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의 대선 출정식이 내일로 다가왔다. 그런데 출정식 이전 공개된 심벌과 슬로건이 공개된 순간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심벌과 슬로건의 공개를 김두관의 대선 출정식에 버금가는 비중으로 보도하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여권의 유력 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슬로건이 공개된 이상 그것을 기존 대권주자들의 것과 비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간신문 중에서는 한겨레와 한국일보가 비교분석 보도를 하는 수고를 했다.

▲ 오늘자 한국일보 5면

그런데 지금 이 시각 각 언론사의 인터넷 뉴스에는 심벌과 슬로건에 대한 표절 논란이 올라와 있다. 연합뉴스와 방송국 보도로 시작해서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새누리당 임태희 경선 예비후보 측의 심벌에 대한 문제제기나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의 슬로건에 대한 불만표시가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박근혜 캠프가 내세운 심벌과 슬로건은 사실 애초에 어떤 오리지널리티를 가진다기 보다는 ‘선거기술자’들이 내세운 ‘기술적으로 평가할만한 생산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총선 때 등장한 새누리당의 주황색 점퍼가 좌파들의 전통적인 색깔을 침해했다는 분개가 있었지만 결과를 두고 볼 때는 새누리당의 이미지 쇄신에는 효과적이었다. 그렇다면 이 생산물들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또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가 문제의 초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 임태희 후보가 제기한 심벌 이미지 비교. 동그라미 안에 초성을 넣었다는 공통점이 있고, 박근혜 쪽 이미지는 글자를 눈코입에 빗대 형상화하고 말풍선과 결합했다는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한 일간지 온라인 담당 기자는 “심벌을 가지고 싸우는 상황, 편을 갈라 다투는 상황,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흥미를 확 끄는 지점이 있다. 인터넷에서는 그림이 선명하면 그 그림을 보고 클릭을 많이 한다. 또 이슈초점이 한 두 사람에게 몰리는 상황이라면 제목 뽑기도 쉽다. 그렇기 때문에 현행 체제에서 조회수를 많이 잡기 위해선 다들 이 기사를 중요하게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호응하는 기사를 당연히 써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이 사안에 대해 표절 이슈가 주도적으로 부각된 건 상당히 아쉽고 기자로서 좋은 편집은 아니라 본다”라고 설명했다.

박근혜의 집권을 바라지 않는 이들의 입장에서 이 문제는 더 의미심장하다. 누리꾼들의 집단적인 패러디와 조롱은 현 정부의 권위를 해체하고 비판자들을 양산하는 데엔 역할을 했지만, 대안 정치세력의 신뢰를 확보하는 길은 될 수 없음을 실천적으로 증명한 것이 지난 5년이었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많은 사람들은 ‘새누리당’이라는 새로운 이름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최대치의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그 결과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이준석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은 트위터에서, “예전에는 새누리당에서 뭔가 문구만 만들면 패러디하고 곡해해서 퍼나르는 문화가 싫었는데 새누리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 본인도 모르게 밤새워 가며 바이럴 마케팅 해주는 좋은 효과가 있다. 대선 슬로건도 lte기지국보다 빠르게 전국망 구축해줄듯.”이라고 코멘트하기도 했다. 이런 논란 자체가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를 정국의 중심에 놓고 기타 후보나 정치세력들을 안티테제로 각인시키는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재오, 정몽준, 김문수 등 새누리당 대권주자들이 야권주자들만큼도 기사가 안 나오고 나오는 기사들은 모두 박근혜와 관련된 것이라고 언론에 불만을 토로한다는 얘기가 있다. 박근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 여론의 축을 바꾸어낼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한데 ‘바람’을 불러올 때의 안철수 이후에는 여권이 아니라 야권에서도 이 계기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현재의 대결구도에서 과연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박근혜의 ‘전략’을 ‘내용없이 공허한 이미지 정치’라고 규탄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박근혜의 슬로건은 확실히 추상적이고 모호하지만 이 수사를 내용적으로 공박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그럴듯한 수사는 손학규의 “저녁 있는 삶” 정도다. 또 ‘이미지’와 ‘내용’을 양자택일의 선택지처럼 몰고 가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사실 이미지 정치를 당대의 다른 정치세력에 비해 가장 세련되게 활용한 것이 2002년의 노무현 캠프였다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홍보물에도 내용적 ‘딴지’를 건다면 통기타를 치며 '이매진‘을 불렀지만 무엇을 꿈꾼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고 대통령의 눈물을 보여주었지만 무엇에 대해 눈물을 흘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정책내용은 다른 방식으로 채우면 되는 것인데 성공한 이미지 전략을 내용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정치세력의 입장으론 한가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 오늘자 한겨레 5면

물론 새누리당과 박근혜를 싫어하는 정치성향을 지닌 누리꾼들이 조롱하고 패러디를 생산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특히 어떤 정치세력은 그런 것들을 탄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상황에서, 차제에 이런 종류의 행위들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정치적․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조롱하더라도 정치세력은 대책을 숙의하는 것이 또한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이다. 지난 총선 때에도 확인되었듯 가령 ‘나꼼수’나 ‘트위터’의 지지가 소중한 자산일지라도 정치세력이 그것만 믿고 조직적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참혹할 뿐이다.

그렇다면 언론보도 역시 정치세력에게 다양한 고민과 대책마련의 필요성을 던져주어야 한다. 진보언론이라면 당을 완전히 장악한 이에게나 가능한 박근혜의 효율적인 이미지 정치에 대항하는 기술적인 방법과 원칙적인 방법, 즉 정치공학적 대응과 정치적 대응을 정치세력에게 주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오늘자 한겨레 5면. 과거 정동영의 '노인 폄하 발언' 논란에서도 드러났듯, 이런 일이 민주당에서 생긴다면 보수언론의 강력한 공세가 들어오겠지만, 이들은 '기술적 대응'을 양해해주는 우호적인 언론환경의 도움마저 받고 있다. 진보언론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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