것이다. 정권의 막바지에는 늘 측근 비리가 따라온다. 벌써 이명박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많이 잡혀갔고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도 검찰에게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에게 가장 좋은 구도는 이명박 대통령이 ‘구태’와 ‘비리’를 모조리 떠안고 새로운 정치의 대안으로서 박근혜 후보가 떠오르는 것이나 공천헌금문제 때문에 ‘비리=구태=이명박=박근혜’의 등식이 만들어지는 위기적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강점 중 하나는 인기가 없는 이명박 대통령과 매우 분명하게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인데, 공천헌금 문제로 인해 이러한 강점이 희석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그렇잖아도 과반을 놓친 상황을 감수하고 현기환, 현영희 의원을 신속하게 제명하려 한 데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로 과연 사태가 수습될 수 있을까?

현영희가 ‘도마뱀 꼬리’로 보이는 이유

이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를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첫째로 현영희 의원 케이스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 그러한 우려를 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가 당권을 사실상 접수한 직후부터 4년 간 비주류로 살아왔던 친박계 의원들의 입지가 강력해졌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점이다. 이들 입장에서는 그동안 서럽게 살아왔던 것에 대한 보상을 바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확실한 대목장사가 바로 19대 총선 공천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파티가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친박계 정치인 다수가 이러한 공천장사에 가담했을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게 느껴진다. 지금 당장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누군가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이러한 추측을 말하는 것에 대해 무슨 합리적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이 돈이 친박계 의원 개인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으로 문제가 끝났다면 차라리 괜찮은 것이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혹은 이 중 일부가 박근혜 후보의 비공식적 대선자금을 조성하는 데 쓰이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이러한 의혹은 물론 제대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그 진위를 판별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기는 하겠지만 정치권의 행태를 오랫동안 보아온 사람이라면 이러한 추측도 아주 상상하기 힘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적해야 할 둘째는 이것이 보수정치의 고질적 병폐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뇌물’이나 ‘매직’이 아니라 ‘공천헌금’이라는 말을 쓰겠는가? 이미 오랫동안 국회의원 선거에서 어느 당 공천을 받으려면 얼마를 내야 한다더라 하는 식의 진위가 판별되지 않은 정보들은 정치지망생들 사이에서 상식(?)이 된 지 오래다. 현재의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처럼 규모가 커서 당의 공천만 받으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는 정당의 경우 이러한 폐해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국회의원 뱃지 한 번 달아보는 것이 꿈인 사람들에게 ‘공천헌금’이란 한 번의 투자로 평생의 꿈을 이룰 수도 있는 매력적인 옵션이 되는 것이다.

‘비례대표 투자’의 기제를 손볼 수 있을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새누리, 민주통합당에서 앞 순번에 배치되면 거의 100%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가능한 비례대표 의원의 경우 당에서 제명을 당하더라도 의원직을 잃지 않고 무소속이 되는 상황에 한 번 의문을 가져보기 바란다. 자기가 탈당을 하면 의원직을 잃는데, 당에서 제명을 당하면 무소속 의원이 된다. 그냥 상식선에서 생각하기로는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큰 돈을 내고 국회의원이 됐는데 당의 상황에 따라 뱃지를 잃을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누가 감수하겠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일단 비례대표 의원 뱃지를 달기만 하면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않는 이상 의원 신분은 유지되므로 더 큰 돈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사실은 바로 이 점이야말로 보수정치에서 ‘공천헌금’을 통한 비례대표 의원 당선이 가능할 수 있는 핵심적인 조건이다.

따라서 현기환, 현영희 의원을 제명하는 것으로 정치권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명약관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근혜 후보가 이것을 교정하기 위한 정치쇄신특별위원회를 설치한다면 공천헌금이 보수정치의 고질적 병폐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비례대표 의원에 대한 바로 이 규정을 손보겠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이 규정을 손본다고 해서 공천헌금과 관련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적어도 이것이 첫 발걸음일 것이라는 얘기다.

과연 박근혜 후보가 이러한 약속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대다수 사람들이 ‘박근혜는 그런 약 못 한다!’고 대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박근혜 후보가 모험을 해보자는 마음을 먹는다면 이런 약속도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것에 따라 당론으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해도 다른 정치세력이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박근혜 후보가 이것을 관철시키면 정치개혁의 선두주자가 되고 관철을 못 시키면 야당 탓이 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구도에서 해볼 만한 모험이지 않나?

박근혜의 선택을 주목한다

그러나 새누리당 내의 문제제기조차도 허용하지 않고 ‘무사고 경선’만을 바랐던 박근혜 후보가 이러한 모험을 결심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처럼 안철수 원장에게 본선에서 이길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승부수는 차라리 일찍 걸어보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울러, 이 글에서 제기한 공직선거법의 문제는 학문적으로 보면 ‘정당기속성’ 등의 적용범위에 관한 것으로서 어떤 ‘원칙’을 제시하고자 했던 바는 아니며, 일부 학설에 의하면 글에서 제시한 방법과 정반대로 비례대표 의원이 자진 탈당을 하는 경우에도 의원 신분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