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민주당 문재인 고문이 대선 슬로건과 PI(President Identity)를 확정지으면서 주요 대권주자들의 슬로건 및 출마선언문이 모두 제출되었다. 그런데 새누리당 기타 대선주자들과 민주당 일부 대선주자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것인지 궁금해 하는 시민들의 입장에서 사실 이번 대선의 구도는 단순하다. 새누리당의 대권주자로 나설 것이 확실시되는 박근혜와 누가 붙게 될 것이며, 그에게 승산이 있느냐는 것이다.

즉 민주당 대권주자들 중 ‘빅3’로 분류될 수 있는 문재인, 김두관, 손학규 3인의 박근혜에 대한 경쟁력이 우리에게 가장 궁금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야 대선후보들의 슬로건을 병렬적으로 늘어놓고 비교하는 것은 하등의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오히려 박근혜vs문재인, 박근혜vs김두관, 박근혜vs손학규를 붙였을 때 어떤 느낌이 나느냐가 중요하다. 이에 미디어스는 여야 주요 대권주자 4인의 슬로건 및 출마선언문을 비교하면서 3개의 가상대결의 구도를 점쳐보았다.

홍코너 박근혜의 사정

그녀를 ‘홍코너’로 칭하는 게 어색하지만 어쨌든 자신들이 제출한 색깔은 그렇다. 7월 10일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4인 주자 중 가장 늦게 출마선언문을 낭독했다. 본인이 ‘도전자’가 아니라 ‘챔피언’의 신분이란 걸 확실하게 의식하는 행보다. 택한 장소는 영등포 타임스퀘어. 박근혜 측에서 의도를 딱 부러지게 설명하진 않았지만 과거 경성방직과 방림방직이 자리했던 곳이고 70년대 경공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일하며 경제성장의 기틀을 닦은 곳이다. 박근혜는 아버지가 성공했던 곳에서 자신의 출정식을 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 꾀에 제가 빠진 측면이 있다. 오늘날 영등포 타임스퀘어는 영등포 집창촌을 밀고 지어진 대규모 재개발 복합상가다. 집창촌은 아직 반쯤은 헐리지 않고 역 바깥에 공존하는 상태다. 영등포역 지하보도로 타임스퀘어 건물을 찾아가면 바깥의 풍경을 만날 일이 없지만 역에서 걸어나와 그 건물을 찾아가려면 집창촌을 지나치게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영등포 타임스퀘어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그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에게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남의 피땀의 댓가를 들고 재개발에 착수한 자본은 바깥의 풍경을 지워버리려 하지만 아직 그것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게다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경성방직은 김성수 가문의 것, 김성수가 친일파인지 아닌지는 논란의 대상이 되지만 그들 가문이 일본에서 배웠던 사업수완으로 남한에서 번성한 이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박근혜가 택한 그 장소는 아버지가 결탁한 남한 자본가들의 미심쩍은 기원마저 암시한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그 바깥의 풍경을 외면하고 아버지 시대의 좋았던 측면만 이야기한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슬로건에서 ‘나’는 ‘국민’이어야 한다. 박근혜는 연설문에서 수십 번이나 ‘국민’을 말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자기 서사다.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 시작된 그녀의 공적 인생, 아버지 사망 이후 겪었던 고난에 대해 얘기한다.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선 그녀 박근혜 개인사만 있을 뿐 역사적 굴곡은 없다. 애매하게 남겨진 개인사 바깥의 역사는 그녀의 부모가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설령 그녀가 아버지의 공에 대해서 얘기하려 하더라도 그 시대의 어두움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이 역사를 대하는 최소한의 자세다. 박근혜는 그 지점을 건너뛴다. 십 여년 전 아직 이 정도 입지를 굳히지 못했을 때 종종 그랬듯 아버지의 과오에 대해서 추상적으로라도 인정한다면 대선가도가 뻥뻥 뚫리련만, 5.16이 최선이었다 평가하는 중년의 그녀는 아버지를 부정할 수 없는 모양이다. 할 수만 있다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2년 어법을 활용해 “그럼 아버지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했던 것은 역사적 평가와는 구별되는 인간적인 정리였고, 사람들이 그녀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버지의 묘에 침을 뱉으라는 것이 아닌, 역사적 인물 박정희에 대한 공정한 평가다. 그것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정치를 하지 말라는 요구가 자연스럽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너무나 많이 거론되었던 약점이란 점에서, 그리고 그녀의 지지기반은 박정희를 자랑스러워 한다는 점에서 야권이 너무 탐닉해서는 안 되는 약점이기도 하다.

