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소시지는 주식이나 다름없다. 그 중에서도 세르벨라트를 가장 좋아한다. 인구 700만명인 나라에서 연간 1억6000만개(2만5000톤)나 만든다. 400여종이 있지만 세르벨라트가 생산량의 30% 가량 차지할 정도이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갈아서 소창자에 넣은 다음 황금빛이 날 때까지 훈연(燻煙)해서 만든다. 그것도 꼭 브라질산 소창자를 써야 제 맛과 색이 난단다.

광우병이 무서우면 먹지 말라고?

그런데 EU(유럽연합)가 지난 1월말 브라질산 쇠고기가 위생검역 기준에 미달한다며 수입중단 조치를 내렸다. 광우병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자 스위스에서는 이 소시지를 못 먹게 될까 걱정이 태산이란다. 스위스는 EU(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인접국가들과 인적·물적교류가 많다보니 EU가 브라질산 소창자를 쓰지 말도록 권고한 것이다. 스위스는 EU의 수입규정을 따르도록 2006년 조약을 체결한 바 있다.

EU는 광우병에 대해서도 규제가 아주 엄격하다. 나이가 12개월이 넘는 소의 두개골, 척수, 편도, 내장 등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을 무조건 폐기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소에서 나오는 SRM를 제거해 소각하도록 하고 있다. 그 까닭에 지난 4월 23일 미국산 쇠고기에서 등뼈가 나오자 나라가 발칵 뒤집혀졌던 것이다.

▲ 한겨레신문 5월 9일자 35면
미국에서 광우병 파동이 나자 한국은 2003년 12월 수입을 중단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나서 수입재개의 물꼬를 텄다.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 수입키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검역과정에서 갈비뼈가 상자째로 발견되고 위험물질인 척추까지 검출되는 소동이 반복됐다. 그래서 2007년 10월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이 중단 상태였다.

우리의 '검역 주권'을 포기한 것이 문제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그 빗장을 모두 풀어버렸다. SRM을 제외하고는 연령제한 없이 모든 부위를 수입하도록 문을 활짝 연 것이다. 원인물질로 알려진 프리온(prion)은 주로 소의 뇌, 안구, 편도, 척수, 두개골, 내장 등 특정 부위에 분포되어 있다. 그 이유로 뼈 부위와 내장은 수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광우병의 잠복기간은 소의 경우 3년이라 수입기준을 출생 30개월 미만 뼈 없는 살코기로 제한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 후 청와대를 비롯한 집권세력이 쏟아내는 말이 너무 천박하고 저급하다는 점이다. 값싸고 질 좋을 고기를 먹게 됐다, 광우병이 무서우면 먹지 마라, 구제역과 달라 전염병이 아니다, 96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 3억 미국인은 물론이고 미국교포나 유학생이 먹어도 뒤탈이 없다. 미국 가서 햄버거 실컷 먹고 나서 딴 소리한다는 따위가 그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질병의 위험성이다. 국민들은 값을 따지는 게 아니다. 국민 건강을 지켜야 할 정부가 검역주권을 포기한데 대한 불만과 광우병에 대한 공포를 토로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 선결조건으로 쇠고기 수입을 재개한 사실을 국민들은 너무나 잘 안다. 그런데 FTA와 무관하다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미친 소' 두고 제발 '허튼소리' 그만 하라

▲ 한국일보 5월 8일 4면
96개국 사람들이 먹는다지만 한국 등 7개국이 90% 이상 수입하고 나머지 국가는 실적이 미미하다. 멕시코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입국이지만 30개월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같은 가입국이지만 캐나다는 광우병 발병국가라 완전개방이다. 일본은 말할 나위가 없고 대만, 이집트, 홍콩도 미국산은 30개월 미만 뼈 없는 살코기로 제한한다. 그런데 한국은 완전개방이다. 햄, 소시지 같은 가공품까지도 말이다.

비육우라면 사료 값 많이 들여 오래 키울 이유가 없다. 30달 이상이라면 젖소가 아니면 씨받이 암소라 고기질이 나쁘다. 미국 사람들은 주로 20개월 미만 송아지고기(veal)를 먹는다. 버거도 송아지고기로 만든 빌버거(vealburger)를 말이다. 햄버거도 주로 방목해서 키운 호주산으로 만든다. 2007년 1~8월 수입량이 20만4191만톤이다. 남미국가에서도 많이 수입한다.

EU기준으로 보면 설렁탕, 갈비탕, 햄버거, 피자, 라면스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광우병에 걸리면 치사율이 100%이다. 사람도 감염된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그것도 동족의 내장과 뼈를 먹여 생긴 질병이다. 신이 인간의 탐욕을 저주해 내린 재앙이다. 미친 소(mad cow)를 두고 너무 허튼소리를 해대면 미친 소리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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