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인다. 악마는 우리가 세상의 상식이라고 가정하는 지점에서 한 발짝만 물러서서 보면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정상상태의 병리학 The Pathology of Mormalcy'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미디어가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보여주는 창에 페인트를 칠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뒤통수를 '꽝' 후려치는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 던져보았을 "언론은 과연 신뢰할만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이토록 명쾌한 대답이 또 있을까. 때문에, 이 책이 처한 운명은 처음부터 가혹했다.

저자들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책이 발간된 이후 영국의 전국판 신문에서는 단 한 번도 단독으로 기사화되거나 서평이 실리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영국의 저명한 탐사저널리스트 존 필저(John Pilger)가 "저널리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라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건만, <뉴스테이츠먼 New Statesman >과 <스펙테이터 Spectator > 지역판에 서평이 실린 게 고작이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어땠을지 궁금해서 기사를 뒤져봤더니,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연합뉴스와 뉴시스, 한겨레신문이 단독으로 서평을 썼다. 뉴스통신사들은 그렇다 치고, 이 책의 서평을 실은 우리나라의 중앙 일간지가 고작 '한겨레' 뿐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 많이 읽힐 수 없는 운명은 실로 가혹하다. 언론이 할 수 있는 모든 왜곡보도 가운데서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만큼 구린내 나는 것은 없다. 그런 언론이 애써 침묵하는 가장 큰 비판의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MBC의 <미디어비평>과 KBS의 <미디어포커스>에 대해 언론들이 보인 반응을 떠올려보라!) 저자들은 "미디어기업은 수십 년에 걸쳐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은폐하거나 억압하고 있고, 이에 대해 대중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단언한다. 무엇이 침묵의 언론을 생산하는가? 바로 기업의 이익이다. 미디어기업은 자사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특정한 주제나 책에 관한 침묵을 생산하며, 이것은 '부정적인 사고의 통제'라고 저자들은 진단한다.

논의의 출발점은 미디어기업의 선전 시스템이 양산한 이른바 '직업적 저널리즘'의 폐해다. <부자 미디어, 가난한 민주주의 Rich Media, Poor Democracy >의 저자 로버트 맥체스니(Robert McChesney)의 말대로 "직업적 저널리즘은 끊임없이 소유주와 광고주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와 지배계급의 정치적 목표를 은밀히 유포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라크 침공이다. (국제법상 전쟁이 아닌 명백한 침공이다!) 주류 언론들은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에 '선한 전쟁 good war'이라는 '윤리의 백지수표'를 붙여주고, 정작 주목해야 할 현실에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저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잘못된 '테러와의 전쟁' 내내 언론이 스스로 '전쟁의 예보관'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선전을 위해 기사를 왜곡하는 오웰리안 저널리즘(Orwellian Journalism)이 횡행하면서 "존경할만한 수준의 침묵이 형성되었다"며 비난을 쏟아낸다.

▲ '미디어렌즈' 저자들
상투적인 질문과 대답 : 왜 이런 것들은 기사화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을 다 다루기엔 현실적으로 지면이 부족합니다. 저자들은 말한다. "사실 미디어에 공간의 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 : 광고주의 눈치를 보는 겁니까? 아니오. 우리는 광고주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보다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죠.

이라크에서 출발해 아프가니스탄과 코소보, 동티모르, 아이티, 중앙아메리카를 거쳐 지구온난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미디어기업의 왜곡되고 편향된 시각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저자들의 날카로운 분석은 어느덧 세계적인 온라인 미디어비평 그룹으로 성장한 '미디어렌즈(www.medialens.org)'의 가치를 여지없이 입증하고 있다. 더욱이 이 책이 겨냥하고 있는 날카로운 비판의 화살은 자유주의 언론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BBC와 <가디언>, <인디펜던트>를 향하고 있다. 서구에서 가장 진보적인 언론으로 평가받아왔고, 누구나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던 저 유명한 BBC와 <가디언>이 일찍이 본 적 없는 참담한 뭇매를 맞는 모습은 읽는 이에게 적잖은 충격을 준다.

특히 주류 언론에 속한 기자들의 이율배반적 태도를 꼬집는 대목에선 마치 감췄던 속내라도 들킨 듯 가슴이 뜨끔할 정도다.

"문제는 '양쪽 길 모두를 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수용할 수도 내칠 수도 있는 힘을 가진 끔찍하게 부패한 미디어시스템에서 존경받고 보상을 받기를 원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바로 그러한 미디어시스템과 정부-기업의 연합군에 의해서 고통 받는 힘없는 사람들의 수호자처럼 보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의 노력은 이 책에 풍부하게 수록된 기자들과의 흥미진진한 이메일 문답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반대로 이런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의 저자들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과연 나는 어떤 답변을 할 수 있을까. 마음이 무거워지는 대목이다. <인디펜던트>의 에디터였던 BBC의 앤드루 마는 "내가 BBC에 들어갈 때 내 의견을 낼 수 있는 '의견기관'은 이미 내 몸에서 제거된 상태였다"고 토로했다 한다.

그러니 그보다 더 정상이 아닌 언론환경 아래에서 한없이 좁은 시야에 갇혀 있었던 우리에게 이 책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지평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단순히 일깨우는 수준을 넘어 준엄하게 경고하는 거울이다. 비판적 저널리즘의 성서(聖書)라는 격찬이 아깝지 않은 이 책의 저자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간단하지만 의미심장하다. "생각이 없는 복종에 바탕을 둔 탐욕스럽고 파괴적인 힘은 동정심을 지닌 반란에 가장 취약하다." 이 시대의 기자들이 두고두고 새겨야 할 대목이다.

2001년 KBS에 기자로 입사했다. 2004년 8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KBS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포커스>를 제작 담당하면서 언론에 관심 갖게 되고, 2006년 11월부터 1년 동안 50회에 걸쳐 미디어오늘에 <김석의 영화읽기>를 연재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보도한 탐사저널리스트 시모어 허쉬의 저서 <밀라이 학살과 후유증에 관한 보고>를 번역 출간 준비 중이고, 현재 KBS 사회팀 기자로 활동 중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