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 원더스에서 타격을 하는 문재인 의원의 모습(왼쪽)과 태릉선수촌에서 왕기춘 선수를 업어치기하는 문의원의 모습(오른쪽) ⓒ연합뉴스

민주통합당 문재인 의원의 최근 행보에 이색적인 부분이 있다. 8일에는 ‘야신’ 김성근 전 SK 감독이 있는 독립야구팀 고양 원더스를 방문하더니 9일에는 올림픽 준비에 여념이 없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는 태릉선수촌을 방문했다. 그냥 방문만 한 게 아니다. 고양 원더스에선 유니폼을 입고 타격을 했고 태릉선수촌에선 유도복을 입고 남자 66~73kg급 세계 최강자인 왕기춘을 업어치기로 넘기는 모습을 선보였다. 당연히 수많은 언론이 이 재미있는 광경을 사진으로 찍고 보도했다.

만능스포츠맨임을 과시하는 듯한 문재인 의원의 행보는 의도된 전략일까? 만일 이것이 의도라면 이 전략에는 어떤 의미가 있으며 효과를 발휘하고 있을까? 문재인 캠프를 취재하는 한 정치부 기자는 “물어봤는데 특정한 의도는 없다고 하더라”고 전한다. “고양 원더스의 경우, 문재인 후보가 야구를 워낙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이슈가 된 10구단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방문했다고 한다. 태릉선수촌은 한 번은 가야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일정을 맞추다 보니 우연히 바로 다음날 잡힌 것 뿐이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인은 설령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한다고 해도 해석의 대상이 되는 법, 다른 많은 기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비교적 우호적인 해석을 한 기자는 “남성성을 보여주는 행보라고 할 수는 있겠는데, 남성성에도 여러 결이 있지 않겠나. 푸틴이나 박정희도 스포츠맨임을 과시했지만 그와는 좀 다르게, 부드러운 남성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다른 기자는 “사람들이 호감가질 만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건 정치인의 기본이니까 나쁘지는 않게 본다. 스포츠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고, 패자부활이나 승패 등 인생의 드라마틱한 부분이 응축돼 있는 현장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기자 입장에서 손학규는 ‘저녁이 있는 삶’이나 ‘안철수에 매달리는 민주당 대선전략 비판’으로, 김두관은 ‘룰라 닮고 싶다’는 얘기나 ‘평등국가’ 같은 구호로 이슈화가 되는데, 문재인 기사는 찾아보면 대부분 이벤트랑 화제성 기사인 상황이다. 이건 좀 문제가 된다”라며 조심스럽게 중립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직설적으로 비판한 기자들도 있었다. 한 기자는 “문재인은 부산 사나이다. 그 외에 더 해석할 것이 없다”고 일축했고 다른 기자는 “컨텐츠 없음의 반영 아니겠는가. 지금은 그냥 지지자만 좋아하고 반대자는 관심 없는 정도인데 한 번만 더 하면 역효과 날거다”라고 진단했다. 가장 강하게 비판한 기자는 “박근혜가 여성이란 것을 겨냥한 것이 아닐까? 특전사 옷 입은 것부터 연결되는 것이라 본다. 박근혜가 가질 수 없는 근원적인 남성성에 대한 과시, 빡센 군대에 다녀왔다는 존재증명으로 병역면제 혜택을 입은 비도덕적 세력들에 대한 각 세우기가 있고, 그 자체로 국가주의적 행보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평론가들의 견해도 큰 틀에선 차이가 없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의 경우 “감성적인 모습을 통해서 접근하는 건 좋은데 정치를 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분이 정책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아쉽다”고 평했다. 이소장은 “사실 문재인 후보가 뜬 것 자체도 ‘폭풍 간지’ 사진 같은 것에 힘입지 않았나. 그래서 자꾸 그런 쪽으로 가는 것 같은데, 성공한 전략들을 안이하게 반복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이미지 정치만으로 이 어려운 대선을 돌파할 수 있을까? 지금은 전선을 하드하게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다. 또 이미지 정치도 분명히 필요하지만 이것들은 초반에 너무 써먹으면 뒤로 갈수록 약빨이 떨어진다는 문제도 있다”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말하자면 불리한 쪽이 판을 흔들고 난전을 유도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 걱정스럽다는 것이었다.

박권일 <자음과 모음R> 편집위원은 조금 더 비판적인 시선을 드러냈다. 박위원은 “너무 투명하게 속이 들여다 보이는 홍보 전략이라 귀엽다고 느껴질 정도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 이전 3김시대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이 정치인들의 일상을 알 통로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인간적인 매력을 드러내는 게 훌륭한 전략일 수 있었다. 그러나 소탈한 면을 너무 많이 보여준 노무현 대통령 시기를 지나지 않았나. 이제는 이 전략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지점이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청춘세대를 잡기 위해 택한 전략인듯 하나 오히려 나이든 세대에게 소구할 수 있는 전략이란 점에서 확장성의 측면에서 매력 포인트가 없는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문재인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시선도 있었다. 정치평론가 김민하는 “기본적으로 문재인의 이미지가 무르지 않나. 그걸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특전사부터 업어치기까지 일관된다. 권력의지가 없다는 둥 수동적이라는 둥 비판을 많이 들었는데 그 비판을 이미지로 극복하려는 시도다. 케네디나 오바마나 푸틴도 다 한 일이니 특이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 다른 걸 잘 못한다는 걸 문제삼을 수 있겠지만 이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 시점 문재인 의원의 스포츠 친화적 행보가 컨텐츠를 담보하지 못한 이미지 전략으로 보이는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 그간 진보개혁 세력이 문화정책의 측면에선 보수를 압도하지만 스포츠 영역에선 별다른 장점을 보여주지 못했던 측면이 있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가 스포츠 영역을 공략하려 마음 먹었다면 그러한 시도 자체는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런 행보도 일련의 진보개혁적인 스포츠 정책과 함께 움직이면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 문재인 의원이 '야신' 김성근 감독에게 자신의 책 '운명'을 선물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기존 프로구단에 선발되지 못한 선수들로 구성된 고양 원더스 방문은 문재인이 스포츠, 더 나아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서사’를 보여줄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의 서사에선 고양 원더스와 극점에 있는 태릉선수촌을 이어서 방문하면서 그 ‘서사’는 깨지고 남는 건 배트를 휘두른 사진과 업어치기 하는 사진 밖에 없게 되었다. 진보개혁 세력이라고 올림픽에 열광하면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만일 문재인이 국제대회 성과 위주의 체육이 아닌 생활체육의 보급과 같은 방식으로 타겟을 잡았다면 동선을 다르게 잡았을 것이다.

가령 강바닥에 돈을 쏟아붓는 대신 야구장을 온 가족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리모델링하겠다든지, 동네에서 풋살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든지, 일정 비율의 수영장을 국가가 관리하겠다와 같은 제안을 던지면서 ‘스포츠맨’임을 과시했다면 훨씬 큰 폭발력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문재인은 여전히 민주통합당 내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다. “저녁이 있는 삶”을 부러워만 하지 말고 스포츠 영역에 대한 관심을 제대로 컨셉을 잡아 가져간다면 “저녁이 있는 삶”과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훌륭한 수사가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대선후보 문재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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