박근혜의 출마선언문은 언제나 그랬듯 탁월하지는 않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와는 별개로 야권 후보 누구와 비교해도 충분히 굴곡이 많았던 그녀의 개인서사를 지나치면 뜻밖에도 흥미로운 얘기가 나온다. 이전과는 달리 국정운영의 기조를 ‘국가’에서 ‘국민’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국가의 발전이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의 성장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의 고리가 끊어졌습니다. (...) 이렇게 시대의 요구는 바뀌었는데 지금 정부가 지향하는 정책과 패러다임은 과거방식 그대로입니다. 이제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개인의 삶과 행복 중심으로 확 바꿔야 합니다!”

이는 가계소득과 일자리에 전전긍긍하는 ‘미국적 상식’에 충실한 주문이다. 이 주문에서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그리고 ‘복지의 확대’가 도출된다. 그녀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과 맞닿아 있고 일자리 창출은 ‘고용률 중심의 국정운영 체제’ 구축으로 설명된다. 복지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제도로 가겠다고 하면서 복지수준과 조세수준에 대한 국민대타협을 이루겠다는 놀라운 발언도 서슴치 않는다.

이 3대 핵심과제를 아우르는 계획이 바로 ‘오천만 국민행복 플랜’이란다. 그것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지(1962년) 50주년 되는 시점(2012년)에 시작한다고 의미부여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는 과거 진술에 충실하게, 아버지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아버지가 못다 이룬 것’으로 치장하는 탁월한 기동을 한다.

그 외 것들은 교육문제, 대북문제, 정부개혁에 관한 것들이다. 교육개혁은 보육 사업에 대한 지원과 대학특성화 강화로 요약되고, 대북문제는 통합적인 외교안보 콘트롤 타워 구축을 통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확립으로 요약된다. 정부운영의 핵심 원리를 공개, 공유, 소통, 협력으로 잡고 투명하고 깨끗한 정부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한다. 전반적으로 국공립대 통합안이나 햇볕정책 같은 진보적 정책의 수사를 피해가면서 해당 문제에 대해 가장 무난한 해법을 잡았다. 그러면서 그간 약속을 지켜왔다는 (제 입으로 그렇다 한다)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뢰사회를 구축할 것을, 그리하여 개인이 꿈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그것을 도와주는 정부가 되고 그런 정부를 만드는 대통령이 될 것을 다짐한다.

우리가 보기에 재미는 없을지라도 만만하지 않다. 조갑제가 분개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국가’와 ‘국민’의 역할이 기존 박정희주의자들의 것에서 뒤집혀 있고, ‘국민’이란 말을 표어에선 ‘나’라는 개인으로 가다듬었다. 과거 한국 사회가 국가의 성공을 위해 내 꿈을 희생하는 곳이었다면,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나의 성공이 국가의 성공이라고 우기는 곳이 되었음을 처절하게 보여주는 표어다.

우리는 삼성의 성공이 국가의 성공임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허용된 욕망은 삼성이 가져가는 부당한 몫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박근혜는 한국 보수주의의 문법을 교묘하게 유지하면서 사람들의 환상을 유지하려고 한다. 물론 그녀의 통치가 이 표어를 실현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표어는 이 사회에서 그녀의 통치를 실현하게 만들 ‘힘’을 가지고 있다. 그녀를 어떻게 공략해야 할 것인가?

첫 번째 가상 매치 : 박근혜vs손학규

손학규의 전략부터 살펴보자. 그는 6월 14일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출마선언문을 낭독했다. 애초에 출마선언문의 주제는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 공동체”에 가까웠다. 그러나 선언문의 공약 중 하나인 ‘진보적 성장’을 집약한 표어 “저녁이 있는 삶”의 반향이 커지자 아예 슬로건도 이걸로 바꾸었다.

