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은 1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면서 "재벌개혁을 위해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를 전면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박근혜의 대선 출정식에서도 나온 말, ‘경제민주화’. 십년 전만 해도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 운동본부 사람들이나 입에 담았던 그 언어가 지금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문재인이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는 ‘사기’라고 공박하고 이에 대해 김종인이 ‘유치하다’고 받아친다.

그런데 난무하는 수사와 정책들 사이에서 정작 그 경제민주화가 무슨 의미인지 어떤 맥락에서 생겨난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난망한 시점이다. 미디어스는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 최병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위의장 등에게 자문을 구하여 경제민주화 담론의 의미와 맥락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역사적 맥락에서 추론해본 경제민주화 담론

장석준 의장은 “경제민주화라 할 때 그 ‘민주화’를 ‘자유주의 원칙의 강화’란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주의 원칙의 강화’란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민주주의란 말이 여러 층위에서 이해되는 것과 흡사하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혼동이 생겨나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말이 이렇게 혼용되는 맥락이 있을 것이다.

최병천 위원은 먼저 경제민주화론이 1970년대에 박정희의 발전국가론에 대한 대안담론으로 출발한 맥락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정희 경제노선에 반대하던 70년대 재야운동은 박현채 선생의 경제학에 기대고 있었는데, 이 시기 논해지던 경제민주화론이 일종의 관치에 대한 저항담론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최위원은 “관치에 대한 비판은 자연스럽게 ‘관’이 아니라 ‘민’이 경제를 주도해야 한다는 논의로 흘러갔는데, 이 ‘민’에는 자본과 노동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 현실”이라 설명한다.

오늘날엔 민영화 논리가 ‘민’이란 글자를 근거로 ‘민주주의’와 비슷한 것으로 오인되기에 ‘사영화’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국공립대 법인화가 애초에는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는 민주적 대학을 위한 개혁수단으로 여겨졌던 역사도 있다. 이런 정황에서도 드러나듯 반독재투쟁 과정에서 ‘민’의 강조는 오늘날의 재벌이나 금융자본의 문제 같은 것을 정교하게 집어내기 힘든 담론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장하준과 정승일과 같은 논자들이 ‘국가의 후퇴’라고 지적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하여 노동계급의 조직화나 시민사회의 형성이 미약한 상황에서 국가가 후퇴한 공간에 자본이 득세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특히 장하준과 정승일과 같은 논자가 ‘경제민주화론자’들을 비판할 때엔, 1970년대 저항담론의 맥을 이어 받은, 박정희식 경제발전과 재벌중심 경제발전을 극렬하게 비판하는 이들을 염두에 둔다. 이런 이들이 1997년 IMF 체제 이후 한국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주도하게 되었고 그 폐해가 누적된 바탕 위에 지금의 경제민주화 담론도 있다는 것이다. 정승일은 재벌개혁론자들을 비판하면서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실은 경제자유화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 평가하는데, 장석준 의장은 “이와 같은 비판은 (장하준․정승일보다) 더 왼쪽에 있는 사람들로서도 수긍할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병천 위원은 “장하준과 정승일이 비판하는 논자들도 IMF 이후의 변화의 문제점을 알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그 비판이 다소 허수아비를 때리는 지점도 있다”고 설명한다. 장하준과 정승일의 경제민주화론에 대한 비판의 요지는 ‘민주주의의 원칙은 1인1표이지만, 주주자본주의의 원칙은 1원1표(혹은 1주1표)라는 것이다. 이렇게 그 원칙이 엄연히 다른데도,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주주자본주의를 관철시키면서 자신들이 경제민주화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최위원은 “그래서 장하준과 정승일의 핵심은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실제로는 주주자본주의자들이고 자신들이 진짜 ‘경제민주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 자신을 경제민주화론자로 칭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판하는 이들을 ‘경제민주화론자’라고 부르니 용어 사용에 더 큰 혼동이 생긴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담론의 좌파적 버전