손학규의 출마선언문은 야권주자는 물론이고 박근혜까지 포함해서 가장 정책적으로 탄탄하다. 시적인 조어란 찬사까지 들은 ‘저녁이 있는 삶’이 ‘히트’를 친 후 ‘맘(MOM) 편한 삶’을 후속작으로 내놓으면서 연계정책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정책적 탄탄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학규의 지지율은 김두관에 비해서도 답보상태다.

어째서일까. 먼저 손학규가 민주당의 양대 주주인 친노와 호남 어디에도 어필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호응이 있었지만 지식인 사회나 제법 정치에 관심이 있는 이들 사이에서 얻은 호응일 뿐이다. 이는 김두관이 해남 땅끝마을에서 출정선언을 한 이후 호남지역을 돌보면서 미세하게나마 지지율 상승을 이끌어 내고 있는 상황과 명확하게 대비된다.

그러나 손학규는 훌륭한 플레이를 하고 있는데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만 패퇴한다고 보기에도 어렵다. 지금도 민주당 지지자들은 ‘될 사람’을 희구하고 있고 그 욕망은 정치인이 아닌 안철수마저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손학규의 현재 플레이가 박근혜를 꺾기엔 심하게 부족해 보인다는 얘기다.

손학규의 출정선언문을 보면, 대한민국의 현실과 위기를 진단한 후,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테제를 제시하고, 완전고용과 진보적 성장, 경제민주화와 사회정의, 보편적 복지, 창의교육, 한반도 평화공동체, 생명과 평화가 존중되는 세상 등의 이슈를 던지고 해당 이슈에 결부되는 정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 정책들을 제시하는 와중에 가장 안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후보이면서 군데군데 종업원 지주제나 국공립대 네트워크 같은 진보진영에서나 내거는 급진적인 정책이 섞여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민주당의 진보성에 부족함을 느끼는 시민의 입장에서, 손학규의 최대장점은 민주당이 진보진영의 정책에 비토의 논거로 내거는 ‘현실성’이란 잣대가 실은 준비부족이나 공부부족에서 나온 성급한 진단일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민주, 민생, 통합이란 세 개의 키워드를 던진 후 각 키워드에 소통령, 중통령, 대통령이란 수사를 대입하는 치밀함을 보여준다.

“낮은 자세로 민생을 챙기고, 국민과 소통하는 소통령이 되겠습니다.
중소기업을 살리고, 중산층을 넓히는 중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대통합을 이루고, 남북대통합을 이루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손학규의 풋워크는 자기 완결적이라, 박근혜의 스텝에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손학규의 주장처럼 진보는 박근혜를 물고 늘어질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탄탄한 기본기가 있을지라도 싸우는 상대는 있는 법이다. 싸움은 상대방이 내세우는 전선에서 싸우거나, 또는 그 전선 긋기에 대응하여 새로운 전선을 긋고 상대방을 싸움터로 불러들이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대중이 보기에 손학규는 자신의 기본기를 과시하고 있을 뿐 박근혜와 싸우고 있지는 않다. 박근혜의 약한 고리가 어디 있는지, 그 약한 고리를 어떻게 자신의 장점으로 공략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막상 링 위에 올라오면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것이 손학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본선이 아닌 경선과정에서 손학규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다. 슬로건과 출정선언문에 단적으로 드러난 지금의 손학규의 행보에서 부족한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두 번째 가상 매치 : 박근혜vs김두관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볼 때 손학규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가장 적나라하게 가진 후보가 김두관이다. 손학규가 택한 장소인 세종대왕상 앞이 그저 “저는 잘 싸우는 사람입니다”라는 메시지만 전달한다면 김두관이 택한 땅끝마을은 도전자가 링 위로 오르는 그 길의 도정을 일종의 퍼포먼스로 만든다. 7월 8일, 해남 땅끝마을에서 김두관은, "내게 힘이 되는 나라, 평등국가를 향하여!"라고 일성을 내지른다.

링위로 오르기 위한 여정의 출발지점은 신중하게 선택되었다. 그는 땅끝마을에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지점, 한반도의 끝이지만 태평양을 바라보는 첫 마을이란 의미부여를 한다. 그리고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을 크게 바꾸자는 세력과 대한민국이 이대로 좋다는 세력의 대결이라고 선언한다.

김두관의 출마선언문에는 박근혜와 자신을 비교하는 이분법이 넘쳐난다. ‘크게 바꾸자는 세력’과 ‘이대로 좋다는 세력’의 대결만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독식경제’와 ‘나눔경제’의 대립이 제시되고, ‘정글의 법칙’과 ‘숲의 법칙’의 이분법이 제시된다. 출마선언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널리 회자된 ‘국민 아래 김두관’과 ‘국민 위의 박근혜’의 대립구도가 제시된다. 김두관은 끊임없이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성격을 규정하고 인파이팅으로 돌격하여 맞붙어 싸우려고 한다. 대중정치인으로서 크나큰 장점이다.

이분법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향을 설명하려는 끊임없는 비유도 와닿는다. 그래서 김두관의 출마선언문은 그 어느 누구의 것보다 재미있다. 다른 세명의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다. 출마선언문 중간에서 그는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 “국가는 극소수 기득권자를 위한 ’요새‘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집‘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촌철살인의 ‘산의 비유가 등장한다.

“IMF 외환위기 직후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회사 대신 산으로 출근했습니다.
산은 국가보다 따뜻하게 가장들을 맞아주었습니다.
이제 산보다 더 포근한 정부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김두관의 사자후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끊임없는 사례의 열거다. 이장 시절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는 저의 정치적 유전자”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김두관의 정치적 이력이 만들어낸 특수한 자산일 것이다. ‘서민 중산층의 매월 생계비 50만원 줄이기’ 프로젝트를 제시하면 통신비, 기름, 교육비, 주거비, 의료혜택, 학비 등에 대한 방책을 속사포처럼 던진다. 그후에도 사회적 자원과 일자리의 연계, 공공부문 최고가치 입찰제도, 육아휴직 및 보육시설 확충, 기초노령 임금, 지역공약으로서의 재정분권, 지방검사장 직선제, 자치경찰체, 교육자치 등의 공약이 끝없이 튀어나온다. 출마선언문에 등장하는 공약의 숫자로도 김두관은 압도적이다.

그러나 이 쉴새없는 인파이팅은 손학규의 단점을 장점으로 가진 반면 정확하게 손학규의 장점을 단점으로 드러낸다. 공약은 많지만 체계가 부족해 보이고, 남발되는 공약들이 정말로 남한 사회의 개혁사안에서 상위 리스트에 올라야 할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자잘한 공약들이 많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와 차별화될 만한 진보적으로 묵직한 어퍼컷을 날렸는지도 의문이다. 말하자면 절대로 박근혜 측에선 받을 수 없는, 손학규의 종업원 지주제나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방안과 같은 호쾌함이 김두관에게는 없다.

슬러거인 손학규에게 상대방을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필요하듯이, 인파이터인 김두관에게 전체적인 게임 운영에 대한 고민과 한 방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세 번째 가상 매치 : 박근혜vs문재인

민주당 대권주자 ‘빅3’라지만 나머지 둘을 합쳐도 이 남자의 중량감엔 부족하다. 최근엔 별다른 동작없이 로우킥만으로 한국 사회의 정당정치를 넉다운시킬 지경이던 ‘밀당 안철수 선생’마저 제껴버린 저 문재인 고문이다. 그는 손학규보다는 늦고 김두관보다는 빠른 시점인 지난 6월 17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으로 요약될 만한 출마선언문을 들고 등장했다. 그러나 이 당시 슬로건은 확정된 것이 아니었고, 지난 주말 확정된 슬로건은 복지, 배려, 민주 세 개의 키워드를 포괄하는 “사람이 먼저다”, 경선기간 중의 PI(Presidential Identity)로는 헌신, 용기, 원칙이란 가치를 포괄하는 ‘대한민국 남자’를 선택했다. 한때 중앙일보에서서는 그가 “강한 문재인, 강한 대한민국”을 슬로건으로 쓸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문재인의 출마선언문에는 이미 이 슬로건들과 PI의 요소가 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분석하기 전에 먼저 이것부터 지적하자. 문재인의 출마선언문은 야권주자들의 것 중에서 형식적으로 박근혜의 것과 가장 유사하다. 박근혜가 자신의 서사를 얘기하면서 국민의 부르심을 강조할 때, 문재인도 ‘불비불명’이란 고사로 남쪽 나뭇가지에 머물렀던 그가 국민의 부름으로 등장하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국민’을 수십 번 부른 박근혜가 사회경제 문제에 대해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복지의 확대’를 말한다면 ‘국민’을 수십 번 부른 문재인은 사회경제 문제에 대해 ‘공평과 정의’, ‘4대 성장 전략’, ‘강한 복지국가’, ‘일자리 혁명’을 말한다.