한편 송태경 처장의 경우 1998년 국민승리21의 ‘실업대책운동 본부’부터 시작해 2000년 이후 민주노동당의 ‘경제민주화운동 본부’에서 십 여 년 넘게 활동했던 사람이다. 그가 추구해온 경제민주화 운동은 헌법 119조 2항의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란 말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자본과 임노동 관계의 불평등, 채권 채무 관계의 불평등, 토지소유 관계의 불평등 등을 적극적으로 시정하는 것이다. 송처장은 이를 “경제 전반에 걸쳐서 어느 한쪽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할 수 있는 관계를 그렇지 않은 관계로 바꾸어가는 과정이 경제민주화”란 말로 설명했다. 조세 재정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분배를 개선하는 보편적 복지와는 달리 경제 생태계 자체를 재편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경제민주화 담론의 진보적 버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에서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종업원 소유참여제도’와 ‘종업원 경영참여제도’가 된다. 장석준 의장은 “과거 민주노동당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보진영은 독일과 스웨덴의 노사 공동결정제도, 유고슬라비아의 노동자 자주관리제도 등을 참고하였다. 물론 이 안에도 경영에 참여만 하느냐, 혹은 경영을 접수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주장과 버전이 있다”고 설명한다. 자치기업에 대한 고민은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1985년에 발표한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에서도 심도 있게 전개한 바 있고 한국에서도 올해 출간된 김상봉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에서 검토되는 등 진보세력의 단골주제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엄밀히 말할 때 기업 소유와 경영에 대한 노동자 참여의 문제는 경제민주주의와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좀 더 세밀한 언어로 ‘산업민주주의’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산업민주주의의 문제는 경제민주주의 문제의 일부라고 얘기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요약한다면 “좌파 담론은 산업민주주의 문제를 경제민주화 문제의 핵심으로 사유하고, 우파 담론은 경제민주화 문제에서 산업민주주의 문제를 비켜가려고 한다”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송태경 처장은 이런 잣대로 볼 때는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은 물론 통합진보당 등 진보세력들도 경제민주화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역시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최병천 위원의 경우는 경제민주화를 조금 더 폭넓은 문맥에서 규정하려고 한다. 최위원은 “경제민주화 문제는 정치가 경제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바라보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흔히 경제영역은 자율적인 영역이라고 보는데, 우리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제영역이 순전히 자율적으로 돌아갈 경우엔 민주주의가 우리 삶을 규율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치권력이 경제영역까지 규율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금융자유화와 경제자유화에 맞서는, 민주주의에 의해 통제받는 경제체제를 만드는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라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최위원은 경제민주화 담론이 번성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는 “과거에는 진보와 보수의 경제정책 논쟁이 성장․분배 논쟁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분배 쪽을 편드는 진보진영이 이길 수 없을뿐더러, 사실 성장정책과 분배정책을 무자르듯 구별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굉장히 ‘멍청한’ 논쟁이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라고 이름을 붙이면 보수주의자들도 이에는 원론적으로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합의를 국민적으로 이끌어내고 이를 실행했던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그 경험으로 경제민주화 문제에 접근하는 상황은 매우 고무적이고, 이전보다 진전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경제민주화

▲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선 출마 공식 선언 하루를 앞두고 '박근혜 경선캠프'의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캠프 기자실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경제민주화 담론에 얽힌 이 풍부한 함의가 물론 정치권에서 제대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세 사람은 특히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논의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장석준 의장은 “김종인 위원이 자꾸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을 자신이 만든 것이라며 저작권(?)을 행사하려 드는데, 헌법에 원작자가 있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1987년 당시 의회에서 개헌논의를 할 때 밖에서는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치권력이 그들의 요구를 직접적으로 수렴한 적은 없지만 간접적으로는 반영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 계급적 관계가 만들어낸 조항을, 자신의 작품이라 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김종인을 비판했다.

최병천 위원은 박근혜의 경제민주화가 완전히 사기라는 문재인 고문의 의견에 동조했다. “박근혜식 복지국가와 같다. 알맹이가 하나도 없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담론에 대한 이한구의 비판 중 ‘각론을 얘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이건 맞는 얘기다. 경제민주화를 한다는 것만 있지 뭘 한다고 김종인이 말한 적은 없다”고 김종인의 처신과 새누리당의 전략을 비판했다.

송태경 처장은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를 들여다보면, 작은 정부 운운하던 거 취소하고, 복지제도 일부 확대하고, 공정거래 제도 몇 개 진전시키고, 순환출자 제한을 조금 할 수도 있다는 냄새를 피우면서 그게 경제민주화라는 식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인식도 실현방안도 아주 미약하다”고 평했다.

그렇다면 민주통합당의 안은 어떨까. 송태경 처장과 최병천 위원 모두 민주당이 순환출자 문제에 너무 몰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송처장은 “문제는 재벌의 문제가 순환출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각 언론에서 보도한 공정위 발표 보고서를 보면 LG그룹은 순환출자 문제를 깔끔하게 해소했다. 그렇다고 LG그룹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나? 게다가 순환출자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는 것은 지주회사 체제로 가겠다는 건데, 이래서는 장하준과 정승일이 우려하는 것처럼 외국계 자본에 의한 잠식의 우려도 있다. 나는 그 우려가 과장되었다고 보기는 하지만 말이다”라고 평가했다.