박근혜와 유사한 형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문재인이 보수적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총론을 영역별로 정돈하는 카테고리라면 특별히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손학규의 것도 이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손학규의 경우는 국민의 부름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정세를 얘기했다는 점이 이들과 다르다. 그렇다면 박근혜와 문재인의 출마선언문의 형식의 유사성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들은 자신의 출마를 세상사에 대한 자신의 개입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국민의 부름’으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술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지지율이 높은 후보들이기 때문이다. 즉 박근혜는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서, 문재인은 그 ‘적수’를 대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주자로서 위치지어 졌다는 것이다. 문재인은 손학규나 김두관과는 달리 도전자의 위치에서 올라오지 않는다. 그는 박근혜와 대등한 자리에서, 박근혜를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링 위로 올라서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전략은 적절한 것일까. 문재인과 박근혜의 지지율 차이는 아직 두 사람을 ‘동급’이라고 보기엔 심히 부족하다. 불리할수록 난전을 유도해야 하건만, 문재인은 인파이팅도 한방도 보여주지 않고 일단 운영의 측면에서 상대방이 하는 것과 같은 길을 나아가고자 한다. 상대방이 찌를 때 찌르고, 상대방이 물러설 때 물러서면 된다는 자세다.

그리고 그 형식상의 유사함 속에서 문재인을 박근혜와 구분짓는 것이 ‘우리나라 대통령’이란 수사와 ‘강한’ 이란 수사다. 출마선언문에서 ‘강한’ 이란 형용사는 두 개의 단어 앞에 붙는다. 한 번은, ‘강한 복지국가’, 다른 한번은, ‘강한 대한민국’.

‘우리나라 대통령’이라는 수사는 특권층을 제외한 보통 사람들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대통령이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유권자의 절반 정도가 지지하는 상대방 정치세력을 일종의 외국인으로 취급해 버린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상대방을 사회발전을 위해 고민하되 다른 방법론을 택한 사람들로 보지 않고, 아예 외래인으로 규정해 버리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으론 적절하지 않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당장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은 ‘우리나라’ 바깥에 속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런 ‘폭력’을 중도층은 과한 것으로 여기지는 않을까?

‘강한’ 이라는 수사 역시 다소 미심쩍다. 복지국가 앞에 ‘강한’이란 형용사가 붙는 경우는 거의 없고, 나라 이름 앞에 ‘강한’이 붙을 때는 흔히 평화정책보다는 강경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되곤 한다. 문재인 후보가 그 ‘강한’이란 형용사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전유하는지에 대해, 출마선언문이나 슬로건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오히려 ‘대한민국 남자’라는 PI까지 맞물려, 문재인 후보가 특전사나 스포츠맨 행보로 보인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박근혜 후보의 여성성을 공격하려 든다는 ‘오해’를 살 법한 상황이다. 상대해야 할 ‘적수’가 ‘여성’인 상황에서 이러한 접근은 훨씬 신중하게 이루어졌어야 했다. 정치공학적으로 봐도 ‘강한 대한민국’이란 수사를 좋아할 영남의 어르신들이 ‘북한에게 유화적인’ 정당 후보가 그 수사를 가져가는 것을 납득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말하자면 문재인 캠프의 행보는 ‘오직 박근혜만을 상대로 의식하는, 정석 속에서의 박근혜와의 차별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차별화의 지점이 굉장히 우려스러운 면이 있다. 선거전이 좀 더 진행되고 충분히 지지율이 오른 다음이라면 모를까, 현 시점에선 약세를 인정하고 김두관과 손학규가 벌이는 투쟁의 일부를 벤처마킹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간성적표로 볼 때 문재인 캠프의 행보는 타 후보에 비해 ‘자신감’은 보여줬으되 그 ‘자신감의 근거’는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상황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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