최위원 역시 “민주당 등이 대기업 오너 지분 소유가 1%가 안 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비판은 장하준과 정승일이 비판했던 것처럼 주주자본주의의 함의가 있다. 1%로 1%의 의결권을 행사하라고 말한다면 그건 ‘1원1표’ 원칙을 얘기하는 것이다. 가령 외국자본이 한국 재벌에 대해 30% 정도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들더러 재벌을 좌지우지하라는 것인가? 이해찬 대표가 순환출자 전면금지를 주장했는데, 그런 점에서 지나친 감이 있다. 지주회사 체제가 된다고 해서 재벌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계열사 체제는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지금은 단점이 극대화되어 있다. 계열사 체제의 장점은 ‘장기적 미래를 내다본 혁신 투자’다. 가령 옷을 만들던 삼성물산이 미래를 위해 반도체에 투자할 수 있다는 건데 지금은 재벌이 계열사 늘려서 동네 떡볶이 시장에나 침투하는 현실 아닌가? 그걸 규제하면 되는 건데 순환출자 전면금지 되고 지주회사가 되면 계열사 체제의 장점도 사라진다. 나는 순환출자나 출총제에 대해선 일정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규제를 확대하면 확대하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대표 취임 한달을 맞아 기자회견을 하면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당의 명운을 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체적 평가의 수준에서 송태경 처장은 “민주통합당도 경제민주화에 대한 포괄적인 상이 정립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송처장은 “(새누리당과는 달리) 고리대금 문제나 세입자 보호 면에서 구체적인 담론으로까지 발전한 내용 있는 경제민주화 정책이 일부 보이고, 유종일 교수 정도가 경제민주화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적인 고민, 시장경제에 평등이란 요구가 내재되어 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실현될 때에야 경제활성화도 가능하다는 인식이나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최병천 위원은 “민주통합당의 경제민주화 정책엔 크게 보아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총론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네거티브적이라는 것이다. 통시적인 차원에서 볼 때 산업/금융/노동분야에 대한 정책이 구상되고 그것이 어우러져서 경제민주화란 목표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런 종류의 총론이 없다. 또 공시적인 차원에서 볼 때, 어느 정도의 정책을 어떤 시점에 시행하고 그 다음 단계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행전략이 있어야 한다. 정책타당성과 여론수렴의 여부까지 신경써서 말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도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경제민주화 정책이 마치 ‘반MB'에서 대상만 바꾸어 ’반삼성‘이나 ’반이건희‘로 갈아탄 것 같은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보이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 부산일보 7월 10일자 5면에 실린 여야 경제민주화법안 비교 표

경제민주화 담론과 한국 경제 성격 논쟁

두 사람 모두 민주통합당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비판하면서 장하준과 정승일의 우려를 언급했기 때문에 우리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해가 최근 여러 경제학자와 논객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 경제 성격 논쟁과도 깊은 관련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장하준과 정승일은 ‘재벌개혁’이 아닌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하면서 비판자들을 주주자본주의의 옹호자로 몰아붙이고, 김상조와 홍종학 정태인 등의 논자들은 장하준 등이 재벌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공박하는 형국이다. 이 논쟁은 지난 몇 년간을 이어져 왔으면서도 쳇바퀴를 돌았는데, 대선의 해인 올해에 들어와서도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최병천 위원은 “한국 경제 성격 논쟁이 단순하게 요약했을 때 장하준과 김상조의 논쟁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두 사람의 차이가 크지 않다. 과거 논쟁에 대한 관성에서 서로에 대한 논박으로 진행되는 측면이 크다”고 지적한다. 1997년 IMF 이후에 사실상 ‘경제자유화’로 기능한 경제민주화 담론에 대한 폐해를 지적하는 것이 장하준과 정승일의 주요한 논지이나, 이것의 폐해에 대해서는 김상조 등도 인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위원은 “김상조의 경우 소액주주 운동도 주주자본주의를 믿어서 한다기 보다 재벌을 규제할 다른 방안이 없다시피 하니까 그거라도 활용하자는 활용론에 가깝다”고 설명하면서 “주주자본주의에 우호적인 건 김상조가 아니라 장하성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위원은 장하준과 정승일의 지적이 분명히 현실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박정희식 발전국가에도 긍정성은 있었는데 1970년대 대항담론인 경제민주화 담론을 이어받은 이들은 그 점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위원은 “박정희식 발전국가의 성공은 선별적 산업정책이 이루어졌고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 금융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정부가 금융을 사실상 국유화하면서 산업을 선별하여 지원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수출 대기업 중심의 경제체제를 만들고 중화학 공업을 육성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러한 발전국가의 장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은 정부 개입과 재벌에 대해 무조건 비판적으로 바라본다고 최위원은 설명한다. 최위원은 “당시 박현채 등 박정희 경제정책을 비판한 재야경제학자들은 부채망국론, 외자망국론 등을 주장하고 있었다. 당시로선 남미의 사례를 보았을 때 그게 그럴듯하게 여겨졌고 곧 남한 사회도 남미 꼴이 날 거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어찌 운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남한 경제가 계속 발전하면서 그런 얘기가 설득력을 잃었다. 그런데도 오늘날 재벌개혁 방안을 얘기할 때 그때의 내수중심론이나 중소기업론이 활용될 때가 많다. 이를테면 재벌 기업 집단 내 30개의 기업을 3천개로 쪼개겠다는 이번 통합진보당 측의 선거공약이 대표적이다. 오너 체제를 비판하고 전문 경영인이 경영하는 기업을 만들 것을 주장했는데 사실 일국 경제 안에선 오너 체제가 고용에 대한 보호를 더 잘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일률적으로 이걸 이걸로 바꾸자고 주장할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위원은 장하준과 정승일의 논리도 금융의 부분에선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위원은 “정승일은 금융과 산업이 함께 가도 시너지 효과를 낼 거라고 주장하면서 금산분리를 반대하는 입장에 선다. 그러나 금융에는 자금중재기능과 선별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재벌그룹과 균형이 안 맞으면 이 기능을 행사할 수가 없다. 그래서 금산분리가 완화되면 금융의 기능이 마비될 것이라는 게 김상조 등의 비판이고 이 부분에서 나는 그 비판이 옳다고 본다. 현재 한국 사회는 과거처럼 정부에 의한 관치경제가 아니라 국제금융자본과 재벌, 국가관료가 공존 공생하는 체제다. 이 점을 잘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민주통합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왼쪽에서 두번째),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왼쪽에서 세번째) 등 의원들이 12일 오전 국회 의안과에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공정거래법 등 6개 민주화 관련 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위원은 “기업의 혁신이 일어나려면 금융과 노동, 그리고 경영 모두에 헌신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들이 ‘윈윈 게임’을 위해 헌신할 수 있으려면 장기적인 이득을 추구하기 위해 협력할 수 있는 장기적인 신뢰가 필요하고 신뢰가 장기적으로 유지되려면 일종의 세력균형이 필요하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잡아먹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노동의 힘도 강화되어야 하지만 금융도 산업자본에 먹혀 버리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내렸다. 마지막으로 그는 “논쟁하는 학자들이 기업집단법에 대해서는 대개 동의하는데, 그러면 기업집단법을 어떤 형태로 만들 것이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논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주문했다.

한편 송태경 처장은 김상조, 선대인, 이병천과 같은 논자들에 대해 “노동중심의 경제민주화 조치가 없는 상황, 적대적 M&A에 대한 합리적 방어가 없는 상황에서 순환출자만을 금지하자고 주장해선 지주회사 체제의 공고화와 주주자본주의 탐욕을 불러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송처장은 장하준과 정승일에 대해서도 “정치적 역학관계와 시민사회적 역학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사회적 대타협이란 방안도 비현실적이다”라고 진단했다.

‘선진화’에서 ‘경제민주화’로의 전환이 의미하는 것

돌이켜보면 지난 대선 당시 정권을 교체하는 보수세력이 내세웠던 담론은 ‘민주화의 완성’론과 ‘선진화’론이었다. 사람들은 민주화세력이 추구한 경제자유화의 결과로 나타난 민생경제의 하강의 원인을 ‘민주화 세력의 무능’과 ‘분배 정책의 실패’에서 찾았다. 그리고 민주화는 완성되었고 그 다음의 과제는 선진화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MB정권 출범 이후 가속화된 부자 감세정책과 토건경제, 그리고 경제위기로 인한 생활수준 하락에 지친 사람들은 이제 ‘경제민주화’란 단어에 솔깃하고 있다.

그런데 분명히 현 집권세력이 초래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많은 사람들이 색깔 바꾸고 경제민주화란 구호를 내용 없이 장착한 그 후신세력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을 극복하려면 정치세력과 언론 및 학자그룹, 지지자들이 함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경제민주화 담론에 대해 더 치열한 논의를 전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경제민주화 담론의 최소한의 의미와 맥락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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